“방송 출연 제안, 인터뷰 요청이 물밀 듯이 들어오고 있다.”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홍보팀 직원의 귀띔대로 올해는 두산 베어스 좌완 투수 유희관에게 특별한 해다. (이름이 비슷해 붙은) 유희왕, (올 시즌 홈인 잠실에서 15경기 출장해 12승1패라는 성적을 거뒀다고 해서) 잠실 황태자, (몸매가 닮았다는 이유로) 바나나 우유, 울라프, (공 속도가 느린 대신 제구력과 경기 운영이 탁월하다고 해서) 느림의 미학 등 많아진 별명만큼이나 성적이 뛰어났고, 상복이 많았다. 총 30경기에 선발투수로 출장해 18승5패를 거두며 다승2위에 올랐고, 한국시리즈 5차전에 선발 등판해 승리로 이끌며 팀이 14년 만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데 일조했다. 또 얼마 전에는 올해 최고 투수 한명에게 수여하는 제2회 최동원상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유희관은 상금 2천만원의 절반을 사회에 기부하기로 했다). 130km라는 느린 공을 가지고도 원하는 위치에 정확하게 던지고, 게임을 영리하게 풀어나가면 훌륭한 투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의 수상은 의미가 크다. 개인 일정 때문에 일본 미야자키 훈련장에서 열리는 마무리 캠프에 합류하지 못하고 잠실에서 마무리 훈련을 하고 있는 그를 잠실야구장에서 만났다.
-시즌이 끝났는데 요즘 무슨 훈련을 하고 있나.
=달리기 위주로 가볍게 운동을 하고 있다. 공은 전혀 안 만진다.
-어제(11월19일) 열렸던 ‘2015 WBSC 프리미어12’ 일본과의 준결승전은 봤나.
=안 봤다. 친구들을 만나느라.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해 아쉽나.
=아직 기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해서 내린 결정이라 아쉬운 건 없다. 앞으로 선발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야지. (웃음)
-얼마 전 제2회 최동원상을 수상했다.
=너무 영광스러웠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다른 때보다 논란의 여지가 있어 다소 아쉬웠지만 말이다.
-상의 선정 기준 6가지(180이닝 이상, 15승 이상, 선발 30경기 이상 출전, 150 탈삼진 이상, 퀄리티스타트 15회 이상, 평균자책점 2.50 등 선정 기준 6가지 중 유희관은 탈삼진과 평균자책점 두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채웠다.-편집자) 모두 못 채워 야구팬들 사이에서 다소 논란이 있었다.
=반대로 6가지를 채운다고 해서 최동원 선배님을 넘어설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이번 수상이 선배님을 한번 더 생각하고, 가슴에 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선배님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하면 된다.
-되돌아보면 올 시즌은 어땠나.
=생각지도 못한, 좋은 성적을 거둬서 얼떨떨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나.
=전혀. 투수가 아무리 잘 던져도 타자들이 점수를 안 내주면 이길 수 없는 게 야구 아닌가. 동료 선수들과 감독님 그리고 코치진에 감사하다. 전반기 내내 잘 던지다가 후반기에 다소 부진했는데 그게 포스트 시즌까지 이어져서 아쉬움이 없지 않아 있다.
-사실 후반기는 6승3패로 성적이 저조했다. 원인이 뭔가.
=못 던져서 안타를 맞은 것에 대한 변명은 하지 않겠다. 주변에서 20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다보니 나도 모르게 의식이 됐던 것 같고, 잘하려고 몸에 힘이 들어가다보니 역효과가 난 것 같다. 또 게임수가 144경기로 늘어나면서 체력적인 소모도 많았던 것 같다. 2012년 상무에서 제대한 뒤 지금까지 매년 100이닝 이상 던지면서 피로가 보이지 않게 쌓인 것 같다. 그러다보니 시즌 초에 좋았다가 중간에 어깨가 좀 아팠고, 후반기에 발목을 다치기도 했다. 덕분에 많은 공부가 됐다.
-올 시즌 가장 인상적이었던 시합은 언제인가.
=승리투수가 된 한국시리즈 5차전. 우리팀이 14년 만에 우승한 시리즈에 선발투수로 등판했다는 사실만으로 영광이다.
-시합이 끝난 뒤 진행된 승리투수 인터뷰에서 울컥했더라.
=시즌 막바지에 팀에 도움이 되지 못했고, 높아진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스러웠다. 욕이란 욕은 다 먹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섭섭한 것도 있었다. 시즌 때 그렇게 응원해주시다가 몇 경기 부진했다고… 나름 정신력이 강한데 한국시리즈 때 승리하면서 쌓였던 여러 감정들이 북받쳤던 것 같다.
-20승을 하지 못해 아쉽진 않나.
=던지다보니 18승까지 갔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된다고 주변에서는 ‘언제 이런 기회가 오겠냐’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쉽다.
-투수 유희관 하면 ‘공은 느리지만 제구력과 경기 운영이 탁월하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공이 느리다고 생각한 건 언제인가.
=대학생 때였다. 남자 나이 스무살이면 힘을 한창 쓸 때라고 말씀들 하시는데 공을 던지면서 구속이 느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어땠나.
