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민동현의 유쾌한 판타스포르투 영화제 기행 (2)
2002-03-15

민동현 감독, 꿈에 그리던 판타스틱영화제에서 좌충우돌 26일을 보내다

판타스포르투에 날아든 한국의 꿈들

호텔에 짐을 풀고서는 홍보용 딱지와 영화포스터를 들고서 극장을 다시 찾았다. 그때 지난번 공항에서 나를 마중 나왔던 스탭이 반가운 얼굴로 다가와서는 가방은 잘 있냐며 환히 웃는다. 그의 첫인사말에 어찌나 미안하던지 그리곤 순간, 그때 고맙다는 인사로 건넸던 컵라면이 생각나서 먹어봤냐고 물어보니, 매운 줄 모르고 바로 먹었다가 매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단다. 어찌나 미안스럽던지, 정확한 사용법을 알려주지 않는 선물은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생활의 지혜를 깨달으며 그와 헤어지고는 이곳저곳 상영관을 돌아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자원봉사자인 듯한 사람이 내 영화포스터를 들고 와서는 사인을 해달란다.

약간은 창피한 맘에 난 안 유명하다고 사인은 무슨 사인이냐고 하니, 지금 안 유명할 뿐이지 미래에는 어찌될지 모른다며 피터 잭슨도 92년엔 아무도 몰라보는 무명이었지만, 지금은 바빠서 오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나? 그러면서 나보고 언제 유명해질지 모른다며 자신의 아버지 것까지 부탁하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누가 알았으랴? 내가 영화를 찍어서는 꿈에서나 그리던 판타스틱영화제에 와서 이렇게 사인까지 하고 있을 줄 말이다. ‘그래, 나도 열심히 영화 찍어서 이 사람이 기대하는 그런 좋은 감독이 되어야겠구나’ 뭐, 이런 ‘바른생각’을 잠시하고는 영화를 찾아보기로 맘먹고 극장으로 들어갔다.

이곳에는 판타스틱영화만을 상영하는 판타스틱 장·단편 부문과 비판타스틱영화들을 상영하는 뉴디렉터스 부문 그리고 뮤직비디오 부문과 파노라마 그리고 몇개의 특별전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자랑스럽게도 판타스틱 경쟁에 <소름>, 뉴디렉터스 부문에 <나도 아내가 있으면 좋겠다> <물고기자리>, 파노라마 부문에 <나비> <친구> <해피앤드> 등이 그리고 단편부문에는 유일한 아시아영화로 <외계의 제19호 계획> 등 무려 7편의 한국영화들이 초청되어 상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다소 아쉬웠던 점은 사람들이 몰리는 저녁시간대에 상영하는 영화들이 많지 않아서 많은 관객과 만나지 못했던 점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경쟁부문의 <소름> 등은 심사위원단은 물론 각국 기자들에게서 호평을 받으며 영화제 마지막날까지 높은 관심을 끌었고,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낮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이 찾아와서 객석에 가득 찬 웃음소리와 함께 성공적으로 상영을 마쳤다.

카를로스 사우라를 찾아랏

영화제에서 홀로 며칠을 보낸 뒤 포르투 부시장의 초청칵테일 오찬이 있던 날 <소름>의 윤종찬 감독, 황서식 촬영감독, 최석재 조명감독 그리고 <나도 아내가…>의 박흥식 감독 일행과 만났다. 나로서는 근 20일 만에 처음 상봉하는 한국인이었기에 너무나도 반가웠지만, 그분들 또한 반갑게 맞아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이날의 오찬은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와 포르투 축구팀간의 경기결과에 불만을 품은 어떤 사람이 시청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제보 때문에 부시장이 다시 시청으로 폭발물 찾으러 가는 통에 흐지부지 끝나긴 했지만, 그동안 몰랐던 게스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고, 전날 상영된 <소름>의 반응을 알 수 있었던 자리였다. 오찬 내내 윤종찬 감독은 여러 기자들은 물론 함께 초청된 감독들에게까지 관심을 받았고, 오찬이 끝난 뒤에도 인터뷰가 이어졌다. 영화제에서는 나름대로 이날 오찬 같이 매일매일 유명한 포르투 와인공장 방문 및 유람선 관광 등의 게스트들을 위한 관광 프로그램들을 마련해놓고 있어서 하루에 두세 시간의 일정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그 투어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바로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에 관한 것인데, 첫날 오찬 때부터 다른 게스트들에 비해서 연로하신 한 노인분이 손자와 함께 조용히 사람들 곁에 있다가 사라지곤 했는데, 우리 일행은 영화제 관련되는 공무원이거나 아니면 영화사 사장 정도지 않겠나 뭐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박흥식 감독의 인터뷰 시간이 되어서 리볼리의 인터뷰 장소에 가니 그 전 시간 인터뷰를 그 할아버지가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굉장한 취재진이 빼곡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TV방송사에다가 처음 보는 기자들까지 말이다.

