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류형진 전 영화진흥위원회 정책 연구원
지난 4월22일 한국콘텐츠진흥원 주최로 '이야기산업 활성화를 위한 스토리마켓' 행사가 열렸다.
최근 정부가 콘텐츠 분야 육성 정책을 언급하면서 새롭게 사용하고 있는 단어가 ‘이야기산업’이다. 생소한 말이라 기사와 정부 발표들을 찾아보니,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 만화, 공연 등 콘텐츠의 원천이 되는 시나리오 또는 스토리를 우리말인 ‘이야기’로 바꿔 부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산업적인 육성의 목표와 염원을 담아 만든 신조어가 ‘이야기산업’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는 지난 4월 콘텐츠진흥원과 함께 ‘이야기산업’의 육성 종합계획을 준비하고 있으며, 그 내용이 10∼11월쯤 나올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최근 그 연장선에서 ‘이야기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제정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만들어진 법령 초안에는 이야기산업 진흥 종합계획 수립, 창작자 보호를 위한 공정거래 질서 확립, 표준계약서 사용 권고, 이야기거래소 운영, 이야기 전문기업에 대한 지원 등이 명시되어 있다고 한다.
콘텐츠의 원천이 되는 ‘이야기’의 중요성이야 그동안 수없이 강조돼왔던 부분이기에 말할 필요도 없다. 그 ‘이야기’를 진흥하기 위한 법률까지 만들어주겠다니 그 취지는 무조건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과연 ‘이야기’를 법적으로 정의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현재 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기사를 살펴보니 ‘이야기’의 법적 정의를 “생산자가 목적하는 정서적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인물, 사건, 배경의 요소를 의도적으로 배열해 만들어낸 줄거리”라고 하였다. 콘텐츠진흥법이 정한 ‘콘텐츠’만큼이나 애매모호하다. 대개 ‘무슨무슨 진흥에 관한 법률’은 그 법적 정의에서부터 논란이 시작된다. 그것을 기준으로 지원을 받고 안 받고가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또 현재 초안에 반영된 여러 지원사업은 기존 콘텐츠진흥법이나 문화산업진흥법에 이미 다 명시된 내용이기도 하고, 이미 콘텐츠진흥원이 ‘스토리텔링’ 육성이라는 목표로 오랫동안 진행해왔거나 앞으로 진행하고자 하는 사업들이다. 법이 생긴다고 뭐가 바뀔 것이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굳이 새로 법까지 만들면서 법적 근거를 확보하려고 할까? 사실 이유가 없지는 않다. 첫째, 신규 사업 예산 확보. 둘째, 정부 차원의 정책 의지 과시. 국고를 배정받으려면 아무래도 법적 근거가 있는 것이 훨씬 유리하고, 그래서 이왕 입법 작업을 할 바에는 기존 법을 개정하기보다 정부 정책의 수사법이 듬뿍 담긴 새로운 법안 하나쯤 내놓는 것이 면이 서기 때문이다. 이야기산업법의 면면을 뜯어볼수록 기대감보다 우려가 커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기관 차원에서 정부와 협조하여 이런 새로운 법안 하나쯤 뚝딱 만들어내는 콘텐츠진흥원의 정치력과 정책 의지가 부럽기도 하다. 영진위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