=구속을 높이려는 연습을 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공이 느린 대신 제구력이 좋으니 장점을 더 큰 장점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구속과 제구력,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했다면 모두 놓쳤을 것이다.
-제구력을 높이기 위해 어떤 훈련을 했나.
=캐치볼할 때 집중을 많이 했다. 야구는 반복 운동이기 때문에 매일 던지다보면 선수들이 지루해한다. 그래서 캐치볼을 할 때 변화구를 던지거나 다른 선수의 폼을 따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캐치볼 파트너 선수의 가슴을 목표로 두고 집중해서 던졌다. 파트너 선수에게 글러브 위치를 마음대로 정하라고 한 뒤 글러브 안에 공을 넣으려고 했다. 그러면서 신은 공평하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내게 구속을 빼앗는 대신 볼 컨트롤 능력을 주셨구나. (웃음)
-경기 운영을 잘하는 비결은 뭔가.
=배터리(투수와 포수)의 호흡이 가장 중요하다. 던지고 싶은 공이 있는데 포수가 다른 사인을 내면 포수를 믿지 못하게 된다. 우리팀 포수인 (양)의지는 내 마음을 잘 안다. 그래서 의지를 믿고 던진다.
-마운드에 오르면 무슨 생각을 하나.
=‘안 맞아야겠다’, 이 생각뿐이다. (웃음)
-어릴 때부터 야구를 좋아했나보다.
=야구뿐만 아니라 농구, 축구, 볼링, 탁구 등 공으로 하는 건 다 잘했다. 오죽하면 학창 시절 별명이 ‘야구 빼고 다 잘해’다. (웃음) 손재주 하나는 타고난 것 같다.
-부모님이 공부하라는 얘기는 안 하셨나.
=집에 운동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외아들이라 평범하게 공부해서 회사 다니길 원하셨다. 운동쪽으로 나가겠다고 하니 처음에는 좀 반대하셨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야구 시켜달라고 울고불고 떼를 쓰니 하라고 하셨다. 그래도 야구를 시작한 건 잘한 일인 것 같다.
-평소에 영화를 자주 보러 다닌다고 들었다.
=시즌 중에도 극장에 많이 간다. 경기가 끝난 뒤 가기도 한다.
-최근에 어떤 영화를 봤나.
=가장 최근에 본 게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 정말 재밌게 봤다. 당연히 포스트 시즌 때는 못 챙겨보는데, 주로 한국영화를 본다. 유해진, 오달수씨가 나오는 영화는 무조건 보러 간다.
-두산에서 또 누가 열심히 영화를 보나.
=우리팀은 영화를 즐겨보는 선수들이 많다. 로커룸에서 영화 얘기도 많이 한다. 그중에서도 (정)수빈이가 영화를 많이 본다. 신기하게도 혼자 보러 가더라.
-극장에 혼자 안 가나.
=혼자 극장에 가는 사람과 남자끼리 영화 보러 가는 사람이 이해가 안 된다. (웃음) 여자랑 가냐고? 그럼 누구랑 가나. (웃음)
-좋아하는 야구영화를 꼽아달라.
=이 질문 나올 줄 예상했다. (웃음) <메이저리그>(1989)와 <루키>(1993)를 좋아한다. 모두 어릴 때 비디오로 봤다. <메이저리그>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캐릭터들이 재미있고, 코미디영화지만 감동도 있다. <루키>는 주인공 소년이 야구공에 미끄러져 4달 동안 깁스를 하게 되는데 수술 과정에서 힘줄이 잘못 당겨져 어마어마한 팔심을 가지게 된다는 설정이 독특했다. 나중에 원래의 능력으로 돌아오면서 주는 교훈도 좋고.
-<루키>처럼 공을 밟고 넘어져서 공이 빨라지면 어떨 것 같나.
=몇번 더 밟고 넘어져야지. (웃음)
-내년 시즌 각오는.
=올해 우승했기 때문에 2연패를 하고 싶다. 올해 성적에 걸맞은 개인 성적도 내고 싶다. 우승의 맛을 느낀 만큼 걱정과 부담감도 많다. 못하면 못했다고, 또 잘했으면 잘했다고 변화를 주면 안 된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지금까지 해온 대로 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내년에도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해서 마운드에 오르겠다.
-목표 승수는 20승?
=(강하게 손사래를 치며) 아, 아니. (웃음)
생애 첫 완봉승, 2015년 5월10일 한화 이글스와의 잠실 홈경기
“머리가 좋은 선수.” 많은 동료 야구선수, 해설자, 야구팬들의 공통된 평가대로 유희관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비교적 느린 공을 가지고도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는 비결은 정확한 제구력과 수준 높은 경기 운영 덕분이다. 야구팬들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시합이지만, 아직 유희관이라는 투수가 어떤 스타일인지 낯선 사람들은 지난 5월10일 한화 이글스와의 잠실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을 다시 보길 권한다. 이 시합에서 그는 선발로 등판해 9이닝 동안 7개의 안타만을 내주고 무실점으로 완봉승을 기록했다. 흥미로운 건 사사구가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 무사사구 완봉승은 뛰어난 제구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프로야구 통산 121번밖에 없는 대단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