‘아니, 저 할아버지 우리랑 함께 다녔던 분인데….’ 순간 시야에 잡힌 기자들 손에 쥐어져 있는 팸플릿. 카를로스 사우라의 <브뉘엘>. 앗, 그 노인이 바로 그 유명한 거장 카를로스 사우라였던 것이다. 그 순간 바로 달려가서는 감독님 영화 좋아한다며 사인도 받고, 사진도 찍고, 사우라 영화에 광팬을 자처하는 박흥식 감독도 <나도 아내가…> 포스터 앞에서 사우라와 함께 사진도 찍고. 전날까지 무관심했던 아시아 청년들이 갑자기 떼로 달려와서는 사인공세에 사진까지 함께 찍어대니 사우라 감독은 과연 우리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즐거운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외계의…>의 처절한 상영

윤 감독님 일행이 떠나신 날 저녁 내내 영화의 상영이 있었다. 그 전날부터 상영되었던 단편경쟁작들의 수준이 워낙 뛰어나서 상에 대한 마음은 비운 지 오래였지만, 가급적 어깨는 나란히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 마지막 남은 포스터와 딱지를 챙겨들고는 미리 극장으로 향했다. 이미 이전에 뿌렸던 딱지들은 모두 동이 난 터라 몇개 남지 않은 딱지는 상영관 앞 부스에만 비치하고는 상영시간을 기다렸다. 제발 많은 사람들이 와야 할 텐데, 하는 맘으로 앉아 있는데 상영시간이 다 되어가도 몇 사람 보이질 않았다. 차라리 사람들이 없는 게 나을 수 있겠다, 뭐 이런 생각을 잠시 하고 있을 때쯤 언제 들어왔는지 극장 안에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심지어 바닥에 앉아서 보는 사람은 물론, 서서 보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로 말이다. 역시 딱지 홍보효과가 있기는 있어나 보다.

영화를 떠나서 뿌듯함과 함께 영화 상영이 시작되었는데 이건 웬일? 앞의 35mm 단편들의 빵빵한 사운드와 깨끗한 화면과 너무나도 차이가 나는 나의 16mm 화면. 화면은 너무 어두워서 누가 드라큘라인지 미라인지도 몰라볼 지경인데다 소리는 또 얼마나 작던지. 갑자기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영사실로 뛰어들어갔지만, 뭔 말이 통해야지. 그저 볼륨만 계속 높여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포커스는 영어가 아닌가? 삔이라고 해야 하남? 아무튼 결국 처절하게 상영된 나의 영화는 그런 대로 많은 사람들의 웃음을 이끌어내긴 했지만, 내 영화의 100% 완벽한 상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상영 뒤 마리오 도민스크 집행위원장이 직접 찾아와서 사과를 하긴 했지만, 그게 이들의 잘못인 것만은 아니지 않겠는가? 유일한 16mm 작품인데, 불러준 것만으로 감사해야지 하면서 아쉽지만, 그럭저럭 맘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가 취소됐다고?

영화제의 마지막날, 모든 영화 상영도 끝나고, 스탭들 줄 선물도 두둑이 샀고, 이젠 떠나기만 하면 되는 날, 부천영화제의 송유진 프로그래머와 마지막 점심을 나누면서 공항으로 향한 나. 근데 이건 또 웬일? 10일 전에 비행기가 취소되었단다. 으악! 내일 입학식인데. 아무리 통사정을 해도 그 여자 뭔 말인지 구시렁대면서 내일 비행기 타란다. 또다시 묵직한 짐을 짊어메고는 리볼리 극장에 나타난 나. 아마도 판타스포르투 역사상 이런 게스트가 또 있으랴? 첫날엔 가방 잃어버려, 마지막에 비행기 취소. 아, 기구하기도 한 나의 운명이여! 그래도 그 덕에 송유진 프로그래머의 재치넘치는 <소름> 대리 수상장면도 볼 수 있었고, 마지막 폐막파티도 보긴 했지만, 소중한 입학식을 놓쳐버린 것은 지금도 아쉽다.

이렇게 나의 26일간의 처절한 판타스틱 기행은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항상 감독들 뒷바라지에 힘든 영진위 해외진흥부 분들께 공개적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나에게 사인받은 그 포르투갈 스탭의 바람처럼 좋은 감독이 되어 다시 판토스포르투를 찾을 날을 고대하면서 못난 글을 마감한다. 올라!민동현/ 독립영화감독·<지우개따먹기> <외계의 제19호 계획> 연출 ◀ 이전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