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일본 감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4회 마리끌레르영화제가 이와이 슌지 감독 특별전을 여는 이유란다. 특별전 상영작은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1), <하나와 앨리스>(2004)와 국내 미개봉작인 <뱀파이어>(2011)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 잠시 한국을 찾았다. 오랜만의 방한이 반가워 그에게 잠시 시간을 쪼개달라 청했다. 여전히 이와이 슌지 감독은 영화, 애니메이션, 음악까지 전방위로 활동 중이었다. 얼굴이 꺼칠해 보인다고 하니 “인터뷰 전날도 늦은 밤까지 신작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고 답한다. 늘 그렇듯 간결한 답변에 표정 변화가 거의 없었지만 질문을 한참 곱씹다 천천히 답을 내놓는 데에선 작업에 대한 애정과 함께한 이들에 대한 배려가 깊이 느껴졌다.
-특별전 상영작은 직접 골랐나. 전부 아오이 유우의 출연작이라 아오이 유우 특별전 같기도 하다.
=공교롭게 그렇게 됐다. (웃음) 상영작은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이 먼저 제안했다. 감독인 나로서는 모든 작품에 애정이 각별하기 때문에 오히려 나보고 고르라고 하면 힘들었을 거다. 신작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이 현재 일본에서 상영 중이다. 한국 공식 개봉도 곧 뒤따른다고 들었는데 특별전에서 미리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뱀파이어>는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미드나잇패션에서 상영된 후 뒤늦게 한국 관객을 만나게 됐다.
=어제 <뱀파이어>의 관객과의 대화가 있었는데 어느 관객이 <러브레터>(1995)의 LP판을 가져왔더라. 나도 CD 세대라 내 작품의 사운드트랙 앨범이 LP로 만들어진 걸 보니 신기했다. (지난해 <러브레터>의 O.S.T 앨범이 500장 한정 LP판으로 출시된 바 있다.-편집자)
-소녀들에 대한 당신의 애정과 경외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뱀파이어>에서 사이먼(케빈 지거스)은 지속적으로 소녀들의 죽음을 관장하다 결말부에선 자신의 피를 흘려 미나(아오이 유우)를 살려내기에 이른다.
=<뱀파이어>는 나의 동명 소설에서 시작된 영화다. 소설에 비해 영화에선 생명과 여성에 대한 나의 관점을 많이 덜어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강력했던 모양이다. 생명 자체에 대한 경외를 담고 싶었다.
-여성의 아름다움과 순수를 해치지 않으려는 연출로 일관한다. 가령 알츠하이머 환자인 사이먼의 어머니는 치매노인의 일반적인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하늘을 날아 바닥으로 내려오는 결말부와 그녀가 매달고 다니는 풍선을 보면 천사처럼 보이기까지 하는데.
=약하고 고립된 존재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영화에 많이 담으려 하는 편이다. 여성, 아이, 노인의 존재가 내 영화에서 강조되는 이유다. 역으로 건강한 남성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건 콤플렉스다. 지금 새로 쓰는 작품도 남성을 보여주려고 시작했는데 잘 안 풀리고 있다. 남성은 대부분 변질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뱀파이어처럼. (웃음)
-캐나다 로케이션에 외국인 배우를 기용해 만들었다. 일본에서 일본 배우들과 작업하는 것과는 어떻게 다르던가.
=일본 현장에선 영화를 배우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일하러 왔다. 해외에서 작업할 땐 그곳의 프로페셔널한 인력이 투입됐고, 그래서 일하기가 훨씬 편했다. (웃음)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은 <하나와 앨리스>의 프리퀄이자 당신의 첫 애니메이션이다.
=둘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를 담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만화가가 꿈이었고 지금도 그림을 많이 그리고 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은 나에게 잘 맞는 작업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실사영화 감독이 어떻게 애니메이션을 만드냐는 얘길 많이 듣는데 애니메이션은 실사영화와 달리 내 마음대로 수정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수월하다.
