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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타협은 가능한가
조종국 2015-03-03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권고 사태 논란 그 이후

2월9일에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미래비전과 쇄신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

한바탕 돌풍이 몰아쳤던 해운대가 여전히 스산하다. 당장 거센 파도는 잦아들었지만 태풍의 여진인지, 먼바다에 도사리고 있는 너울의 전조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서병수 부산시장의 이용관 집행위원장 사퇴 권고 파문이 소강 상태로 접어든 듯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의 분위기는 아직 긴장감이 역력하다. 지난 1월23일 부산시장이 이용관 위원장에게 사퇴를 권고한 이후 공방이 오가다, 1월27일 이용관 위원장과 부산시장이 직접 만나 어정쩡하게 봉합하는 듯한 ‘할리우드 액션’을 연출했다. 겉으로는 서로 유감을 표하고 쇄신안을 내라는 시장의 요구를 이용관 위원장이 받아들여 일단락하는 모양새였지만 사실은 본 게임을 앞둔 스파링이었던 셈이다.

상황을 요약하면, 지도점검 결과가 안 좋으니 집행위원장이 물러나고 쇄신을 해야 한다는 부산시의 요구에, 부산영화제는 행정절차가 미흡하거나 오류가 있으면 개선하면 될 일이지 집행위원장에게 물러나라고 하는 것은 다른 의도라고 맞서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양쪽 모두 속내를 가리고 서로 모르는 척 변죽만 열심히 울리고 있다.

부산시는 지난해 부산영화제 때 시장이 <다이빙벨> 초청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는데 상영을 강행한 집행위원장을 ‘자르겠다’는 것이고, 부산영화제는 일련의 사태가 <다이빙벨> 상영에 대한 명백한 보복인 줄 알지만 ‘보복하지 마’라는 말을 대놓고 안 할 뿐이다. 사태의 배경이 <다이빙벨>임을 모두가 알고 누구도 부인하지 않지만 다만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을 뿐이다.

부산시, 영화제에 대한 지도점검 결과 공개

잠정 휴전 상태로 물밑 수 읽기에 분주하던 지난 2월4일, 부산시가 기습 ‘선방’을 날렸다. 부산지역 한 언론이 부산시의 부산영화제에 대한 지도점검 결과를 전격 보도했다. 부산시가 처음 낸 보도자료에서 지도점검 결과 문제가 있다고 했던 직원 공개채용을 안 한 인사 문제, 방만한 회계 운영, 프로그램 선정 부적절 등과 관련한 단편적인 사례를 나열한 기사였다. 각종 규정 위반이 일상화되어 있고,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며 그런 타락한 모습이 부산영화제의 실체라고 힐난했다.

이에 부산영화제는 즉각 보도자료를 내고 반박했다. 이용관 위원장과 시장이 만나서 ‘잘해보자’고 합의한 지 일주일 만에 “사실상 부산국제영화제를 흠집내는 자료가 언론사에 제공되고 기사화된 것도 통상적이지 않다. 첫 보도가 뉴스를 공급하는 통신사라는 점도 우연이라 보기는 어렵다”며 부산시의 언론 플레이라고 반발했다.

부산영화제는 지도점검 결과가 특정 언론사에 흘러간 경위도 불순한 의도에 따른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부산시에서는 기자가 정보공개 청구를 해서 정당한 절차에 따랐다고 했지만, 지도점검 결과는 공개자료로 보기 어렵고 행정절차가 완료되지도 않은 시점이라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 “부산시 공무원들이 부산 지역 각계 인사들은 물론 영화계 원로들까지 연락해서 부산영화제를 비방하고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음해한 사례를 여럿 알고 있다”며 지도점검 결과 보도도 그 연장선이라는 것이다.

부산시로부터 지도점검 결과를 받고 ‘자체적으로 이에 대한 소명과 개선 방안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영화제에 상처를 주고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부산시의 술수라고 맞받은 것이다. 부산시의 자료는 중앙 언론사에는 전혀 받아 쓰지 않았고, 소수 지역언론에 보도되는 데 그쳐 언론에 확대 재생산되도록 하려던 속셈은 별 소득 없이 끝났다.

