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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의 경사기도권] 공포의 빨간 우비
허지웅(작가) 일러스트레이션 한차연(일러스트레이션) 2015-06-11

니콜라스 뢰그의 <쳐다보지 마라>의 리메이크에 반대하는 이유

커튼은 보기에도 언뜻 축축했고 나는 거기 손을 댈 만큼 젊고 거리낄 것이 없었다. 커튼을 걷자 10평 남짓한 방이 드러났다. 어둡고 습했다. 얼마나 어둡고 습했냐 하면 어느 누구 하나 손을 뻗어 전등불을 켤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였다. 불을 켜면 어둡고 습한 방의 구석에 그게 뭐가 됐든 아무튼 뭐라도 죽어 자빠져 있을 것만 같았다. 방 안 가득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대화는 거의 없었다. 이 방의 공기를 조금이라도 덜 마시기 위해서가 아닐까, 나는 생각했다. 나도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앉자마자 한쪽 벽이 밝아졌다. 프로젝터가 달구어지는 소리가 났다.

컬트영화 정기 상영회였다. 90년대 말에는 그런 게 많았다. 누군가 비디오테이프 하나를 보물 다루듯 꺼내더니 데크에 집어넣었다. 영화가 시작되었다. 이 방의 공기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풍경이 펼쳐졌다. 차갑게 젖어 있는 영국의 전원이었다. 빨간 우비를 뒤집어쓰고 있는 소녀가 뛰어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녀가 물에 빠졌다. 이야기가 이어졌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내가 어떤 자세였는지 불편했는지 옆에 누가 있었는지, 그딴 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까 그 축축한 커튼에 둘둘 말려 눈만 빼꼼히 내밀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영화가 끝나자마자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이 정거장까지 한달음에 내달려 시내버스의 맨 뒷좌석에 앉자마자 창문을 열고 그때 들이켰던 걸로 지금까지 호흡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깊은 숨을 몰아 마셨던 것 만큼은 확실히 기억이 난다. 그걸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검고 빨갛고 묵직한 액체가 위치를 가늠할 수 없는 수챗구멍 안으로 영원히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영화였다. 마술에 걸린 것 같았다.

그게 <쳐다보지 마라>(Don’t Look Now, 1973)였다. 니콜라스 뢰그의 <쳐다보지 마라>는 만들어진 지 수십년이 지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광들의 입을 통해 여전히 회자되는 작품이다. 영국영화 베스트를 꼽는 차트에서는 늘 상위권을 차지한다. 그 영화의 섹스 신은 연출이 아니라 실제 삽입섹스였다느니, 그게 아니고 실제 섹스를 하기는 했는데 그 컷은 감독만 보관하고 있다느니 하는 식의 논란이 있을 때도 언제나 가장 먼저 언급되는 레퍼런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저 영화 속의 섹스로 낳은 아이가 바로 키퍼 서덜런드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기도 했는데 키퍼 서덜런드는 66년생이다 이 멍청아! 아무튼 그 장면 이야기는 뒤에서 하기로 하고.

영화의 이야기는 이렇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딸이 집 앞의 연못에 빠져 죽는다. 상심한 부부는 남편의 새로운 일터가 베니스로 결정된 차에 함께 그곳에서 머물기로 한다. 베니스에서의 일상이 펼쳐진다. 남편은 오래된 성당을 복원 중이다. 아내는 소일을 하며 남편의 곁을 맴돈다. 둘 다 가족의 비극은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었다. 어느 날 아내는 낯선 할머니 자매를 만난다. 이들 자매는 주인공 부부를 유심히 지켜보던 중이었다. 할머니 자매 중 동생은 눈이 보이지 않는다. 언니는 자신의 동생을 이곳에서 꽤 유명한 심령술사라고 소개한다. 심령술사 동생은 아까 그들 부부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데 이유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들 부부 사이에 죽은 딸이 있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남편에게는 스스로 부정함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것을 볼 수 있는 힘이 있다고도 말한다. 아내는 자매의 말에 빠져든다. 그리고 딸의 영혼이 그들 부부를 보살피고 있다고 믿는다. 남편은 시큰둥할 뿐이다.

