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만들 때에 가장 처음 착수하는 공정은 작가마다 다르다. 나의 경우는 ‘이 이야기가 과연 중요한가?’에 대한 고민을 제일 먼저 한다. 독자에게 중요한 문제인지를 전혀 모르겠다면, 적어도 나에게는 중요한 문제일지라도 오래 고민하는 편이다. 그리고 대부분 그 두 가지는 마주 닿게 마련이다. 그래서 좋은 이야기를 만나면, 타인의 문제에 무심한 세계 한복판에서 나의 문제를 공유하는 누군가를 만난 기분이 든다. 관심 받는 느낌에서 오는 감동의 전조인지도 모르겠다. 아동용과 성인용을 넘어서 좋은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애니메이션 작품으로부터 이러한 관심을 느낀 지 오래되어서인지 ‘애니오덕’으로 장기간 지내온 나도 최근 몇년간 이 매체와 소원해졌다.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 온 힘을 주어 이야기하는 작품을 마주하면 부담스럽거나 화가 난다. ‘지구를 지킨다는 것’이 중요한 문제인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10살 미만의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일수록 ‘되물어보지 않은 당연함’으로 이야기를 꾸며나가기가 쉽다. 우정은 중요하고 정의는 승리하며 지구는 지켜야 한다는 당연함. 하지만 이제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그런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주워드는 시청자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나에게 무관심해 보이는 작품을 마주 대할 때 내가 느끼는 섭섭함은 어린 시청자에게서는 무관심으로 나타난다.
<바이클론즈>에는 그런 나태한 당연함이 없다. 주인공인 바이클로넛 지오에게 지구를 지킨다는 것은 조금도 와닿지 않는 남의 일이다. 꼭 내가 지켜야만 한다면, 돈을 달라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 대사가 태연히 흘러나왔을 때 나는 놀라 기절하는 줄 알았다. 가장 어린 피오를 제외하면 <바이클론즈>의 주인공들에게는 보다 중요한 자신의 일들이 있다. 가족, 돈, 타인의 인정, 또래 친구. 심지어 주인공들을 도와주는 이순희 여사마저 자신의 사정으로 움직인다. 과거 지구를 지키던 전대물의 주인공들이 유니폼의 색상과 외모, 약속된 역할로 패키징되어 제공되었다면 <바이클론즈>의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사정과 각자의 욕망으로 구성된 패키지다. 문득 소녀시대가 처음 나왔을 때가 떠올랐다. 우리의 취향에 대한 성실한 세심함.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