어쨌거나 부산시가 문제 삼고 있다는 지도점검 결과는 어떤 것인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흔히 문제 삼기 쉬운 인사와 회계, 영화제의 근간이 되는 프로그램 선정 문제를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 부산시의 의도가 엿보인다. 정규직원을 공개채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중요하게 지적했다. 이에 대해 부산영화제는 해마다 100여명의 단기 스탭을 전면 공개채용해서 기간제근로자, 계약직 등으로 일한 다음, 정규직으로 전환 채용한 사례에 대한 의도적인 흠집내기라고 설명했다. “단기 스탭으로 공개 채용한 후 다년간 단계적으로 수련과 검증을 거친 다음 정규직원으로 채용하는 방식은 문제점이 아니라 모범사례로 권장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몇 차례 그런 지적이 있어서 2014년부터 완전 공개채용을 시행하고 있는데 지난 일을 이렇게 문제 삼는 것은 그야말로 트집 잡기라고 항변한다.

‘재정 운영이 방만하다’는 지적에 대해 부산영화제는 “불가피한 사정에 따른 과실이 발생한 경우는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사소한 착오나 단순 부주의에서 비롯된 단편적인 사안이 대부분인데, 시정하고 합리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하자고 하면 될 일을 침소봉대하거나 왜곡해 재정 운영이 방만하다고 지적한 것은 수긍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프로그램 선정에 대한 부산시의 공세는 사실 직접적이다. 부산시는 첫 보도자료(1월24일)에서 ‘프로그램 선정과 관련하여 상임집행위원회를 개최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대놓고 물음으로써 <다이빙벨>을 선정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쪽으로 몰아갔다. 부산영화제는 영화제 상영작은 ‘프로그래머의 영화관(觀)과 안목에 따른 주관적 판단이 먼저이며, 이는 존중해야 할 영화제 프로그래머의 기본적인 권한’이라고 전제하고, “프로그래머의 초청작 선정 경향은 영화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유지하는 절대적인 조건이 된다. 이는 세계적인 유명 영화제들도 마찬가지이다”라고 일축했다. 회계 등 행정적인 사안에 대한 지적은 일부 수용하고 시정하겠지만 프로그램 선정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피력한 것이다.

부산영화제는 부산시의 지도점검 결과가 ‘국제영화제를 준비하고 운영하는 업무의 고유성이나 특성에 대한 전제가 전혀 없고, 이를 수행하는 조직의 개별성이나 불가피한 현실적인 여건도 전혀 감안하지 않은 지극히 일방적인 주장’이라며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박하면서도 한껏 신중하다. ‘조직 운영이 폐쇄적이고 독선적’이라는 부산지역의 일부 비판에도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9일 ‘부산국제영화제 미래비전과 쇄신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부산시민과 지역여론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사실 ‘부산시는 부산영화제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부산영화제는 적극 쇄신해야 한다’며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2월11일 이용관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부산시의 지도점검 결과와 부산영화제가 제출한 소명자료에 대해 공정하게 검증을 하자고 제안했다. 단호한 입장을 피력했지만, 맥락은 공개검증을 통해서라도 논란을 털어내고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매듭짓자는 나름 타결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정기총회가 이번 사태의 첫 번째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2월25일로 확정하고 준비 중인 정기총회 일정을 두고 부산시가 느닷없이 연기를 요구하는 등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정기총회를 계기로 이용관 위원장과 서병수 시장이 다시 만나 대타협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대타협을 해도 휴전이나 정전일 뿐, 긴장과 갈등을 거듭하는 한반도 정세와 비슷한 꼴이 될 것이라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이용관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20년간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놓치고 간과한 부분이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지금의 여러 문제를 예방하지 못한 반성으로 한 말이지만, 어쩌면 20년 동안 부산영화제의 안정적인 독립 방안을 강구하지 못한 것이 가장 뼈아프다는 고백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