-배우들이 실사 연기를 한 뒤 그 위에 작화를 하는 로토스코프 방식으로 제작됐다.
=일정이 맞지 않아 실사 연기는 다른 배우들이 했고, 아오이 유우와 스즈키 안은 목소리 연기에 참여해줬다. 이전에 제작자로 참여한 기타무라 류헤이 감독의 <바톤>(2009)도 같은 방식으로 제작했다. 그땐 주연배우 이치하라 하야토와 우에토 아야가 실사 연기와 목소리 연기를 모두 직접 했다.
-오래된 얘기지만 안노 히데아키가 연출한 <식일>(2000)에선 배우로 참여했다. 연기자로서의 위치 바꿈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
=안노 히데아키 감독과도 친하지만 지브리 스튜디오의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가 요청을 해왔다. 너무 바빴던 때라 거절했는데 역할이 작으니까 일하면서 쉬엄쉬엄해도 좋으니 나와달라고 하더라. 영화감독 역이라 진짜 감독을 쓰고 싶다고도 했다. 별 역할 아닐 줄 알고 하겠다고 했는데 막상 시나리오를 받아 보니 대사도 많고 큰 역할이었다. 속았다고 생각했지만 이왕 하기로 한 것 나름 열심히 준비해서 찍었다. 늘 카메라 뒤에서 보기만 했는데 다른 포지션으로 현장에 있으니 신선했다. 하지만 앞으로 연기는 하지 않을 거다. 연기를 업으로 삼고자 하는 이들의 영역에 내가 끼어드는 것은 옳지 않다. 그들이 일할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내 역할이니까.
-3월18일엔 배우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시이나 고토네, 피아니스트 구와바라 마코와 결성한 밴드 헥토파스칼의 첫 미니앨범 ≪우리들≫이 발매된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두 젊은이의 활동을 응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 또한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뭉치게 됐다.
-밴드 이름이 왜 헥토파스칼인가.
=각본가 기타가와 에리코가 헥토파스칼이란 팀명을 만들어주었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소설에 보면 ‘파스칼’이란 아이디를 가진 사람이 나온다. 그게 나다. 일본어로 ‘토’(と)는 ‘~와’라는 뜻이다. 따라서 헥토파스칼은 ‘헥’과 파스칼이란 의미다. (웃음) 시이나 고토네와 구와바라 마코가 ‘헥’이고. 둘은 ‘헥’이란 유닛으로 앨범을 낼 생각도 하고 있다. (웃음)
-신작을 발표하면 홈페이지 ‘이와이슌지영화제(iwaiff.com)’에서 한달간 무료로 작품을 볼 수 있다. 보통 감독들은 자신들의 영화를 무료로 공개하는 경우가 잘 없지 않나.
=<러브레터>는 한국, 중국에서 해적판으로 많은 사람들이 봤다. 그게 나에게 돈이 되진 않았지만 그렇게 내 영화를 본 사람들이 있었기에 내가 이만큼 알려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저작권이 굉장히 잘 지켜지는 편이다. 그것은 아주 중요한 이슈이지만 때로 그 권리를 너무 중시한 나머지 관객 접근의 여지를 줄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반 관객이 창작물에 가까이 닿을 수 있는 여러 방식을 모색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다.
-곧 신작 촬영을 시작한다고 들었다.
=여러 이야기 중 가장 먼저 들어갈 작품은 인터넷과 현대사회의 서비스에 관한 내용이다. 인터넷 세계와 현실 사이에서 번뇌하는 여자의 이야기다. 테크놀로지를 부정하는 내용은 아니다. 오히려 인터넷이 지닌 의외의 장점을 보여주고 인터넷이 보편화하기 이전 세계의 단점도 비틀어 표현한 작품이다. 언젠간 한국에서도 작품을 할 계획이 있다. 한국의 프로듀서와 함께 진행 중인데 당장 시작할 아이템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