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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FF 37.5] 의상으로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는다
이예지 사진 오계옥 2015-05-01

<화장> 의상감독 이진희

필모그래피

영화 2015 <간신> 2015 <화장> 2013 <하이힐> 2010 <친정엄마> 2006 <공필두>

드라마 2012 <러브 어게인> 2010 <성균관 스캔들> 2008 <바람의 나라> 2007 <하얀거탑>

영화 <화장>에서 보여진 모던함의 일등 공신은 오 상무를 맡은 안성기의 슈트와 추은주 역 김규리의 오피스레이디 룩일 것이다. 임권택 감독 영화에서 현대적이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은 의상을 구현해낸 이진희 의상감독은 영화 속 의상만큼이나 세련된 모습이었다. 예고 시절 서양화를 전공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무대미술을 전공한 그녀는 무대의상에 매혹되어 극단 ‘뛰다’와 트러스트 무용단의 의상감독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무대미술이 극중 시공간을 창조하듯 무대의상은 그 시공간 속 인물을 창조하기에, 연장선상에 있는 작업이라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이진희 의상감독은 전공자답게 회화적인 이미지를 추상하는 것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화장>의 첫인상은 검은 수묵화에 붉은 안료가 퍼져나가는 이미지였다. 절제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이따금 저항할 수 없이 번져나오는 욕망을 그려내기 위해 전체적인 채도와 명도는 낮췄다. 안성기의 슈트는 다운된 톤과 긴장감 있는 핏을 살리는 방향으로 전부 직접 제작했고, 김규리의 의상도 몸선을 은근히 드러내되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는 직장인의 의상으로 표현했다. 무게감 있는 의상들 속에서 이진희 감독은 “인물당 단 두번의 도발을 표현했다”고 한다. 안성기는 김규리와의 식사 자리에서 붉은 카디건을 입어 이성간의 긴장감을 표현한다. 또 한번의 도발은 늘 잘 차려입은 남자였던 안성기가 슬리퍼 차림으로 별장을 빠져나오는 것이다. 그는 맨발에 슬리퍼만으로 연약한 맨 얼굴을 드러낸다. 그리고 김규리의 도발은 오 상무의 상상 속 상여 신과 공연 신에서의 강렬한 붉은 드레스다.

<화장>이 절제된 가운데 도발을 주는 작품이었다면, <간신>은 욕망을 아낌없이 드러낸 작품이다. 정제된 오피스룩을 재현한 <화장>과 달리 <간신>은 동아시아 전통의상의 특징을 다양하게 활용하여 화려한 의상을 만들었다. 왕에게 바쳐지는 여자들이 입는 의상이었기 때문에 과시적이고 연극적인 의상들이 가능했던 것. 이러한 차이는 그녀가 맡았던 드라마에서도 드러난다. <하얀거탑>에서는 멋을 부리기보다는 직업 세계를 보여줄 수 있도록 현실적으로 표현했고, <성균관 스캔들>은 각 캐릭터에 맞는 이미지의 의상을 구현해 꽃미남 3인방의 3인3색 패션을 선보였다.

이진희 의상감독은 “의상감독이 패션 디자이너와는 다른 직업임을 대중이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의상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는 의상으로 극중 인물의 삶을 어떻게 구현할지가 주된 고민”이라는 그녀는 의상감독이 인문학적, 지형학적 소양을 갖추어야 하는 직업임을 역설했다. “상상력이 필요한 작품은 지나치게 고증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당시 그 지역의 사회적 분위기, 관습, 기후 등에 대한 지식은 기본이다. 여기서 나아가 캐릭터를 파악해야 한다.” 그녀는 의상감독의 일이 단지 의상을 만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닌, 의상을 매개로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고 극을 표현하는 하나의 예술임을 강조한다. 앞으로 기회가 닿는 대로 다양한 작업을 해보고 싶다며, ‘종합예술인’을 희망한다는 그녀는 천생 창작자였다.

빈티지 소품

이진희 의상감독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각자의 사연을 가진 빈티지 소품들이다. 그녀는 유럽 시장의 좌판에서 산 것들이라며 족히 수십년은 돼 보이는 신발틀과 인형을 꺼내놓았다. 사람에게도 스토리가 있듯 물건에도 스토리가 있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하다 나에게까지 오게 됐을까? 오래된 소품들의 스토리를 상상하는 것은 그녀에게 훌륭한 영감의 원천이다. 이러한 훈련을 생활화하는 것이 창작하는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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