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먼드 파이크가 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애 셋을 둔 엄마 아비 역으로 돌아왔다. <해피 홀리데이>에서 그녀가 맡은 아비는 천방지축인 세 아이와 씨름하고 철부지 남편과는 이혼 소송 중에 있는 인물이다. 아비는 남편과의 불화를 애써 숨긴 채 시아버지의 생신에 맞춰 스코틀랜드에 있는 가족을 찾아가게 되고 그곳에서 비로소 가족들과 조금 더 가까워지게 된다. 등장인물이 많은 가족극이라 출연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로저먼드 파이크는 코믹물에서조차 자신만의 기운과 강단 있는 얼굴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로저먼드 파이크에게 서면으로 그녀가 생각하는 <해피 홀리데이>의 미덕과 아비에 대해 물어봤다.
-가족 드라마 <해피 홀리데이>의 어떤 매력에 끌려 출연을 결심하게 된 건가.
=단순한 코미디물 이상의 참신하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영화를 보면 중반에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다. 그 일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배울 점이 많다는 걸 의미한다. 섣불리 사람이나 상황을 판단하지 않는 데서 오는 가치가 귀하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다. 게다가 코미디에 일가견이 있는 앤디 해밀턴, 가이 젠킨 두 감독이 연출을 맡는다고 해서 더 좋았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과 <나를 찾아줘>(2014) 출연을 논의하던 중에 <해피 홀리데이>를 촬영한 걸로 안다.
=<해피 홀리데이>의 두 감독은 배우가 직관적으로 즉흥연기를 해볼 수 있도록 이끄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해피 홀리데이>를 찍고 <나를 찾아줘>에 합류했을 땐 아주 마음이 편했다. 심적으로 상당히 자유로웠고 어떤 역할이든 잘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비는 이혼 소송 중인 데다 자신의 새로운 삶을 계획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신경이 곤두서 있다. 아비가 어떻게 그려지길 바랐나.
=아비가 매우 지친 엄마처럼 보이길 원했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여타 부모처럼 아비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어떻게든 가족과 함께하려고 한다. 아비는 부모의 별거로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게끔 지켜주고 싶지만 아이들 스스로도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과소평가한 부분도 있다.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고 남편에 대한 적대감을 잘 감추지도 못하는 인물이다. 정말 재밌는 캐릭터다.
-아들, 딸로 나오는 아역배우들과 함께한 촬영 현장이 궁금하다.
=세 아역배우를 보면서 자연스레 내 아이 둘을 떠올려보곤 했다. 세 아역배우들에게는 이 작품이 큰 모험과도 같았을 거다. 아이들은 촬영 직전까지도 영화의 전체 내용을 알 수 없었다. 성인 연기자들만 전체 대본을 읽었고 아이들은 촬영 바로 직전에야 설명을 듣고 연기에 임했다. 그런 면에서 거의 실시간으로 이야기가 전개됐다고도 볼 수 있다.
-후반부에 아비가 단호한 태도로 곤경에 처한 남편 더그(데이비드 테넌트)를 도와 위기를 넘기는 장면이 있다. 갈등의 골이 깊었던 두 사람이 잠시나마 하나가 된 듯 보이던데.
=아비의 강한 면모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남편과의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남편이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이 자존심을 세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거다. 보통 어른들이 아이처럼 행동할 땐 자존심이나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잖나. 관객이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건 아비와 더그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여전히 이혼 조정 중이라는 사실이다. 다만 서로를 조금 더 존중하게 됐다는 게 중요하다.
-영화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뭔가. 현재 눈여겨보고 있는 작품이 있다면 함께 소개해달라.
=감독이 누구냐가 가장 중요하다. 놀랍게도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차기작은 아직 말하기 곤란하다. 다만 관객에게 놀라움을 주는 캐릭터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