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류형진 전 영화진흥위원회 정책 연구원
제31회 선댄스영화제의 뉴프런티어 섹션은 최고의 히트상품이 되었다.
미국 최고의 인디영화 축제, 선댄스영화제가 지난 2월1일 폐막했다. 올해 선댄스의 분위기를 전하는 외신기사를 보면 출품작의 수준이 한층 높아졌고, 마켓의 분위기도 뜨거웠다는 것이 공통된 평가다. 그러면서도 선댄스가 고집해왔던 다양성의 화두는 여전했고, 이를 통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새로운 영화적 형식을 고민하는 인디영화에 대한 응원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제라는 것이 그 밑에서 움직이고 있는 스폰서와 마켓의 구매자들, 즉 자본의 필요와 맞물려 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올해 선댄스의 활력은 영화의 힘에만 기대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번 선댄스가 과거와 가장 다른 점은 할리우드 영화계보다 TV 및 디지털미디어, IT업계의 관심이 더 뜨거웠다는 거다. HBO, 쇼타임 등의 TV사업자, 넷플릭스와 아마존이 주도하고 있는 OTT업계, 오큘러스로 대표되는 VR업계, 유튜브에 기반한 MCN사업자가 새로운 콘텐츠와 창작자를 찾기 위해 대거 선댄스를 찾았고, 이들이 바로 이번 선댄스 마켓에 활력을 불어넣은 주역이었다. 또 선댄스가 예술과 영화,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융합을 추구하며 기획하고 있는 뉴프런티어는 이번 선댄스에서 가장 핫한 섹션이었다. 특히 오큘러스의 가상 현실 비행 시뮬레이터 버들리(Birdly)는 2분짜리 데모를 체험하기 위해 두 시간 가까이 줄을 설 정도로 올해 선댄스 최고의 히트상품이 되었다.
이러한 경향에 맞춰 상당수의 감독과 작가들이 TV와 디지털미디어를 위한 맞춤형 콘텐츠를 내놓았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일부 감독들은 아예 영화를 에피소드 단위로 쪼개고, 각 플랫폼의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코드를 녹여내면서 전통적인 영화 형식을 깨뜨리고 있다. 또한 이번 선댄스 출품작 중 이미 10편은 극장 개봉이 아닌 TV나 OTT VOD 형태로 개봉예정이다.
이제 선댄스는 인디영화의 활력을 바탕으로, 할리우드로 가는 진입문으로서뿐만 아니라 TV 연출자, 스타 디지털 크리에이터로 가기 위한 창구로도 기능하고 있다. 새로운 미디어사업자들 입장에서는 이런 선댄스에 투자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기존 할리우드영화와는 다른 색깔을 가졌으면서도 퀄리티가 검증된 인디영화를 통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리스크도 줄이면서 새로운 플랫폼과 브랜드의 정체성을 차별화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극장을 벗어난 영화의 미래를 고민한다면 이 선댄스의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글글라스 기반의 VR로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만든 새로운 형식의 영화를 페이스북 친구들과 함께 볼 날이, 그리고 그것으로 돈을 버는 세상이 올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