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조종국 <씨네21> 편집위원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던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큰 탈 없이 막을 내렸다. 상영 프로그램도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고, 별난 사고도 없었다. 감독과 관객이 영화가 끝난 극장에서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관객과의 대화’가 역대 최다였고 감독, 배우의 야외무대 행사도 줄을 잇는 등 영화제 분위기는 절정이었다. 개막날 몰아친 세찬 비바람에 한바탕 진땀을 빼긴 했지만 영화제 기간 내내 날씨까지 청명했다. 굳이 꼽자면 개•폐막작 온라인 예매 때 잠시 시스템이 원활하지 못했던 정도가 유일한 흠이다.
영화제의 골간인 상영 프로그램에 대한 호평과 달리 부대행사 격인 ‘아시아필름마켓’과 ‘부산국제영화제 컨퍼런스와 포럼’(BC&F)은 후한 점수를 받지 못했다. 아시아필름마켓은, 보도자료와 부산영화제 관계자들의 발언에 기대 쓴 상당수 호의적인 기사와는 엄연히 다른 평가가 많았다. 아시아필름마켓에 대해 영화산업전문 외신에서는 ‘실질적인 트래픽이 높지 않았고, 실제 거래를 하기보다는 가능성 있는 작품이 있는지 둘러보려고 온 사람이 많았다’거나 ‘마켓의 기능인 교역의 역할이 미미’한 점을 비중 있게 지적했다. 지난 10년간 어쩌지 못해 싸안고 온 묵은 숙제가 들통난 셈이다. 필름마켓의 생리와 현황을 잘 아는 국내 영화인들의 평가도 인색했다. 정작 ‘큰손’이나 ‘실력자’들을 데려오지 못하니 시장에 상인은 별로 없고 구경꾼만 지나다니는 꼴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몇년 만에 다시 꺼내든 배우들을 앞세운 이벤트도 아시아필름마켓의 내실을 다지고 확장하기보다는 자칫 악재로 작용할 위험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런 평가에 대해 부산영화제 관계자들은 참가자, 업체, 부스 등의 숫자를 제시하며 지난해보다 나아졌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필름마켓의 본질적인 역할과 기능이 취약한 상황을 각종 숫자, 이벤트와 외형으로 가리기에 급급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제20회 부산영화제는 지난 20년을 기록하고 추억하는 기조가 선명했다. 의미 있고 매력적인 기획이었지만 한발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은 큰 아쉬움이다. 5년 후, 10년 후 부산의 전망을 내놓고 참신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은 혹독한 자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올해 상반기 내내 파행에 가까운 혼란을 겪고 가까스로 영화제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던 처지를 핑계로 상쇄하고 말 일이 아니다. 영화제는 올림픽 기록경기가 아니다. 개막작 1분31초 만에 매진, 관객수 22만7377명…. 숫자와 기록에 환호하는 것은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