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재미없다’는 박한 평가를 들으며 침체기에 빠졌던 <웃음을 찾는 사람들 시즌2>(이하 <웃찾사>)가 명실공히 부활했다. 개그맨 안시우, 이수한, 이융성의 ‘배우고 싶어요’는 <웃찾사>의 부활을 주도한 인기 코너 중 하나다. 안시우는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테니스가 배우고 싶어요~ 스파이크, 강시브, 리시브~ 테니스~ 테니스~”만 무한 반복한다. 낯설고 황당하지만 어느샌가 같은 리듬으로 “테니스”를 외치게 되는 무서운 중독성이 있다. 안시우는 2007년 SBS 개그맨 공채 9기로 데뷔해 KBS 드라마 <굿닥터>(2013)에서 모티브를 따온 ‘굿닥터’로 2013년 SBS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우수상을 차지했다. 현재 ‘배우고 싶어요’와 ‘막둥이’ 두 코너에 출연 중이다. 지난해 12월 새로 오픈한 엔터식스 한양대점 웃찾사전용관을 찾아가 안시우를 만났다. 진지한 얘기를 하다가도 개그로 마무리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는 천생 개그맨이었다.
-‘배우고 싶어요’의 인기로 부쩍 주가가 높아졌다.
=그런데 내가 이 인터뷰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찾아보니 저명한 분들이 인터뷰한 꼭지던데. 사진도 흑백으로 멋있게 찍고.
-그와 다른 꼭지다. 급하게 찾아본 것 아닌가. (웃음)
=다행이다. (롤업한 옷소매를 가리키며) 아무튼 주황색 포인트가 보여야 해서. (웃음)
-3월22일부터 <웃찾사>가 방송시간대를 일요일 밤 8시45분으로 옮긴다. 전통의 강자 <개그콘서트>와의 정면승부다.
=하필 <개그콘서트>랑 <코미디 빅리그> 사이에 껴가지고…. 드라마 <장미빛 연인들>은 왜 그렇게 재밌나? (웃음) 우리 개그맨들 입장에선 좋은 시간대에 방송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최근 시청률이 조금 올라서 더 잘해보라고 기회를 준 것 같다. KBS, tvN의 코미디 프로그램까지 한 군데에 몰려 있으니 아예 ‘일요일 밤은 코미디 프로그램 보는 시간’이라는 인식이 생겨나면 좋을 것 같다.
-코너 개편은 없나.
=늘 있다. 방송엔 11개 코너만 나가는데 녹화는 14개씩 뜬다. 재밌는 것만 방송에 나가고 아닌 건 버려지는 거다. ‘배우고 싶어요’가 인기 코너여도 그주에 ‘삐끗’하면 방송 못 나간다. 그렇게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선의의 경쟁이다.
-시청자가 모르는, 없어진 코너가 꽤 많겠다.
=나만 해도 10개가 넘는다. 편집된 날은 술 많이 먹는다. 재기를 다짐하며 서로 욕한다. 네가 못해서 그렇다고. (웃음) 편집된 코너는 일주일 뒤에 버리고 새 거 가져오든지 더 재밌게 고쳐서 가져와야 한다.
-유행어를 하도 세뇌시켜서 ‘배우고 싶어요’도 코너 이름이 다들 ‘테니스’인 줄 안다.
=’굿닥터’를 할 때 모티브가 된 드라마가 종영한 뒤 우리도 올드해 보일까봐 코너를 폐지할 수밖에 없었다. 제목을 그렇게 짓지 말걸. 그래서 ‘테니스’라고 하면 금방 내려야 할까봐 제목 지을 때 무척 고심했다. 축구, 농구, 탁구 다 할 생각으로 그렇게 지었는데 ‘테니스’가 너무 각인돼서 망했다.(웃음) 얼마 전 라디오 녹음실에서 작가분이 내 팬이라고 반가워하시면서 “‘배워봅시다’ 잘 보고 있어요”라고 인사하더라. (웃음)
-테니스 말고 그냥 다른 것도 해보면 되잖나.
=공연 보러온 관객 앞에서 “탁구를 배우고 싶어요~” 하니까 관객이 당황하고 의아해하더라. ‘나는 테니스를 보러왔는데 왜 저걸 하고 있지?’ 하는 물음이 관객의 얼굴에 써 있었다. 그래서 요즘엔 ‘테니스’를 하되 라켓을 이용해 개그를 하거나 삼행시를 만드는 식으로 변주해보려 하고 있다.
