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영화는 항상 다층적인 세계를 품고 있었다. 환상과 현실, 과거와 현재, 몽상과 무의식이 평면적인 화면 위에 동시적으로 펼쳐진다. 그래서 어쩌면 위라세타쿤의 영화적 미로는 연극과 공연에서 좀더 쉽고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위라세타쿤 감독은 이번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이하 예술극장) 개관 페스티벌에 <찬란함의 무덤>과 <열병의 방> 2편의 공연을 올렸다. 9월5일 예술극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은 짧게나마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세계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관객이 무대쪽에서 관람석을 바라볼 수 있도록 위치를 바꿨다.
=무대 뒤편 낯선 공간에서 바라보는 객석의 느낌이 좋았다. 어딘지 불편한 느낌이랄까. 처음 예술극장에 왔을 땐 객석이 비어 있는데도 압박감이 느껴졌다. 공연내용이 혼란의 감정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그 느낌을 공유하고 싶었다.
-공연의 3분의 2가량은 2개의 스크린 막에서 영상을 보여준다. 이제껏 잘 다뤄왔고 다룰 수 있는 매체에서 출발하고 싶었던 건가.
=연극적인 요소가 깊숙이 개입했지만 나는 이 작품이 여전히 영화라고 생각한다. 처음 공연 제의가 들어왔을 때 해보지 않았던 분야라 거절했다. 하지만 차이밍량, 라야 마틴 등 믿음직한 감독들이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공연을 본 후 생각이 달라졌다. 유럽, 아시아 등지에서 만난 그들의 작품은 내가 생각한 연극과는 완전 다른 새로운 영역이었다. 나도 이번에 평평한 스크린, 2차원 공간이 주는 환상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려 했다.
-영화의 연장이라고 했는데 그중에서도 <열병의 방>을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요소가 있다면.
=영화의 기본, 그러니까 빛과 어둠에 집중했다. 중반부에 등장하는 동굴 벽화는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서사를 기록한, 어쩌면 최초의 영화다. 동굴 벽이라는 하나의 프로젝터로 투사한 그림들. 거기에 빛, 소리, 연기 등 영화적인 환상을 자아내는 기법을 실험적으로 시도했다. 어떤 형식이건 결국 출발은 영화다. 이번에 활용한 연출기법들도 모두 영화 촬영의 경험에서 비롯된 거고, 10년 넘게 함께한 촬영 스탭들과 작업했으니 어쩌면 일종의 확장영화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떤 언어나 정의로 규정하고 싶진 않다. 시야를 넓혀서 보자면 영화관이나 공연장 모두 현대의 동굴이다.
-꿈과 현실, 평면과 입체, 영화와 연극 등 당신의 작품은 언제나 다큐멘터리적 사실과 영화적 환상의 경계에서 섞이는 지점에 서 있다.
=혼돈, 혼란이 나의 주요한 모티브인 건 사실이다. 가령 <찬란함의 무덤>은 타이가 점점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거리 시위만 해도 감옥에 수감되는 현실에서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도피다. 정확히는 환상 같은 현실에서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거다. 타이의 뉴스를 보면 깨어 있어도 저게 진짜인가 싶을 만큼 믿고 싶지 않은 일들이 연일 일어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속 잠을 잔다. 자고 있든 깨어 있든 믿고 싶지 않은 혼란이 계속되고, 꿈과 환상의 요소들이 섞여 들어가며 점점 암흑 속으로 잠긴다. <열병의 방>은 극장이라는 동굴 속 관객을 모종의 열병에 감염시키려 했다.
-예술극장의 목적 중 하나가 유럽에 치우치지 않는 문화허브를 만드는 데 있다. 당신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타이 감독인가, 타이 여권을 가진 세계 시민인가.
=스스로 타이를 대표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나만의 작업을 할 뿐이다. 오즈 야스지로 등 아시아 각국의 감독들의 작품들을 좋아하지만 거기에 아시아적인 영화는 없다. 각 감독들의 영화가 있을 뿐이다. 나 역시 개인으로서 타이라는 공간에서 내가 느낀 것들을 작업하고 있다. 내가 아시아적인 정체성, 타이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진 않는다. 다만 아시아 국가들이 공유하는 특정한 경험은 있는 것 같다. 가령 공산주의, 독재와의 충돌,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과 같은 역사적인 경험들. 이곳에 와서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라 해도 그런 이야기들은 세대를 건너 공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