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곡사의 아수라장
[곡사의 아수라장] 이것은 <매드맥스>다
김곡(영화감독) 2015-07-31

보복운전 로드워리어와 인터넷 악플러의 공통점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일단 지난번 기고문에 대한 열화와 같은 성원, 감사드립니다. 사태(?)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재빨리 요약해보자면- 지난번 나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이전 <매드맥스> 시리즈들과는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 아니고, <매드맥스> 시리즈의 마니아로서 “이건 내가 찾던 맛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글을 기고했다가 악플 융단폭격을 맞았다. 사실 인터넷 숙맥인 데다가 SNS를 아예 안 하는 나로서는 생경한 경험이었으니….(오죽했으면 허지웅이 오랜만에 문자를 쳤다, 불쌍해 보였나봐.)

인터넷, 분노의 도로

열광적인 관심에 감격스럽기도 했지만 사실 좀 놀라고 의아한 구석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달랑 2장짜리 글 하나에 악플이 300개씩 붙다니. 게다가 나는 전문 글쟁이도, 안티팬을 달고 사는 전문 논객도 아닌데. 무엇보다도 내가 먹던 김치찌개가 아니라는 말에 이렇게 다들 핏대를 세우시나 의아하기도 하고. 특히 신기했던 점은 그 엄청난 총량과 뜨거운 열기에 비해서, 정작 개별 악플들은 매우 간결한 초단타라는 거다. 항변하고 싶어도 모두 모래바람처럼 흩어지고 있는 글들이라 어디다 대고 목소리를 내야 할지도 모르겠는 생경한 경험(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런 댓글 문화에 익숙하지 않는 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고 무슨 의미일까… 라고 생각하고 있던 때가 바로 운전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생각과 고민에 내가 옆 차선에서 끼어드는 차를 못 보고 속도를 못 줄여주는 실수 아닌 실수를 범했을 때이기도 했고. 바로 그때부터였다. 상대방 운전자는 화가 났는지 즉시 보복운전을 하기 시작하는데, 끼어들까 말까를 반복하면서 내 진로를 방해하는가 하면, 깜박이를 넣었다 뺐다 하면서 약을 올리니, 나도 피할까 박을까 차선을 들락날락, 상대도 죽일까 살릴까 차선을 들락날락, 초단타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중엔 상대 운전자는 좀더 날카로운 초단타 칼치기를 시도하면서 강변북로를 매드맥스의 사막으로 재현해내는데, 이거 뭐 로드워리어도 아니고, 원….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상황이다. 이거구나. 난 드디어 악플 사태의 모든 의미를 깨닫는다. 악플러들이 로드워리어였던 것이다. 인터넷은 그들이 달리는 ‘분노의 도로’였고.

