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두주 동안 한국사회는 ‘김동성 사태’로 집단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어이없다고 생각되는 일이 적지 않지만, 이 이야기를 계속했다간 ‘테러당하지 않으면 다행’일 터이므로 그만두겠다. 정작 가장 억울한 사람일 김동성은 현장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렸고, 귀국해서도 (열)광적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는 의연한 모습을 보여 보기 좋았다. 내심으로는 “이런 소란스러운 반응은 자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는 식의 발언을 기대했지만 그건 내 욕심일 것 같다.
이 글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조금 다른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재확인한 것은 한국에서 스포츠란 ‘그것을 직업으로 삼아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일로매진해야 하는 수단’이라는 사실이다. ‘프로’가 아니라도 비슷하다.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에 나가 ‘국위를 선양’했다는 이유로 병역도 면제받고(남자의 경우) 연금도 받아서 팔자 고치는 것이 스포츠에 투신하는 사람들의 최고의 목표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김동성의 어려운 집안 사정’을 보도하는가. 이런 시스템에서는 선수층이 두터울 수도 없고 두터울 필요도 없다. 정말 선수층이 두텁다면 그건 큰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같은 말이지만 한국에서 취미로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은 별로 없다. 김동성 사태에 분노하는 사람들 중 쇼트트랙이든 롱트랙이든 올 겨울에 스케이트를 한번이라도 타본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될까. 시설도 뭐도 개뿔도 없으니 당연하다. 그러고도 ‘얇은 선수층’ 운운한다. 선수(選手)라…. 선수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플레이어(player)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선택된 사람’인 반면, 로마자 문화권에서는 ‘잘 노는 사람’인 모양이다. 그러니 스포츠를 ‘잘’한다는 개념이 다른 것 같다. 어쨌거나 ‘선택된’ 사람들이 어찌 두터운 층을 형성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선수 출신’이 아닌 사람에게 스포츠란 ‘구경’의 대상 이상이 아니다. 몸소 실천하는 것이라곤 중년이 된 다음 ‘건강 관리’를 위한 기능적인 것들뿐이다. 이 경우에도 하나의 목표를 향해 일로매진하는 건 똑같다. 헬스클럽에서 ‘목숨 걸고’ 운동하는 모습을 본 서양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는 말을 듣고 확인하는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말을 ‘엘리트 체육의 한계’, ‘생활체육 육성 필요’ 운운하는 공무원식 주장으로 들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스포츠에서도 서양문화가 우월하다’는 견해로 오해받을지도 모르겠다. 정체불명의 ‘반미 감정’도 불붙고 있는 요즘 상황에서는 돌맞을지 모르니 이 이야기도 그만두자. 요는 그게 아니라 한국에서는 스포츠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지나치게 ‘직업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무언가 재능이 있으면 다른 걸 다 때려치우고 그걸 직업으로 삼거나, 아니면 좋아하는 걸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둘 중 하나, ‘도 아니면 모’이고 중간은 없다. 입시학원이나 고시원에서 코피 터지도록 공부하는 학생, 체육관에서 땀을 흘리면서 훈련하는 운동선수, 지하실에서 댄스(혹은 기계체조)를 맹연습하는 연예인 지망생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정진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문제는 무엇이든 직업이 되면 그걸 자유롭게 즐길 수 없다는 점이다. 이제 개학인데 ‘공부라면 이를 벅벅 가는 대학생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마음이 그리 편하지는 않다. 심정은 헤아릴 수 있지만, 학생이 ‘공부가 직업인 존재’라면 좀 씁쓸한 게 사실이다. 하긴 이 점은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루어놓은 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인 나조차 마찬가지다. 그래서 문득 지금 이 시간에도 잔업·특근·철야에 시달리고 있을 <씨네21>의 ‘직장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얼굴 보기도 힘든 차에 지면을 빌려 안부인사나 전하면서 마친다.
문영아, 우리도 예술과 스포츠와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정말 즐거웠던 적이 있었을까? 시 하나 읊어주마. 한때 ‘직업적’ 혁명가였다가 지금은 뭐 하는지 모를 사람의 시다.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오래 못 가도 어쩔 수 없지.” ‘비평’이나 ‘평론’에도 올림픽 같은 게 있어서 메달이라도 따오면 병역도 면제해주고 연금이라도 주었으면 좋겠지? 풋, 이런 헛소리가 삑삑 나오는 걸 보면 ‘직업적 글쟁이’ 짓도 지겨워지는 모양이다. 이러다간 정말 오래 못 갈 텐데…. 신현준/ 대학교 시간강사 http://homey.w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