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팔한 10대나 자기관리가 철저한 20대가 아니고서야 ‘먹는 것이 곧 자신을 만든’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되는 날이 부지불식간에 찾아온다. 평범한 일주일 중에 하루였던 어제 먹은 것을 떠올려본다. 아침은 마트에서 1+1로 구입해온 두유로, 점심엔 자장면에 서비스 군만두 두개를 먹었다. 저녁은 회식이었다. 맥주를 마셨는데, 밥이 될 만한 안주랍시고 빨간 떡볶이와 돈가스를 먹었던 기억이 전부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 들은 말이나, 하루 동안 했던 생각은, 행동은 어땠을까. 유기농적이고, 순수하고,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소위 ‘착한’ 것들이었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악해지고 교묘해졌는데, 우리는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언제나 착한 것을 찾는다. 그만큼 하루하루 나이를 쌓아가는 일이 괴롭다는 방증이기도 할 테다. 네모난 TV 화면 속에서만큼은 지지부진하고 속 터지는 나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지 않기를, 착한 마음으로 바랄 테니 말이다.
KBS2 수목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는 제목대로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 나온다. 캐릭터 면에서도 그렇지만, 흔히 접하게 되는 ‘착한 몸매와 얼굴의 연기자’가 나오지 않는 것도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캐스팅은 아니다. 착한 아이돌 배우 한두분 계시면, 드라마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일본에, 중국에, 동남아에 순회 공연이 가능할 텐데, 이 드라마는 그런 점에선 좀 걱정될 정도다.
회를 거듭할수록 복잡해지는 인물관계 설명만으로도 한 페이지로 부족하겠지만, 일단 착하지 않은 여자들을 중심으로 잠시 들여다보자. 이름난 요리 선생이자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수장 격인 강순옥(김혜자)이 있다. 그녀의 두딸로는 모범생으로 자라나 방송국 앵커가 된 김현정(도지원), 그리고 문제아로 언니와 늘 비교되며 자라온 김현숙(채시라)이 위치하고, 김현숙의 딸로 어머니의 콤플렉스를 메워주는 정마리(이하나)가 있다. 강순옥의 연적으로 강모란(장미희)이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한축을 담당한다. 여기에 이순재, 손창민, 김지석, 송재림 등의 남자 연기자들이 이들의 관계에 온기와 냉기를 동시에 더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목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착함’을 부르짖다 못해 사람의 몸에도, 음식점에도 라벨을 붙여대는 나쁜 세상에 대한 비뚤어진 시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만큼은 내가 비교적 착해진다는 것은 꽤나 의외의 순기능이다. 한 시간, 편하게 본다. 그리고 미련도 별로 남지 않는다. 왠지 수지타산이 맞는 것 같아 ‘아직까지는’ 기분 좋은 드라마다.
+α
그 노래, 참 좋네
이 드라마에도 적지 않은 복고 코드가 나온다. 주인공들의 회상 신에 등장하는 여고 때 모습, 그때의 가수와 음악들. 김현숙이 여고 시절 좋아했다는 ‘레이프 개릿’에 대한 언급이 대표적이다. 그 코드 중 하나, 김현숙의 테마송인 <소녀와 가로등>. 이선희, 진미령 등 여러 가수가 불렀지만 역시 비운의 남매 듀엣이었던 현이와 덕이의 목소리가 나에겐 가장 오리지널로 기억된다. 여기선 이 곡을 어쿠스틱 콜라보가 리메이크해 O.S.T에 수록했다. FM라디오에서 자주 선곡되곤 했던 <그대와 나, 설레임>의 그 팀이다. 물론 O.S.T곡은 드라마의 장면과 오버랩될 때 가장 큰 생명력을 가질 테지만, 이 곡은 한밤중에 혼자 스마트폰 속 세상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의외로 잘 어울린다. ‘밤하늘 바라보았죠/ 별 하나 없는 하늘을/ 그리곤 울어버렸죠….’ 가사 참 착하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게 부여된, 매우 착한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