요새 로드레이지가 부쩍 유행이다. 먹물들은 경쟁심화 속에서 풀리는 일 하나 없는 게 사회적 이유라고, 달리면서 쫓고 쫓기는 행태가 인간에 내재한 원초적 야수성을 불러일으킨다는 게 문화인류학적 이유라고 말하지만, 실상 도움은 안 된다. 어쨌든 보복운전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속도경쟁과 공수전환에 익숙해져야 한다. 현상은 다채롭다. TV에선 연일 얼마나 무섭고 심지어는 황당하기까지 한 보복운전의 사례들이 블랙박스에 찍혔나를 보도한다. 경쟁 속에 있거나 혹은 경쟁에서 낙오된 이들이 얼마나 쉽게 묻지마 범죄로 이어지는 데 대해서도 떠들고. 학생이건 주부건 연예인이건 상관없다. 얼마 전에 한 TV쇼 제작발표회에서 연예계 대선배 두명이서 시청률 고속도로에서 보복운전을 하시던 게, 기자들의 블랙박스에 버젓이 찍히는 진풍경도 연출되었다. 하지만 가장 오래되고 익숙한 로드레이지는, 다름 아닌 인터넷의 댓글드립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터넷 도로보다 더 빠르고 경쟁이 심한 도로는 없다. 인터넷 공간은 정보와 의견을 겨루는 공간이고, 무엇보다도 그 속도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정보나 단말기를 업그레이드 못한 놈은 이 경쟁에 끼지도 못한다. 반응속도 3초도 너무 길다. 3초면 더 재치 있고 더 유익한 댓글들이 벌써 몇개나 치고 올라올 시간이다. 3줄은 너무 길다. 주절주절 쓰는 것보다도 초짜티를 내는 건 없다. 고수임을 증명하려면 최대한 짧은 문장, 심지어는 단어 하나로도 모든 사태를 아우르며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공격은 짧고 간결할수록 효율적이고, 너무 길게 쓰면 오히려 효율이 떨어진다. 늘어가는 문장 속에 진심을 들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보복운전에서도 침 한번 뱉고서 튀는 게 가장 효과적인 기술인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내려서 멱살잡고 싸우는 것은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다. 정성스럽게 잡은 멱살 속에 진심이 드러나며 오고가는 주먹 속에 정이 들 수도 있지 않은가. 쿨하게 침 한번 퉤. 냉하게 욕 한번 퉤. 무성의하게 던질수록 더 큰 로드레이지이고, 가볍게 치고 지나갈수록 더 냉철한 로드워리어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겪은 두 사태는 몇 가지 공통점을 공유하는 것 같다. 첫째, 악플들의 대부분은 글쓴이의 권위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영화야 감독 맘인데, 니가 왜 참견이냐”, “좆문가”라는 공격들이 그랬다(추가로 “니는 니 영화나 잘 만들어라”와 같은 디테일 공격도 일품이다). 강변북로의 로드워리어도 그랬다. 특히 너만 직진이냐, 나도 직진이다. 직진우선권이라는 권위를 약탈하고 또 조롱하고자, 그는 끼어들기를 반복했던 거다. 둘째, 악플들끼리 경쟁도 엿보였는데 그것은 누가 더 짧고 간결하게, 하지만 여전히 자신은 안전하게 공격하는가에 대한 효율경쟁이었다. 내가 꼽은 1등은 단 한마디로 공격을 완결하신 댓글이다: “똥”. 강변북로의 로드워리어도 그랬다. 그는 짧게 치고만 들어오지 결코 나를 아예 죽이거나 받으려고 하는 진지하게 큰 동선을 만들지는 않았다(그러다가 블랙박스에 찍히는 날에는 오히려 더 큰 손해일 것이다). 그는 내 차를 전복시킬 의도가 없다. 다만 초단타를 통해서 내 분통을 전복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라지면 임무완료. 셋째, 악플 중에는 체계적인 논리를 펴면서 스스로 오피니언 리더를 자처하는 댓글이 있었지만, 불행히도 그건 순식간에 묻혀버린다. “나도 영화를 29번 봤다, 나랑 한번 논쟁 붙자”라는 댓글을 예로 들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진지하면 뭘 하나. 금세 밀려오는 다음 초단타 악글들에 묻혀서 이미 페이지가 넘겨지고 있는데. 강변북로 로드워리어의 경우엔 깜박이가 그런 역할을 했었다. 깜박이는 모든 보복드립을 교통법규 시스템에 속하게 하는 오피니언 리더 역할로 시도되었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깜박이랑 핸들은 따로 놀기 시작하고, 깜박이의 디렉션과 상관없이 보복드립은 더욱더 자유로워진다(앞으로 더 등장하실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고합니다: 제발 통촉하시길. 여긴 당신이 리드할 오피니언 자체가 없습니다). 우리가(특히- 속도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모든 것이 조지 밀러가 <매드맥스> 시리즈에서 그리고자 했던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조지 밀러가 캐스팅하고자 했던 운전자들이고. 조지 밀러 감독님 덕분에 완성된 거룩한 삼단논법: 악플은 로드레이지다. 그런데 로드레이지는 로드워리어가 한다. 악플러들은 로드워리어들이다.

글쓴이의 권위는 없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았다. 기고문에 보복운전을 한 악플러들은 분명히 로드워리어들이지만, <매드맥스> 시리즈 중 어떤 편에 등장하는 워리어들일까? <매드맥스2>의 휴멍거스 금치산 패거리? 아니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임모탄 워보이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연히 <매드맥스2>의 휴멍거스파에 가깝다. 먼저 댓글들엔 통일된 목표가 없고, 있어도 분명하지 않다. 목표가 있다면 그냥 까는 거다(난 맛있는데 왜 넌 맛없냐). 물론 악플들이 약탈하고 부수려는 것은 권위(이 경우 글쓴이의 지식과 전문성)지만, 그걸 통해서 무엇을 이루려는지는 불분명하거나 없다. 그냥 약탈 자체가 목적이라면 목적이다. 약탈을 통해 국가를 세우려는 임모탄파에 비해서, 휴멍거스파는 약탈 자체, 혹은 눈앞의 생존이 그 목표였던 것처럼. 둘째, 오피니언 리더들이 체계적으로 접근해보려고 해도, 그는 금세 쌩깜당한다. 휴멍거스의 유명한 연설 장면을 보자. 장엄하게 연설을 하고 있노라면 부하들은 자기들끼리 떠들고, 부두목은 말 좀 그만하라고 하고, 심지어 청중이 부메랑을 날리니 휴멍거스 자신도 함께 쳐다보고 앉아 있다. “나도 <매드맥스2>를 29번 봤다”는 분이 바로 이 장면의 휴멍거스다. 체계를 뿌리내려보려는 리더도 휩쓸어버리는 당나라 로드레이지. 셋째,- 이게 가장 재밌다- 악플러들이 물어뜯은 글쓴이의 권위는 사실 텅 빈 것이다. 타깃이 된 그 글은 전문적인 지식과 현학적 해석을 자랑하는 것처럼 보였을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단지 취향 고백에 불과하다. 권위는 원래부터 텅 비어 있었던 거다. 마치 맥스가 나르려던 기름이 사실 모래였듯이, 내가 나르려던 지식은 사실 취향이었던 거다. 그리고 맥스가 영웅 좆문가가 된 것처럼, 나도 비평 좆문가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인터넷 공간에는 선플과 악플, 타당과 부당, 정상인과 금치산자를 판가름해주실 그 영험한 모래폭풍이 없다. 인터넷 공간에서 신도 금치산자인 거다(엔하위키 미러?-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것은 매드맥스다. 사이버 사막에서 벌어지는 금치산 추격전이고, 익명의 초단타로 만들어지는 멍텅구리 몽타주다. 큰 교훈 주신 댓글워리어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