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해봤지요? 나도 해봤어요.” “부장님이 마약 하자시는데?” 몹시 수상해 뵈는 저 대사는 실은 마약밀매사건을 맡은 검사들의 대화다. 폐쇄적인 조직, 업무 강도와 부담이 큰 직종일수록 내부인 사이에서 통용되는 줄임말과 권위를 절상하거나 절하하는 은어가 많은데, 검사들이 주인공인 MBC 드라마 <오만과 편견>에도 이런 화법이 빈번하다. “내가 총대 메는 덕에 큰 걱정 덜었다고 사장님이 직접 격려까지 해주셨잖아요.” 여기서 사장님은 인사와 예산을 쥐고 있는 법무부 검찰국장을 뜻한다.
<오만과 편견>은 앞서 마약 대화에서 생략된 검사의 ‘수사와 기소’ 과정을 상세하게 풀어가는 드라마다. 증거가 빈약한 사건들, 과중한 업무로 흘려보내기 쉬운 사건들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수습검사 한열무(백진희)와 수석검사 구동치(최진혁)의 모습은 검사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기는 현재 시점에서 보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다시피한 검사를 미화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도 있다. 조직과 충돌하는 신세대 검사, 정의를 꿈꾸는 풋내기 검사, 압력에 굴하지 않는 강직한 검사, 부모와 자식의 죄를 처벌하는 검사, 돈 밝히는 비리 검사, 정치 검사, 심지어 뱀파이어 검사까지 등장한 마당에 딱히 새로울 게 있을까 싶었다.
예를 든 드라마들이 검사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과 평가를 반영하는 데에서 출발해 캐릭터의 노선을 잡았다면, <오만과 편견>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인 부장검사 문희만(최민수)은 시선과 평가에 반응하는 당사자이며 내부인에 더 가깝다. 이전의 검사 캐릭터가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 알기 쉬웠던 것에 비해 문희만은 쉽게 가닥이 잡히지 않는 인물이다. 출세 코스를 두루 거친 유능한 검사의 외모가 라틴계 범죄조직 보스를 닮은 점부터 그렇고, 대외홍보용으로 만든 ‘민생안정팀’에 부장으로 자원했으면서도 팀을 ‘있는 듯 없는 듯 유지하는 게 실력’이라는 국장의 뜻을 거슬러 굵직한 실적 올리기에 골몰하는 심리도 간단치가 않다. 윗선의 입김이 닿은 사건을 불기소 처리하도록 열무에게 압력을 넣는가 하면, 기소에 필요한 결정적인 증거를 몰래 책상 위에 놓고는 생색까지 낸다.
상명하복의 조직생활을 통해 보신 스킬을 깨친 한편으론 엘리트라는 자각이 투철한 인간. 조직의 일원이자 그 조직에 염증을 느끼는 개인. 문희만이 보이는 모순된 행동은 극중 가장 흥미로운 요소다. “대한민국 검사 1908명 모두가 떡 받아처먹고, 아무 데서나 바지내리고, 증거조작하는 게 아니”라는 대사도 다른 누구도 아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과거 드라마 <모래시계>의 모델이었던 대쪽 검사의 현재를 이해하는 데 정의나 변절만으론 충분치 않는 것처럼, 극화된 이야기 속의 검사 캐릭터 또한 선악구도만으론 부족한 지점에 이르렀다. 개혁을 요구받는 폐쇄적인 조직의 엘리트인 문희만은 <오만과 편견>이 취재한, 검사의 현재와 가장 가까운 인물이 아닐까.
+α
인천을 100% 활용!
<오만과 편견>의 배경인 인천과 인천지검은 항구와 공항, 차이나타운이 있어 수사물의 무대로 삼기에 최적의 장소다. 민생사건인 ‘어린이집 아동학대’ 건부터 ‘마약밀수’까지 다룰 수 있는 사건의 폭이 넓기도 하고, 차이나타운 식당에서 폭탄주를 만들어 회전테이블에 놓고 돌리는 검사 회식 장면은 홍콩 누아르의 분위기까지 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