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와 감동. 대구에서 태어나 30년을 살다 서울 생활을 했고 결혼해서 구미에 정착한 40대 만화가 김수박이 생각하는 만화의 핵심이다. 그는 용산참사를 다룬 <내가 살던 용산>에 참여했고 삼성 반도체 공장 백혈병 문제를 다룬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 사람 냄새>(이하 <사람 냄새>) 등을 그린 작가다. “이 작품(<사람 냄새>)에도 재미가 있어요. 르포 형식으로 그렸지만….” 맞다. 얼핏 보면 재미없는 수업을 하는 선생님처럼 생긴 그가 웃을 때는 영락없는 개구쟁이의 눈빛이 되는 것처럼 그의 만화는 진지하다가도 웃기다. 코끝이 찡해지는 감동도 있다. 신작 <메이드 인 경상도>도 이런 만화의 핵심에 부합하는 작품이다. 지역감정을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는 작가 본인의 기억에 의지한 1980년대를 사는 김갑효(작가의 본명은 김효갑)라는 아이를 통한 재미와 감동이 있다. 물론 웃고 울다 보면 독자들의 마음에는 하나의 물음이 생길 것이다.
-<메이드 인 경상도>의 시작이 ‘경상도 왜 그러냐’라는 질문이라고 했다.
=‘경상도는 대체 왜 그래?’라는 질문이 공식처럼 있다. 실제로 들은 적은 없고, SNS나 텔레비전, 인터넷에서 들었다. 내가 경상도 사투리 쓰는 사람이라 해서 ‘경상도 대체 왜 그래요?’ 그러면 시비 거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사람들은 그 질문을 뒤에서 한다. 뒷담화인 거지. 작가는 세상의 어떤 질문에 답을 찾으려는 본능이 있고 거기에 답해보는 게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경상도 사람들의 특징을 정리해놓은 것이 있다. 가부장적이고, 텃세가 심하고, 무뚝뚝하다 등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이 특징들을 얘기해주면 안 그런 사람 많다고 말한다. 서울이나 다른 데 가서 물어보면 ‘우리도 그래요. 우리 아버지도 그랬어요’라고 한다. 결국 <메이드 인 경상도>에서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거다.
-경상도를 얘기할 때 자신의 어린 시절, 1980년대를 이야기한다. 왜 그렇게 했나.
=누군가의 특징을 분석하는 것은 이론적인 일이다. 실제 정서하고 격차가 많을 때가 있다.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걸어오듯이 이야기를 다루면 정서적인 측면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나름의 전략을 짰다. 경상도의 특성이라 여기는 것이 공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의 문제였다는 걸 느끼게 하고 싶었다.
-단행본이 나오기 전 창비 문학 블로그 ‘창문’에서 연재했다. 만화 중에 담당 편집자인 최지수씨에게 마감 독촉을 받는 장면이 재밌더라.
=포털 연재를 안 하고 게릴라식으로 연재를 하니까 마감의 괴로움이 없었다. 게으름 피우다 올려도 되고, 내가 올리면 보라는 식이었다. ‘창문’은 달랐다. 내가 보기엔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것 같은데, 편집자가 기다리는 독자들이 많다고 그러는 거다. 그래서 만화에 편집자도 등장시켰다. 젊은 사람인데 독촉을 너무 잘한다. 막 쪼아서 독촉하는 타입은 아니다. 이분은 뭔가 실망하거나 좌절하는 뉘앙스를 준다. 그럼 엄청 압박이 된다.
-나도 써먹어야겠다.
=기자님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웃음) 이 사람을 실망시키면 내 맘이 무너지는 것 같아서 연재한 것 중에 제일 열심히 했다.
-편집자를 등장시키는 것처럼 실명을 거론하는 경우가 꽤 있다. ‘◦◦◦선생님, 존경하지 않는다’라는 말도 있고. 김구라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 태도는 영향을 받은 거다. 로버트 크럼이라는 미국 만화가가 있다. 그는 생각나는 걸 가리지 않고 말한다. 또 힙합, 랩을 좋아한다. 요새 힙합 디스전이 이슈였는데 사실 1990년대 2000년대 초반에 조PD 형님이 벌써 했다. 그때 영향을 받아 <아날로그 맨>에서 직접적 디스전을 만화로 그렸었다.
-욕을 먹거나 하진 않나.
=욕을 먹을 것 같지만 안 그렇다. 사실은 상대도 재밌어한다. 작가가 자기검열하는 건 좋은 게 아니다. 문제가 될까, 라는 생각이 혹시 들면, 검열 안 하고 그대로 가본다. 그런데 아무 문제도 발생 안 하면 세상은 좀더 자유로워진다. 물론 선생님 얘긴 안 하려고 했는데. 그건 진짜 실명이다. 첫사랑이던 주근깨 선생님이나 아버지 가게에서 일하던 은섭이 형의 여동생한테는 이 책으로 실제 신호를 보낸 거다. 만약에 보면 연락 좀 달라고.
