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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김수현이 살렸네

<프로듀사>에서 신입 PD가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이유

드라마를 시청하다 보면 거리의 인파에 무심하게 섞여드는 연기자를 원경으로 잡은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극중 평범한 사람을 연기하던 배우와 진짜 갑남을녀들이 한 화면에 잡힐 때의 이질감은 단지 양쪽의 외모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무방비한 표정이 카메라에 노출되거나 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있음을 깨닫고 흘끗거리는 일반인과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연기 중인 배우가 충돌할 때, 드라마 화면을 통해 자유자재로 시점이동을 하던 내쪽에선 불현듯 카메라의 존재를 의식하게 만드는 일반인쪽이 더 이질적으로 느껴지더라. 그럼 반대는 어떨까? 다큐나 예능 프로그램의 카메라 속 진짜 시민 인터뷰와 일반인을 연기하는 배우가 카메라를 맞닥뜨렸을 때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어색해 보일까? 누가 더 카메라를 의식하게 할까?

궁금증에 대한 답은 KBS 예능국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프로듀사>에서 신입 PD 백승찬 역을 맡은 김수현이 내놓는다. 입사 첫날부터 그를 따라다니는 <다큐 3일> 카메라 앞에 선 승찬은 ‘어’나 ‘막’을 자주 섞어 쓰는 말버릇이나 방송에 적합하지 않은 용어에 대한 개념이 없으며 생각이 흐르는 대로 부산하게 시선을 옮긴다. 할 말이 끝나면 카메라맨의 오케이 사인이 나기 전에 등을 돌리기도 한다. 촬영당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의 특징을 정교하게 재현하는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그저 입이 벌어진다. 각기 개별적인 습관을 지닌 진짜 일반인과 카메라 앞에 선 일반인의 공통된 버릇을 알아차려서 자기 몸에 심어놓는 김수현의 승찬 중에 누가 더 일반인 같은지 묻는다면 당연히 진짜쪽을 택한다. 하지만 위의 질문이라면 단연 승찬이다. 방송의 규칙을 체화하지 못한 그의 어색한 모습은 고지식하고 어리바리하고 생뚱맞은데 소신은 굽히지 않고 뒤끝 있는 캐릭터의 속성과 맞물려 있다.

그런 그가 실제 방송국 KBS의 신입이란 점은 조직의 구태의연함에 새로 물을 대는 판타지를 제공한다. 드라마국을 다뤘던 2008년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가치관이 상이한 PD들이 치열하게 부딪치며 다양성에 대한 희망을 심었다면, <프로듀사>는 신입에서 시작해 프로그램 담당 PD, CP, 국장급으로 올라갈수록 나태해지고 처세로 살게 되는 조직이 그나마 유지되는 모습을 제법 신랄하게 비꼬며 시작했다. 그런데 사장이 바뀌는 것으로는 쇄신을 기대하기 힘든 조직에서 방송국 규칙에 채 물들지 않은 신입은 실무자의 교만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한편, 점심과 회식 메뉴를 갈등하는 CP와 임백천이 MC 보던 시절을 회고하는 국장의 신입 시절을 변호하는 역할도 겸한다. 나갈 사람은 나가고 옮길 사람은 옮기는 2015년의 방송 환경에서 조직의 다양성은 글쎄, 오래전 이야기이고. ‘고학력 바보’들의 속성을 김수현의 몸을 빌려 의인화(‘모에화’)하는 길밖에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 α

<채널고정!>

짝사랑하던 학교 선배를 따라 PD가 됐던 승찬처럼 얼결에 방송국에 입사한 사람이 또 있다. 사사키 노리코의 만화 <채널고정!>은 홋카이도 호시 방송국에서 조직의 신선함을 불러올 ‘폭탄’ 역할로 입사한 보도국 기자 유키마루가 주인공이다. 보도국 구성원에 대한 취재가 무척 꼼꼼하고 무엇보다 큰 사고를 치고도 묘하게 수습하며 배워가는 괴짜신입이라는 점이 승찬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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