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집에서 나가 살 날이 가까워지자 김치볶음밥과 떡볶이밖에 할 줄 모르는 자식이 걱정된 엄마는 식탁에서 자꾸 ‘오늘의 레시피’를 주입하려 애쓰신다. 시금치는 끓는 물에 너무 오래 데치지 말고 잠깐만 넣었다가 꺼낸 다음 꼭 짜서 깨소금과 참기름을 적당히 넣어 무쳐야 하고, 물김치를 담글 땐 칼로 배추 잎을 길쭉하게 슥슥 쳐낸 다음 살짝 절였다가 고춧가루와 매실 엑기스에 찹쌀 풀을 쑤어서… 네? 풀을 쑤어서? 마치 주기율표만 간신히 외운 학생에게 유기화학 응용문제를 제시하는 듯한 고난도 가르침에 점점 요리가 두려워지던 차, 구미 당기는 레시피를 들었다. “신동엽이랑 성시경 나오는 요리 프로에서 그러는데, 김치찌개 끓일 때 새우젓이랑 깨를 갈아서 돼지고기를 재우면 맛있대.”
40년 가까이 김치찌개를 끓여온 주부가 참고하는 요리 프로그램이라니, 뭔가 엄청난 비법을 가르쳐주는 건가? 그래서 올리브TV의 <오늘 뭐 먹지?>를 보기 시작했는데, 그런 건 아니었다. <오늘 뭐 먹지?>에서는 요리에 아주 문외한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문가는 더더욱 아닌 두 남자가 제육볶음이나 김치비빔국수처럼 당장 오늘 집에서 해먹어도 될 것 같은(물론 착각이다) 요리를 후다닥 만든다. 굳이 실력의 우열을 가리자면 ‘성장금’, ‘간(맞추는)귀(신)’라는 별명을 지닌 성시경이 한수 위다. 그는 좋은 게를 고르려면 단골 가게를 만들어놓으라거나 계란말이에 소금 대신 멸치 액젓으로 간을 하면 깊은 맛이 난다는 등 실용적인 정보도 알고 있는 남자다.
하지만 역시 요리 초보 입장에서 감정이입하게 되는 건 신동엽이다. 길치가 길을 헤맬 때 틀린 길을 굳이 한참 가는 것처럼,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하거나 간 맞추는 걸 건너뛰고 분량과 순서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일단 완성시키고 보려는 성급함까지 남 일 같지가 않다. 그래서 성시경에게 끊임없이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우리의 실수가 시청자 여러분에겐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 솔직하게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하겠다”며 정신승리하는 신동엽은 놀랍게도 요리에 대한 동기부여를 도와주는 좋은 멘토다. 그의 말대로, ‘신동엽도 하는데 나도 한번 해먹어볼까?’ 싶은 것이다.
게다가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완성된 음식을 두 MC가 신나게 먹어치우는 엔딩은 그 어떤 ‘먹방’보다 식욕을 자극한다. 호들갑스러운 소개도, 기념 촬영도 없다. 요리할 땐 예민하던 성시경도 먹을 땐 “이 방송 진짜 좋은 것 같아”라고 진심으로 행복해하고, 요리하면서도 말하기를 멈추지 않던 신동엽은 말 대신 “크어~” 같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볼이 미어지도록 음식을 밀어넣는다. 그들에게 카메라는 이미 뒷전이라 국물이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리고, 쩝쩝대는 소리도 멈추지 않지만, 뭐 어떤가. 이런 게 진짜 먹는 즐거움인데.
+ α
오늘 도전해볼까?
돌아가신 신동엽의 어머니가 종종 만들어주셨다는 두부조림. 두부를 썰어넣은 냄비에 양념장을 넉넉히 붓고 졸인 다음 완성될 때쯤 두부 위에 달걀을 깨어 올리고 노른자가 익기 전에 불을 끈다. 달걀의 부드럽고 삼삼한 맛이 양념장의 짠맛을 중화시켜준다고 하니, 새로운 밥도둑을 맞이하여 다이어트 결심은 다시 한번 접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