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피아노 주위로 생활쓰레기가 가득 찬 음대생 주인공의 단칸방을 부감으로 잡은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의 유명한 장면이 한국판에서 4인 가족이 살아도 될 넓이의 복층 오피스텔 부감으로 바뀌면서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다.
한국 드라마에서 ‘원작’이란 장사가 될 법한 설정과 소재만 취하는 방어적인 판권 구매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최규석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JTBC <송곳>은 정확하게 반대편 끝에 위치한다. 대형마트에서 노조를 조직해 부당한 해고에 맞서는 원작 웹툰을 컷 단위로 몽땅 옮겨버리는 드라마가 우선 신기하긴 한데, ‘왜 이렇게까지 하나’라는 의문이 생겼다. 어쩌면 이는 내용 수정의 외압은 물론, 제작 과정의 타협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결의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드라마가 웹툰의 실사화에 지나지 않는다면 구태여 드라마를 봐야 할 이유가 있을까?
웹툰을 읽을 때 주로 주인공 이수인 과장의 내레이션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면, 드라마에선 푸르미마트의 로고송이나 종이로 감은 주화묶음의 가운데를 탁 쳐서 잔돈을 준비하는 캐셔 라인의 능숙함에 반응할 때가 있다. 원작과 드라마 모두 과거 회상과 현재를 오가는 이수인의 심상이 이야기를 끌어가지만, 그가 현재 서 있는 공간을 주기적으로 환기하는 묘사들은 원작과 다른 매체로서 드라마가 고민한 리얼리티의 결과물이다. 판매사원들이 흐느끼던 직원 휴게실에서 이어지는 카메라의 동선이 직원용 출입구 하나만 넘으면 세상 걱정 없는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말끔한 마트 내부로 이어질 때, 나는 드라마 <송곳>을 계속 보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