-평소 아이디어는 어떻게 만드나.
=지금이야 열심히 회의하지만 처음엔 놀다가 만들어진 코너다. 평소에도 ‘강남엄마’, ‘굿닥터’를 같이 한 이수한씨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수한이 형은 고맙게도 “너 이거 짜봐, 이거 진짜 웃겨” 이런 말을 항상 해준다. 그렇게 같이 짠 게 ‘굿닥터’였고, 그 덕에 나는 상도 받았다. 지금 ‘배우고 싶어요’에서도 수한이 형이 옆에서 계속 웃고 있잖나. 원래는 같이 하는 게 아니었는데 옆에서 나랑 (이)융성이 형이 코너 짜는 거 보고 수한이 형이 막 웃는 거다. 그런데 그걸 보고 있으니 우리도 웃기지 않겠나. 그러다 고정 포맷이 됐다.
-일주일은 어떻게 보내나.
=눈코 뜰 새 없는 일주일을 보낸다. 매주 금요일에 녹화를 하고 토요일, 일요일엔 공연을 한다. 화요일, 목요일에는 다음 회차 대본회의를 한다. 그사이 남는 월요일, 수요일에 그주 공연할 대본을 만들어놔야 하는 거다. 사실상 쉬는 날이 없다. 오늘처럼 따로 인터뷰를 한다거나 하면 끝나고 바로 퇴근하는 게 아니라 이 시간을 빼고 다른 시간에 팀원들이랑 만나서 개그를 짜야 한다. 그래서 자주 밤샌다. 어제도 새벽 3시까지 개그 짰다. 이 인터뷰만 아니었으면 늦게까지 잤을 텐데. … 농담이다! (웃음)
-어릴 때부터 그렇게 끼가 넘치는 아이였을까 궁금하다.
=나서기는 엄청 나서는 애였다. 그런데 대학은 자동차학과를 나왔고 개그맨 시험도 예상하지 않았는데 본 거다. 원래 일본 관광가이드가 될 생각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잠깐 책 내려놓고 쉬던 중에 갑자기 개그맨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해졌다. 검색을 해보니 개그맨이 되려는 사람들끼리 온라인 카페도 만들고 그러더라. 가입하고 개그맨 되고 싶은 사람들끼리 만나서 술 한잔하자고 글을 올렸다. 거기서 만난 분들이랑 아마추어 개그 프로그램 KBS <개그사냥>에도 나갔다. 그게 나에겐 방송 시작이었고, 데뷔는 SBS 개그맨 공채로 했다. 엉망이다. (웃음) 우리가 <웃찾사>에서 하도 <개그콘서트> 이기고 싶다고 해서 많이들 사이가 안 좋은 줄 알 텐데 실제론 KBS 개그맨들이랑 서로 모니터링도 해줄 정도로 사이가 좋다.
-공채 땐 어떤 개그로 붙었나.
=KBS <개그사냥>으로 방송을 시작해서 개그맨 시험도 KBS를 먼저 봤는데 떨어졌다. 그때 개그맨 되겠다고 생각한 지 5개월밖에 안 됐을 때였다. 시험장 가서 개인기랍시고 뭘 했는 줄 아나? 사자후를 보여주겠다면서 선풍기를 들고 가 틀어놓고는 ‘아~’ 하고 있었다. 떨어질 수밖에. 그 뒤 1년간 소극장에서 공연하며 지내다 SBS 개그맨 공채에 응시했다.
-그땐 무슨 개인기를 보여줬나.
=개인기보단 코너 기획을 잘 짜간 것 같다. 개인기를 따로 안 물어보셨다. 1년간 소극장 생활하며 시험 준비도 많이 했다. 나의 개인기가 재미있거나 재미없는 걸 보는 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보시는 것 같았다.
-갑자기 개그맨이 돼서 부모님도 놀라셨겠다.
