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감독 잭 숄더 출연 알렉스 레이드, 크리스 포터, 루이스 로렌조 장르 액션스릴러 (아이비젼)
<딥 레인지>는 명백한 싸구려 영화다. 특수효과는 허술하고, 배우들은 무명이고,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끌어온 티가 역력하다. ‘거대 거미’가 등장한다는 것말고는 봐야 할 이유가 그다지 없다. 그러나 공포영화의 팬이라면, 제작자로 이름을 올린 <리빙 데드3>와 <소사이어티>의 브라이언 유즈나를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혹시 80년대에 활동했던 감독의 이름을 유난히 많이 기억한다면 ‘잭 숄더’라는 이름도 입 속에서 맴돌 것이다. 카일 맥라클란이 외계인으로 나왔던, 입에서 입으로 외계인이 옮겨다니는 수작 SF영화 <히든>의 감독이 바로 잭 숄더였다. 실패작이긴 했지만 평이 엇갈리는 <나이트메어2>도 만들었고. 잭 숄더는 <레니게이드> 이후 TV로 잠입하여 10여년간 TV영화와 시리즈물을 연출했고, <수퍼노바>을 연출하다가 밀려난 뒤 스페인영화 <딥 레인지>의 감독으로 돌아왔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잭 숄더는 장인 축에 끼지 못한다. <딥 레인지> 역시 느슨하고, 조잡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적어도 <딥 레인지>는 비디오를 끄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한번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그냥 ‘시간을 죽이며’ 보게 된다. 잡다한 인물의 성격은 꽤 다채롭고, 사건들도 아기자기하게 구성되어 있다. 산 사람의 눈알이 튀어나오는 등 엽기적인 장면도 가끔 나온다. 남태평양의 한 섬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체에게 공격당한 사람이 발견된다. 원주민과 생태계 보호를 위해서 탐험대가 조직된다. 의료진과 거미 학자, 그리고 그들을 경호하기 위한 군인들. 그러나 섬의 상공에 들어서자마자 모든 전기장치가 멈추고, 엔진마저 꺼지는 바람에 불시착을 한다. 정글로 들어선 탐험대의 일원이 진드기에게 물리는데, 이 진드기는 피부 속으로 파고들어 신체에 알을 낳는다.
<딥 레인지>는 일관성과 거리가 멀다. 서두에 등장한 외계인은 이야기 진행과 아무런 상관이 없고, 진드기와 거미의 연관성도 나오지 않는다. 외계인은 그저 ‘돌연변이’의 원인이라는 식으로 어설프게 제시된다. <딥 레인지>는 싸구려답게 모든 것을 베낀다. 정글에서 ‘보이지 않는 미지의 존재’와 싸우는 광경은 영락없는 <프레데터>, 동굴에서 알을 낳는 거대한 거미를 만나는 장면은 <에이리언2>다. <딥 레인지>는 태연하게 이것저것을 얼기설기 엮어놓으면서 거칠게 영화를 진행시킨다. 그 뻔뻔하고, 태연자약한 오락성이 <딥 레인지>의 장점이다. 전혀 새롭거나 탁월한 볼거리를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킬링타임에 충실한 영화. 그것이 싸구려 영화의 미덕이고, 우리가 기대하는 모든 것이다.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