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무렵이었겠다. 처음 접했던 영어 교과서. ‘exercise’, ‘further study’…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보던 그저 알파벳들의 조합. 그때 ‘move’라는 단어를 처음 본 듯하다. 소리내 읽고 다시 다섯줄 그려진 공책에 옮기며 외웠다. move. 옮기다. 움직이다. 그리고 그 move의 다른 뜻을 알게 된 것은 시간이 좀 지난 후였다. 감동하다. 가슴이 뭉클해지게 하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K팝스타> 시즌4를 시작했다. 풀 포츠로 대표되는 <브리튼스 갓 탤런트>, 켈리 클라크슨을 배출한 <아메리칸 아이돌> 등의 외국발 오디션 열풍에 힘입어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론칭됐고, 높은 시청률을 자랑했다. 하지만 지금 그 명맥을 유지하는 프로그램은 <슈퍼스타 K>, 그리고 <K팝스타> 정도다. <K팝스타>의 힘은 YG와 JYP, 그리고 SM(지금은 유희열의 안테나뮤직이다)이라는 국내 최고 기획사의 대표들이 자신들의 방식대로 트레이닝하고 오디션해서 결국 가수 데뷔의 꿈을 이루게 해주는 시스템이다. 양현석과 박진영, 보아, 유희열이라는 캐릭터가 분명한 심사위원들이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주는 기획사의 대표이자 동시에 도전자들의 우상인 뮤지션이라는 사실은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를 대변한다.
그리고 다시 ‘move’를 이야기할 때다. 우리 사회는, 아니 어디의 누구든 스토리를 원하고, 스토리에 열광한다. 그래서 마케팅이, 브랜딩이 중요하다. 자신만의 특화된 이야기가 없는 상품은 길게 사랑받을 수 없다. 그러니 <K팝스타>의 네 번째 출항에, 그리고 시즌이 거듭되면서 더욱 강화되는 스토리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 스토리를 만드는 키플레이어가 시즌3부터 승선한 안테나뮤직의 유희열이라는 사실 역시 주목할 만하다. ‘공기 반 소리 반’이라는 유행어 아닌 유행어를 탄생시킨 박진영이 다소 까다롭고 학구적인 선배 역할을 자처했다면, 때로는 넉넉한 웃음으로, 때로는 스스로를 희화화하면서 오디션 참가자들의 감정을 조율하는 유희열의 수더분하면서 따뜻한 카리스마는 보는 이의 감정을 움직인다. 유희열은 시청자가 참가자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게 하고,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옮겨내게 만든다. 그렇게 우리는 감동받는다. 가장 역할을 떠맡은 소녀여서가 아니고, 주목받지 못한 외모여서가 아니라, 참가자들이 지금 우리 옆에 앉아 삶의 이야기를 ‘노래로’ 들려주고 있는 것 같은 공간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합격과 불합격 사이의 그 어딘가에서 가슴 졸이는 것에 덧붙여서, 그들의 삶에 우리의 감정을 움직여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즌4보다는 ‘네 번째 이야기’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비록 마지막에는 승자가 남는다. 패자는 퇴장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미생’이 ‘완생’이 되는 모든 참가자 각각의 이야기로서, 우리에게 기억될 것이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 α
그들의 이야기, 나의 노래
동네 음반가게(지금은 타임캡슐 아이템이지만)에 연필로 꾹꾹 눌러쓴 노트 한장을 건네던 때가 있었다. 나만의 컴필레이션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젠 그냥 폰을 집어들면 된다. 과정 자체가 더 쉬워졌으니까, 조금만 어렵게 가보자.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불렀던 그들의 이야기를 당신의 감성으로 다시 편집해 CD 한장에 구워보시라. 네임펜으로 컴필레이션의 제목도 CD 위에 쓴다. ‘2014 My Best’. 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