=처음엔 내가 TV에 나오는지도 모르셨다. 공부 안 하고 뭐했냐 하실까봐 집에다 말을 못했다. 한달쯤 뒤에 어머니께만 요즘 방송에 나온다고 하니까 뭐 잘못한 거 있냐고 물으셨다. (웃음) 아버지는 석달 동안 모르고 계셨는데 당시 우리집이 고깃집을 하고 있었다. 늦게까지 식사하는 손님이 TV를 틀었는데 그때 아버지가 내가 <개그사냥>에 나온 걸 보셨다. 그 뒤 개그맨 공채에 붙었을 때도 아버지는 좋아하지 않으셨다. 신인이라 1년에 한 코너 겨우 할 때였으니까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걱정되셨을 거다. 4년 전부터는 방송을 한주도 안 쉬고 나왔는데 이젠 아버지도 <웃찾사>를 챙겨보실 정도로 좋아해주신다. 가끔 약주하시고 친구분들 전화를 바꿔주시기도 한다. 지지난해에 SBS연예대상 코미디부문 우수상(공동수상 남호연)을 받았을 때는 아버지가 어른들께 한턱내느라 돈을 엄청 쓰셨다고 하더라. 뭐, 내 돈 아니지만. (웃음)
-지금처럼 되기까지는 고생이 많았겠다. 벌써 개그맨 9년차인데.
=선배들이랑 술 한잔하면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오래 있으면 언젠간 된다”고. 우리 동기가 스무명 뽑혔는데 지금은 나와 수한이 형, 홍현희까지 세명 남았다. 방송을 꾸준히 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방송을 해야 내가 개그맨인 게 알려지고 다른 데서 섭외가 오고 그게 수익이 되는 거니까, 방송을 못하면 올스톱이다. 재밌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다가 재미없다는 소리 계속 듣고 있으면 자괴감도 생긴다. 그런데 한 분야에서 10년은 해야 뭐가 보인다고 하잖나. 나는 이제 시작인 것 같다. 그리고 내년이 되면 더 길이 보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 톱클래스인 유재석 선배도 무명 시절이 있었다. 유재석 선배가 무명 시절 얘기를 하시며 어떻게 저렇게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까 싶었다. 부럽더라. 나도 열심히 해서 나중에 “옛날에 한 10년 무명이었죠~”라고 웃으며 말하고 싶다.
-요즘은 길에서도 다들 알아보겠다.
=요즘엔 초등학생, 유치원생 친구들도 길 가다 붙잡는다. 휴대폰을 입가에 내밀면서 ‘배우고 싶어요’ 코너를 통째로 녹음해달라고 한다. (웃음) 엄마들이 그러지 말라고 말리는데 나는 그런 게 다 고맙다. 내 꿈은 사람들이 나를 많이 알아봐주는 거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게 아니라 다들 안시우는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웬만하면 사진도 다 찍어주고, 길에서 녹음도 다 해준다. 조금 전에도 여기 인터뷰하러 왔다가 일하는 분이 자기 친구랑 통화 좀 해줄 수 있냐고 전화기를 내밀더라. 받자마자 “어머 팬이에요~” 해줘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웃음) 특히 부모님과 같이 다닐 때 길에서 누가 아는 척을 해주면 제일 좋다. 기뻐하는 부모님을 보고 있으면 효도하는 기분이 든다. 얼마 전엔 조금 수입이 생겨서 이모네 식구들까지 불러 소고기를 사드렸다. 미리 다 계산해놓고 넉넉하게 드시라고 할 때 정말 뿌듯했다.
-앞으로는 올라갈 일만 남았다.
=당장은 시트콤 연기를 해보고 싶다. 주인공? 그건 내 역할이 아닌 것 같고 감초 역할로 캐릭터를 잘 보여주고 싶다. 장기적인 꿈은 50살, 60살이 돼도 길에서 “어? 안시우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다.
‘배우고 싶어요’
처음 보면 누구나 당황한다. 이게 뭐지? 성대결절이라는 웬 마른 청년이 나와 괴이한 목소리와 기이한 움직임으로 “테니스가 배우고 싶어요~ T-E-N-N-I-S, 테니스!”만 반복한다. 개그맨 안시우와 <웃찾사>를 알린 코너, ‘배우고 싶어요’다. 유행어라기엔 너무 길고 아스트랄한, 그러나 특유의 중독성 있는 리듬 덕에 객석으로부터 난데없는 ‘떼창’을 가능하게 하는 이상하기 짝이 없는 개그. 한번 빠져들기 시작하면 이만큼 웃긴 개그가 또 없다. 코너를 만들 때 PD는 “이것은 모 아니면 빽도”라고 했단다. 한팀인 이수한이 옆에서 객석이 떠나가라 웃어대는 것도 처음엔 애드리브였다고. 안시우는 “시청자 반응을 보니 모도, 빽도도 아니고 윷쯤 되는 것 같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