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인터넷 서점의 음반 코너, ‘예약음반’란을 훑어본다. 1995년의 <신세기 에반게리온> O.S.T에 이어지는 예약목록은, 1979년 레드 제플린의 <In through the out door>. 이들은 모두 LP다. CD로, 그리고 SACD로 고음질과 간편함을 찾아 헤맸던 때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2015년 사람들은 LP를 듣고 있다. 턴테이블에 바늘을 올려놓고, 진공관 앰프의 불빛을 벗 삼아 흘러간 시간을 듣고 있다.
올리브 채널에서 약간은 다른 여행 프로그램이 방송 중이다. <MAPS>. ‘로드뷰 지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다. 김희철과 쌈디가 한차에, 최강희와 유리가 다른 한차에 탑승해 제작진이 지시한 업데이트를 지켜가며 로드뷰를 만들어나간다. 이들에게는 다섯 가지 규칙이 주어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40km 이하의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내비게이션이 없는 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이 표방한 대로 ‘강제저속여행’이다. 규칙을 어기면 다음날 여정은 35km의 속도로 제한된다. 어쩌면 걷는 것보다 더 괴로워질지도.
유럽 한복판에서도 구글맵에 접속하고, 몇 테라바이트의 외장하드에 평생 다 듣지도 못할 음원을 소장하고 있는 2015년의 우리에게 아날로그 라이프는 뭘까. 1979년의 LP를 듣고, 간편함이 집약된 집밥을 해먹으면서 자전거를 타는 것일까. 40km의 속도는 느리다 못해 왜 이렇게나 답답하게 느껴지는지. 제주도의 멋진 풍경으로 로드뷰가 만들어지는 TV 속에 몰입하지는 못하고 계속해서 다른 생각 속으로 빠지는 이유는, ‘느리게 달려야 보이는 것들’을 굳이 화면에서 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일지도. 그건, 나만의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