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로 낙타가 때아닌 곤욕을 치른 한주였다. 올해로 4회를 맞이한 아랍영화제(6월4~10일, 아트하우스 모모)에 괜한 불똥이 튈까 걱정이 앞섰다. 극장에 가서 기우라는 걸 알았다. 상영작 거의가 매진이었다. “계단에 앉아서라도 보고 싶다는 관객이 꽤 많았어요.” 영화제 관계자의 귀띔이다. 영화제를 향한 호응은 사무국의 예상보다 훨씬 더 뜨거웠다. 요르단,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등 아랍권 10개국에서 만든 영화 10편을 극장에서 만날 흔치 않은 기회. 해마다 더해진 기대가 올해 보란 듯이 폭발했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아랍에미리트 작품 <아부다비에서 베이루트까지>는 두바이에 사는 세 친구가 의기투합해 죽은 친구의 기억을 찾아 아부다비(아랍에미리트의 수도)에서 베이루트(레바논의 수도)로 향하는 과정을 그린 로드무비다. 머릿속으로 그리던 낯선 중동 대신 고민의 지점도, 친구와 가족이 겪는 갈등도, 심지어 같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21세기 청춘들의 이야기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급부상하는 아랍영화를 주도하는 젊은 감독, 알리 F. 무스타파 감독을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만났다.
-개막작으로 초청된 걸 축하한다.
=한국에 항상 오고 싶었는데, 꿈은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상영이 되는 것도 즐거운 일인데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올드보이>(2003)의 배우 최민식을 특히 좋아하고, <악마를 보았다>(2010)도 좋아하는 영화다. 어두운 스릴러로만 한국을 접했는데 막상 와보니 모두 너무 밝고 친절하다. (웃음) 이렇게 온 게 우주의 힘이 움직인 결과가 아닐까 싶다.
-다른 지역에는 무관심했던 아랍의 젊은이들이 죽은 친구를 계기로 중동 전역을 여행하면서 아랍의 현재를 알아가고 스스로를 돌아본다. 81년생 아랍의 젊은이로서 혹시 자전적인 경험도 녹아 있는지. 이야기의 출발을 들려 달라.
=세 캐릭터 중 누가 나와 같아 보이는가? 사실 세 친구가 나의 캐릭터를 조금씩 나눠가졌다고 할 수 있다. 혼혈인 오마르처럼 나도 아랍 아버지와 영국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라미처럼 어머니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자랐다. 어릴 땐 DJ를 꿈꾸는 제이처럼 밤새 놀다가 야단도 많이 맞았고. (웃음) 이들 모두 아랍인이지만 서양식 교육을 받고 자라 아랍어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서양의 시각을 가진 청년들이 지금 아랍문화권의 혼돈을 바라보면서 변화를 겪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부다비와 베이루트를 여행하는 동안 인물들이 거치는 지역의 의미도 클 것 같다.
=로드무비는 항상 만들고 싶었던 장르다. 첫 작품 <시티 오브 라이프>(2009)는 국제도시 두바이에 모여든 외국인들을 그렸다면, 이번엔 좀더 많은 지역을 다뤄보려고 했다. 원제가 <From A to B>인데, 영어로 어디서 어디까지 간다는 의미다. 그 표현에 지역 아부다비와 베이루트를 대입해 중의적인 뜻을 더했다. 영화에 나온 지역은 운전해서 꼬박 48시간이 걸려 도착하는 먼 여정이다. 이를 통해 각 지역의 문화적 차이를 확연하게 드러내고 싶었다. 요르단은 역사적인 나라이고, 분쟁지역인 시리아는 자유와 독립을 상징한다. 최종 도착지를 ‘중동의 파리’로 통하는 도시 베이루트로 정한 건 여정의 마지막을 축하하자는 의미였다. 설정상 5개 국가인데, 내전 중인 시리아는 촬영이 불가능해서 팔레스타인 남민 캠프에서 대신 찍었다. 총 25일간 타이트한 일정으로 촬영했다.
-여행의 동기로 절친했던 친구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 존재한다. 시리아 내전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점에서, 지금 아랍의 젊은이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내제한 어떤 불안감이 작용한 게 아닐까 싶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처음 이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던 때가 시리아 내전이 막 시작되던 2011년경이었고 그때는 우리 모두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들이 고통받을 줄 상상도 못했었다. 안타깝지만 실제로 친구들이 비슷한 이유로 죽기도 했다. <시티 오브 라이프>에서도 가장 친한 친구가 죽은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걸 보면 중동에 사는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이 그런 무의식적인 불안이 항상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첫 장편 <시티 오브 라이프>가 아랍에서 제작된 최초의 장편극영화라는 수식을 얻고 있는데, 이 수식이 정확한가.
=공식적으로는 맞는데, 정확하게 따지면 아니다. 1986년 제작된 60분가량의 작품이 있었고, 2000년에 만든 장편영화도 있었다. 제대로 상영이 되지 않아 둘 다 최초라는 타이틀을 공식적으로 얻지 못했다. <시티 오브 라이프>의 의미는 처음으로 아랍인이 아랍에서 상업영화를 만들고 아랍에서 개봉해 성공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당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아이어맨>(2008)에 이어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했다. 극장시스템 정비가 안 되어 있어서 정작 수익은 별로 거두지 못했지만, 흥행을 계기로 자국영화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고 아랍영화도 점차 새로운 인프라가 구축되고 있다.
-두편의 작품으로 아랍 대중의 인지도를 얻은 데다, 이번 작품은 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외부적 평가도 있었다. 올해 12회를 맞는 두바이국제영화제의 성장과 함께 아랍의 자국영화 산업유치도 점차 확장되고 있는데, 그 중심에 선 인물로 역할이 클 것 같다.
=아랍은 할리우드영화가 잠식하고 있다.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의 한국 관객이 얼마였나. 수도 두바이 인구가 300만명이 안 되는데 이 영화 박스오피스가 1천만명이 넘으며 지금까지 흥행 기록을 깼다. 최근 들어서는 할리우드영화가 아닌 우리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아부다비영화제를 폐지하고 두바이국제영화제를 더 확장하려는 추세이고, 영화제작지원단체인 ‘이미지 네이션’(Image Nation)도 만들어졌다. 지원금은 마련되어 있는데 정작 영화 만드는 사람이 없어, 바로 다음 작품을 만들게 됐다. 앞선 두 작품의 제작 텀이 4년 정도였는데 갑자기 급해진 거다. 사실 나는 아랍영화계의 센터라기보다는 조력자에 불과하다. 9살 때부터 아버지의 카메라로 가족을 찍고, 그러다가 장난감으로 스톱애니메이션을 찍으면서 영화감독을 꿈꿔왔다. 지금 나의 바람은 최대한 아랍인들이 많이 참여한 자국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숙련된 스탭들이 부족한 탓에 내 작품도 어쩔 수 없이 외국인 스탭이 상당수 참여할 수밖에 없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이번 영화제가 끝나고 바로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로 가서 세 번째 장편 <워디>(The Worthy)를 찍는다. 할리우드와 아랍 합작 프로젝트로 <컨저링>(2013)의 피터 사프란과 <파라노말 액티비티>(2007)의 스티븐 슈나이더가 공동 제작자로 참여한다. 이번엔 지금까지 했던 영화와는 100% 다른 분위기로, 물 부족 사태로 인한 암울한 미래를 배경으로 한 액션 어드벤처물이다.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장르의 영화를 시도해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