-주인공 갑효가 중학생 때쯤 5•18 광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메이드 인 경상도>의 핵심 메시지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앞부분의 어린 시절을 통해 우리가 지역사람의 특징이라 여기는 게 공간이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는 걸 인식하고 나면 ‘우리나라 사람 다 똑같은데 이 얘기를 뭐하러 해?’가 된다. 그런데 엄연히 지역감정은 존재한다. 그러다가 생각난 게 광주였다. 경남 합천이 고향인 집사람한테도 물었다. 어른들한테 그 얘기 들어본 적 있냐고. 단 한 사람도 없다. 경상도 사람이 자기 자식한테 그 얘기를 안 한다. 그건 어떤 심리를 만들어낸다. 경상도 사람들은 당시에 광주의 일을 알았다. 그럼 미안하지 않나. 하지만 침묵했다. 그럴 때 어떤 작용이 나타나냐 하면 고개를 돌린 쪽으로 더 강하게 고집한다. 역사적으로 외면의 혜택을 본 거다. 외면의 대가로 지역차별의 혜택을 받았다. 먹고살기가 좀더 나았다. 거래의 기본 룰이다. 혜택은 이미 받았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다. 광주로 대변되는 지역차별을 받아들인 심리. 이걸 경상도 어른이 대부분 갖고 있다. 그걸 우리가 또 반복할 거냐? 그건 아니다. 이걸 끊어내려면, 빚에서 나온 침묵, 이걸 우리 세대에서 깨면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내가 경상도 안에서 말을 꺼낸 거다. 만화에서 직접적으로 물어서 부모 입을 열게 만드는 것처럼.
-그런 의도를 알겠지만, 지역감정을 만들고 이간질한 집단, 예를 들면 정치인들을 직접 비난할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약간 언급은 했는데 그런 사례와 역사를 말하는 쪽을 선택하기 싫었다. 왜냐하면 그건 지역감정 조장에 의한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 책임 소재를 따지는 문제다. 예컨대 세월호 같은 사건이 벌어질 때 그건 전체 구조 문제인데 누구 책임이냐를 따지기 때문에 유병언에게 포커스가 간다. 그런 태도와 유사할 수 있다. 누구를 고발하는 대신에 인간의 이치, 왜 그런 선택을 하는 건지 보여주고 싶었다. 친구 사이로 치환해서 말하면, 친구가 이간질을 해서 기자님과 내가 싸웠고 이간질한 건 모르는 상태다. 우린 서로를 미워하고 나중에 알게 됐지만 서로를 아직 미워한다. 한번 싸우면 괜히 밉다. 그런데 원인은 이간질한 친구니까 우리끼리 책임 따지고 싸울 게 아니라 손가락을 그 친구에게 돌려야 한다. 그 이치를 깨우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거다.
-만화 속 이야기는 80년대까지 나온다. 90년대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없었나.
=사람들이 얘기가 많이 남은 것 같은데 끝냈다고 한다. 사실이다. 다른 주제로 연장해서 이야기할 계획을 갖고 있다. 80년대에서는 지역차별 문제를 말한 거고, 90년대에서는 우리 세대, X세대 얘기를 할 거다. 소위 386세대의 눈에 안 보이는 것들이 있기에 이쪽에서 자기고백을 할 필요가 있다. 가제는 ‘서태지의 등장과 마왕의 죽음’이다.
-포털 사이트 웹툰 연재 생각이 있나.
=네이버나 다음 포털이 아니라도 다 웹이다. 나도 웹툰을 그린 건데 그렇다고 얘기해주질 않는다. 네이버, 다음은 웹툰이란 말을 왜 독점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든다. 그건 정확하게 말하면 포털툰이다. 포털 연재를 해보고 싶어서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거기 줄 서 있는 사람 엄청 많다고 하더라. 그 말은 나도 줄 서란 얘기라서 싫다고 했다. 만약 그쪽에서 작품을 하자고 제안을 한다면 모를까.
-네이버에서 <송곳>을 연재하는 최규석 작가가 생각나서 물어본 거다. 둘 다 사회성 짙은 작품을 많이 한다.
=이거 꼭 써달라. <송곳>의 최규석이 줄 서서 했겠나? 사실 아까 내가 물어봤다고 한 사람이 바로 최규석이다. 최규석 작가가 연재하려는 사람 많다고 줄 서라고 했다. 그래서 안 서, 그랬다. (웃음)
-(인터뷰 뒤 예정된 김수박 작가의 ‘독자와의 만남’ 행사 시간이 다가왔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달라.
=마무리하자면 나는 만화가이고 만화가는 어떤 종류의 사회문제를 다룰 때조차 만화의 임무가 재미와 감동이라 생각한다. 나도 그걸 더 중점에 두고 만든다. 재밌는 이야기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방향으로 봐주셨으면 한다. 재미 가운데 하고 싶은 얘기가 담겨 있다. 재미와 감동. 그걸 목적으로 한 책이란 말을 꼭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