이후 남편은 자꾸 이상한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골목에서, 사진 속에서, 뜻하지 않은 곳들에서 빨간 우비를 입은 작은 소녀가 보이는 것이다. 남편은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아내에게 말하지는 않는다. 이 와중에 아내는 심령술사 동생으로부터 “당신의 딸이 지금 당장 베니스를 떠나라고 말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불안을 느낀다. 그때 영국에서 비보가 전해진다. 하나 남은 자식인 아들이 작은 사고를 당해 진찰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아내는 서둘러 영국으로 떠난다. 홀로 남은 남편은 일터로 향하던 중 검은 옷을 입은 아내가 예의 심령술사 자매와 함께 배를 타고 가는 모습을 목격한다. 안 그래도 심령술사 자매를 불신하고 있던 남편은 그들이 아내를 유괴했다고 믿게 되어 수사를 의뢰한다. 그러나 아내는 영국에 있었고 남편은 자신의 착각으로 심령술사 자매가 불편한 일을 겪게 된 것을 미안해한다. 수사당국에 구류되어 있던 심령술사 동생을 집에 데려다준 남편은 밤길을 걷던 중 다시 한번 빨간 우비를 입은 소녀를 목격한다. 남편은 소녀를 쫓아간다. 남편의 뒤를, 이제 막 베니스에 도착한 아내가 뒤쫓는다. 숨바꼭질 같은 추격이 이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충격적인 결말.

<쳐다보지 마라>가 지금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특유의 편집 때문이다. 이 영화의 편집은 그 호흡이 대단히 묘하다. 이 영화에서는 꽤 많은 양의 몽타주가 등장한다. 서로 연관이 없는 컷들이 빠른 호흡으로 교차편집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의 몽타주는 진실에 기반하지 않는다.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불안과 혼돈에 기반하고 있다. 이를테면 어떤 영화의 주인공이 상념에 젖어 있는 컷을 상상해보자. 다음 컷은 바닥에 있는 작은 가방 하나를 비춘다. 다시 주인공을 보여주는 컷으로 돌아온다. 일반적인 경우 이와 같은 편집에서 관객은 주인공이 지금 어딘가에 놓여 있는 저 가방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여기게 된다. 혹은 주인공은 모르고 있지만 가방 안에 폭탄이 들어 있으며 이것이 곧 폭발할 것이기 때문에 아무 조치 없이 그저 생각에만 빠져 있는 주인공을 바라보며 초조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쳐다보지 마라>에서 그런 일반적인 형태의 몽타주는 찾아볼 수 없다. 감독은 순전히 관객의 오해와 착각을 만들어내기 위해 컷을 이어붙인다. 아예 존재하지 않고 순전히 주인공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가방을 보여주며 그것이 실제하는 것마냥 관객마저 주인공의 혼돈 속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즉, 이 영화는 컷과 컷의 논리적인 연결을 통해 관객의 불안과 착각을 생산해내지 않는다. 이 영화 자체가 불안과 착각이다.

이 영화가 유명해지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저 섹스 장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나는 도널드 서덜런드를 너무나 좋아한다. 잭 바우어를 사랑하지만 키퍼 서덜런드를 애정하는 것의 곱절 이상으로 그의 아버지에 심취되어 있다. 도널드 서덜런드는 수없이 많은 영화에서 다양한 역할을 연기해왔다. 그 대부분이 주연보다는 조연이었고 또한 악역이었다. 개인적으로 법칙 같은 것을 만들어낸 게 있는데 도널드 서덜런드 비중의 법칙이라고. 그가 나오는 영화는 일단 재미있다. 그리고 그가 나오는 분량이 많으면 많을 수록 ‘정말’ 재미있다. 그렇게 좋아하는 배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도널드 서덜런드의 알몸을 보고 싶지는 않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관객에게 불행한 일이지만, <쳐다보지 마라>에서는 도널드 서덜런드의 알몸이 정말 오랫동안 등장한다.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자세히 나오는지, 도널드 서덜런드 자신보다 이 영화의 관객이 그의 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줄리 크리스티의 알몸 또한 그렇다(이 부분에 대해선 불만이 없다). 둘의 정사 장면은 너무나 현실적이라 도무지 연기라고 믿을 수 없는 수준이다. 이 섹스 장면은 영화의 촬영 첫날 기습적으로 이루어졌다. 원래 대본에 없었다. 그런데 영화 속 부부의 대화가 거의 논쟁뿐이라 감독이 순간적으로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줄리 크리스티는 본래 일정에 없었던 섹스 장면을 주문받고 경악했다. 그렇게 정사 장면이 촬영되었고, 이게 다음날 아침 부부가 나갈 채비를 하고 집밖으로 나서기까지의 과정과 교차편집으로 구성되면서(벗고-입는 컷들의 조화) 그 분량이 엄청나게 길어졌다. 논란은 길었고 답변은 지체되었다. 도널드 서덜런드는 21세기 들어서야 그것이 실제 성교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이 영화에 대한 애정이 넘치다보니 지면 또한 넘치게 되어 서둘러 마무리하자면. 최근 <쳐다보지 마라>의 리메이크 소식이 전해졌다. 나는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그 믿을 수 없이 강력한 마술적인 기운이 리메이크된 영화에서 재현될 수 있으리라 도무지 상상할 수 없다. 어떤 영화는 굳이 돈을 들여 복기하기보다 그저 원전을 다시 한번 꺼내어 관람하는 게 비교할 수 없이 더 나을 수 있는 법이다. 나는 이 리메이크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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