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 최근엔 종류도 다양해지고 마니아도 생겨서 꽤 깊어진 모양인데, 초등학교 시절 보드게임은 지존만 존재했었다. 지금도 마트에 가면 볼 수 있는 그 이름, <부루마블>. 스무살이 넘은 뒤에야 <모노폴리>를 접하고 나서는 무언가 어색한 기분이 들었었지만, 초등학생 때의 그 열기는, 분위기는, 심지어는 공기의 냄새까지도 이미 박제되어버린 기억이었다. 우대권을 가지고 무인도를 탈출하며 뉴욕과 홍콩에 호텔 3채씩을 소유한 부자가 되는 기억. 스톡홀름에 별장 하나 짓고 두알의 주사위를 다시 힘껏 던지던 기억. 세계의 다양한 나라와 그 수도들을 거기서 배웠다고 하면 과장일까 싶지만, 최소한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우리가 그 보드 위에서 꿈을 꾸었다는 것 말이다.
어느샌가 <JTBC 뉴스룸>과 함께 JTBC의 대표 프로그램이 된 <비정상회담>. 그 <비정상회담>의 외전 격인 프로그램이 이제 막 시작한 참이다. 제목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비정상회담>으로 널리 알려진 이탈리아의 알베르토, 벨기에의 줄리안, 미국의 타일러, 캐나다의 기욤, 중국의 장위안, 그리고 유세윤.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하며 한국의 문화와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이야기가 여과되어 나오는 틀은 모국의 특성을 그대로 닮아 있기에 더욱 흥미로운 그들. 그들이 <비정상회담>으로 친구가 된 이들의 집을 찾아나선다. 첫 목적지는 중국의 장위안 집. 프로그램은 이젠 흔한 포맷인 여행 버라이어티의 공식을 따르고, 장위안의 한국 집에서 여행을 준비하는 신으로 프로그램은 첫 단추를 꿴다. 그런데 30분이 흘러가도록 이들은 아직 출발조차 하지 못한다. 각자의 성격과 방식으로 짐을 싸는 셀프카메라 촬영 영상이 플레이되고, 공항에서 서로의 여권을 비교하고 신기해하며, 그들은 그렇게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른다. 가까스로 도착한 중국에선 흥정과 흥정 속에서 숙소에 찾아가는 내기를 하고, 100위안을 가지고 2인1조로 문화체험을 한다. ‘내 친구’ 위안이네 집에 가는 길은 아직도 멀고 험하다.
결국 그런 것 같다. 이 프로그램이 재밌는 이유, 40분째 여행은 시작도 못한 채 설왕설래하고 있어도 계속 보고 싶게 되는 이유는, 서로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각국의 젊은이들이 ‘한국과 한국말’이라는 공통 배경을 가지고 이야기하면서도 자신만의 캐릭터를 분명하게 살리고 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심지어 그 캐릭터는 이미 모체인 <비정상회담>에서 충분히 쌓아올린 내공을 바탕으로 한다. 수회가 계속되어도 캐릭터가 정립되지 못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많고, 그 때문에 막을 내리기도 하는데, 여긴 리스크 관리가 이미 되어 있다. 자연스럽고, 익숙한데 상황이 바뀌니 안정감 속에서 우연성과 재미가 배가된다. 더구나 여행이다. 친구의 집을 방문한다는 정감어린 스토리도 엮인다. 영리한 기획이다.
+α
제목이 익숙하죠?
언제였던가, 친구들과 이름을 외우기 어려운 3대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테오 앙겔로풀로스, 그리고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하나같이 명예의 전당급 감독들인 그들 중 하나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다. 어린아이의 천진한 동심을 통해 우리를 비추어볼 수 있는 달콤쌉싸름한 영화. 제작진이 제목을 지을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우리는 이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는 핑계를 하나 얻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