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수차례씩 들락거리던 한 사진 동호회에 전설처럼 내려오던 책이 있었다. 잊을 만하면 누군가가 책과 사진을, 또는 그에 관한 에세이를 올려놓았고, 회원장터에 책이 올라올라치면 많은 댓글과 관심 속에 빠르게 누군가의 품으로 사라져갔다. ‘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라는 부제가 붙어 있던, 전몽각의 <윤미네 집>이 그 책이었다. 1990년에 1천부만 출간되어 전설이 된, 2010년 1월1일에 20년 만의 재출간으로 화제가 된 그 책. 최근에는 한 tv프로그램 덕분에 우리 중 누군가는 흑백으로만 채색된 윤미네 집에 첫발을 들여놓게 된다.
tvN의 <비밀독서단>은 책을 읽는 모임을 카메라로 비춘다. 그들의 주장대로 비밀 지하실에서 책을 읽고, ‘갑질에 고달픈 사람’, ‘사랑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해결(책)을 내놓는다. 무엇보다 단원 각자가 책을 펴놓고 형광펜으로 또는 4B연필로 굵은 밑줄을 그어가며 서로의 감정을 공유한다. 이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박준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방송 이후 인터넷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명예 독서단원들의 서평은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장치로도 기능한다. 공중전화부스와 같은 공공장소에 책을 놓아두고 돌려보는 이른바 ‘북크로싱’으로 방송이 전하는 공공재적인 메시지도 표현해낸다. 역할과 캐릭터가 잘 정리되어 있는 독서단원들의 구성도 물론 흥미롭지만, 5분이나 10분 분량의 짧은 영상물도 참아내지 못하고 더 짧게를 외치는 사회에 여유 있고 따뜻한 호흡을 부여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책을 읽었던 이유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앞으로도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역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