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의 현대사 다큐멘터리팀 막내로 일하던 시절, 나는 종종 사람들의 오래된 상처를 들춰내는 일을 해야 했다. 대개 국가 폭력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로부터 전화로 이야기를 듣는 일이었는데,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취재와 촬영을 마친 아이템이 기획과 맞지 않아 편집되었을 때였다. 나이에 비해 머리카락이 일찍 허옇게 세어버린 중년 여성이 남편과 딸을 허무하게 잃은 사연을 이야기하며 눈물짓던 순간은 방송에 나가지 않았지만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또렷하게 남아 있다. 그것은 방송을 만드는, 혹은 매체에서 일하는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고 어떻게 일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내 고민의 뿌리가 되었다.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취재 윤리와 인간에 대한 예의는 어느 선에서 지켜져야 하는가.
아마도 SBS <피노키오>의 MSC 보도국 앵커 송차옥(진경)이라면 망설임 없이 답할 것 같다. “시청자한테 먹히는 건 팩트보다 임팩트야.” 대중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라면 조작, 과장, 감정적 연출을 서슴지 않는 그는 공장 화재 사고 당시 기하명(이종석)의 아버지가 부하 소방관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혼자 도망쳤다는 시나리오로 능숙하게 여론을 몰아간다. 기하명의 가족에게 특별한 악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그래야 더 뜨거운 반응을 얻을 수 있고 소방대원이 아홉이나 죽은 사건에서 대중의 “원망을 들어야 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더 크게 부풀려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그리고 결과에 거짓이 섞여도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그로 인해 기하명의 어머니는 자살하고, 형은 혼자 전국을 떠돌며, 기하명은 최달포라는 이름을 얻어 과거의 삶으로부터 자신을 끊어낸다.
그런 최달포에게 새로 생긴 가족이 사실 송차옥의 이혼한 남편과 딸 인하(박신혜)이며, 달포를 죽은 장남이라 믿는 인하의 할아버지는 진실과 마주하면 전환 장애로 발작을 일으키고, 달포는 졸지에 조카가 된 인하를 사랑하게 된다는 전개는 너무 복잡하고 작위적인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인하는 거짓말을 하면 곧바로 딸꾹질을 하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피노키오 증후군’까지 가졌다. 하지만 다소 무리해 보이는 이 설정은 결국 진실과 거짓, 그리고 진실을 추구하는 방법론에 대한 성찰을 향해 가지를 뻗어나간다. 거짓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진실을 보도하는 기자가 될 수 없다는 아이러니, 무죄 추정의 원칙이 무참히 짓밟히는 세계의 폭력성, 편견이 ‘상식’으로 둔갑해 칼을 휘두르는 순간 등 기자로서 그리고 엄청난 양의 뉴스에 노출되는 사람으로서 고민할 만한 주제가 쏟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달포와 인하가 방송기자로 현장에 뛰어들어 부딪힐 딜레마들이 궁금하다. 그것은 내게도 계속 의미있는 질문이 될 테니까.
+ α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는 순간을 담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명확하게 설득해냈던 박혜련 작가는 <피노키오>에서도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아버지를 비난하고 모독하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도망쳐 섬에 온 하명에게 인하는 그가 가장 듣고 싶어 했을, “너희 아빠는 좋은 사람이셨을 것 같다”는 말을 들려준다. 딸꾹질은 하지 않는다. 그러니 “거짓말보다 참말이 더 위로가 돼. 지금 니가 한 말이 그랬어”라는 하명의 말은 인하를 향한 첫 번째 고백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