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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블랙박스] 누군들 어떠하리, 그래도
조종국 2015-01-19

김세훈 새 영진위 위원장이 해결해야 할 현안들

글 : 조종국 <씨네21> 편집위원

지난해 12월31일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회의실에서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임명장 수여식이 열렸다.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세훈 신임위원장(왼쪽부터)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잊자. 영진위 없다고 영화 못 만드는 일도 없고, 영화산업 종사자들 모조리 깡통 찰 것도 아니다. 영진위는 영화를 ‘진흥’하는 기관이 아니라 지원금 명목의 어쭙잖은 돈 몇푼으로 갈등을 부추기는 ‘분란조장위원회’다. 위원장이 누가 되건 별로 기대할 것도 없고, 더이상 웃음거리나 되지 않기 바란다.”

한동안 영진위를 향한 영화계의 독설은 꽤 수위가 높았다. 정부가 새 위원장 선임을 어물쩍 미루면서 사실상 위원장 공백 사태(임기 끝난 위원장의 대행체제)가 길어지고, 두어 차례 내정설이 파다했다가 유야무야되는 등 뒷말만 무성했던 탓이다. 심지어 이참에 차라리 영진위를 없애거나 규모를 대폭 줄여서 개편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어차피 영진위가 상업영화 시장에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는 마당에 소박하게라도 제도적인 지원과 육성이 필요한 예술영화 등에 대한 실효성 있는 공공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낫다는 맥락이었다.

지난해 12월31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자천타천을 비롯해 들끓었던 무수한 하마평을 뒤로하고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김세훈 교수를 영진위 위원장에 임명했다. 새 위원장의 면모에 대한 영화계의 반사적인 첫 반응은 ‘누군들 어떠하리’에 가깝다. 그동안 몇 차례 위원장 추천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드러난 난맥상을 보면서 일찌감치 기대를 접은 탓이다. 누가 위원장이 되어도 영진위가 더 나빠지려야 나빠질 게 없다는 자조에 가까운 푸념이다. 어쨌거나 새 위원장은 왔다. 영진위 위원장이 감투가 아니라 영화산업을 고양하기 위한 정책과 제도를 구현하고 예산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행정 책임자라는 본령을 명심하고 영화계와의 협력에 적극 나서주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부디, 그래 주시길 바라 마지않는다.

산적한 현안과 묵은 숙제가 많다. 영진위 사옥 건립 계획과 부산 기장군 달음산 일대에 조성할 예정인 글로벌스튜디오 조성 사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임기 만료가 코앞인 전임 위원장이 어쩌지 못해 방임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도 있지만, 잔뜩 들어 있는 거품을 빼고 더 늦기 전에 계획을 대대적으로 손보지 않으면 나중에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을 초래할 위험이 높다. 남양주종합촬영소를 폐쇄하는 대신 부산에 종합스튜디오를 만든다는 발상에서 시작된 글로벌스튜디오 건립사업이 지난 대통령선거 때 ‘부산 국제영상콘텐츠밸리 조성사업’이라는 어설픈 공약으로 변질된 실태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해 수렁에 빠진 글로벌스튜디오를 건져내야 한다. 터무니없는 이유로 멀쩡하던 독립영화에 냈던 생채기를 봉합하고 영화계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도 가볍지 않은 숙제다. 주류 상업영화 이외 문화예술로 육성해야 할 독립영화, 예술영화, 다큐멘터리 등에 대한 지원은 정파적 신념이나 이념이 아니라 영진위의 존재 이유다. 급변하는 첨단 디지털 환경에 기반한 한국 영화산업 진흥과 발전을 위한 중장기 종합계획도 좀 제대로 만들기 바란다. 영진위가 새 위원장도 왔는데 영화발전기금이나 축낸다는 손가락질은 받지 말아야 면이 서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