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people
[people] “이분들이 진짜 빨갱이였습니까?”

<레드 툼> 구자환 감독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은 좌익세력을 통제하기 위해 국민보도연맹을 조직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들을 구금하고 학살했다. 23만~45만명으로 추산되는 희생자 대부분은 사상과 이념보다는 당장의 생존 자체가 더 중했던 평범한 농민들이었다. 보도연맹사건은 국가가 저지른 끔찍한 민간인 학살이었다. 구자환 감독의 다큐멘터리 <레드 툼>은 보도연맹 희생자 유가족, 학살의 목격자, 시체 묻는 부역에 동원된 소극적 가담자들의 증언을 엮어, 반세기 넘게 ‘빨갱이 무덤’에 묻혔던 진실을 전한다. 현재 창원에서 <민중의 소리>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구자환 감독이 인터뷰를 위해 서울까지 먼 발걸음을 했다.

-창원, 진주, 거제 등지의 보도연맹 희생자 유해 발굴지를 따라가는 만큼 경남 지역에서 더 많은 상영 기회가 있다면 좋을 텐데 확정된 상영관을 보니 경남에선 창원이 유일하더라.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부터 천대를 많이 받았는데 개봉하는 이 시점까지도 그렇다. 2013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우수작품상을 받은 이후 전국 순회상영회인 ‘인디피크닉’에서 상영될 때도 경남에선 상영이 되지 않았다. 아마도 경남 지역에서 상영 신청을 한 극장이나 단체가 없었던 것 같다. 주제도 무겁고, 자칫 이념 문제로 비칠 수 있어서 작품이 자꾸 소외받는 것 같다.

-이념 논리로 영화에 접근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보도연맹사건이 국가에 의해 일부 진상규명이 됐다고들 이야기한다. 노무현 정부 당시 진실화해위원회가 만들어졌고, 13군데 유골 발굴 작업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때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이 멈췄다. 또한 당시 이승만 대통령을 ‘국부’라 칭했던 사람들, 즉 가해자의 편에 섰던 그룹에선 이 문제를 언급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세력들이 사과를 해야 한다고 본다. 또 법원에서 국가배상 판결이 나왔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희생자와 유족들은 빨갱이로 낙인 찍혀 있다. 현실은 여전히 처참하다. 정치색으로, 이건 옳고 이건 그르다고 판단할 게 아니다.

-2004년, 마산 여양리의 보도연맹원 희생자 유해 발굴 현장에 <민중의 소리> 기자 신분으로 취재 갔다가 사건을 처음 접했고, 이후 10년 만에 다큐멘터리로 완성했다. 다큐멘터리라는 매체로 사건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현장에서 유족들을 만나면 나를 꼭 끌어안고는 어떻게든 영상으로 진실을 알려달라는 말씀을 하셨다. 당연히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21분짜리 영상을 만들어 KBS1 <열린채널>에 보냈었다. 하지만 21분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그 후 영상이 점점 쌓이면서 장편다큐멘터리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유족, 목격자, 부역에 동원된 마을 주민들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이 선뜻 인터뷰에 나서려고 하진 않았을 것 같다.

=유해 발굴 현장에 찾아온 유족들은 한을 품고 온 분들이라 이야기를 토해내 듯 쏟아냈다. 정작 힘들었던 건 유골 매장지에 찾아가 마을 주민들을 인터뷰 할 때였다. 학살을 목격했던 주민들이 입을 닫고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 엄청 설득했다. “어르신, 이분들이 진짜 빨갱이였습니까? 어르신께서 그냥 넘어가신다면, 이분들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은 영영 모르게 되는 겁니다. 그냥 묻고 넘어간다면, 훗날 이런 일이 또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마산 여양리 유해 발굴 작업 때는 마을 주민 한분이 정말 어렵게 자신의 끔찍한 기억을 되새기며 시체를 너덜겅(돌무더기 비탈)에 묻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전작 <회색도시>(2007)는 건설노조의 포스코 점거 농성 당시 하중근씨의 죽음을 다룬 다큐멘터리였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두는 주제는 어떤 건가.

=특정한 주제보다 이른바 꼭지가 돌았을 때, 너무도 부당한 현실을 목격했을 때, 진실이 아닌 것이 진실로 둔갑했을 때, 이건 꼭 알려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