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부터 상영까지 모든 단계에서 외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이 영화는 결국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와 언론인 이상호의 진심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이종인 대표가 워낙 여론의 난타를 당했고, 나 역시 이른바 영리에 눈멀어 팽목항을 찾은 업자의 소개자가 된 형국이었기에 사람들이 온전히 우리의 마음을 알아줄까 하는 걱정이 컸다.” 그들의 진정성은 영화 속 두 남자의 눈물이 잘 말해준다. 한편으로 이상호 감독은 “영화 제작을 방해받았다는 사실보다도 가치가 전도되는 상황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사실과 진실을 찾아 헤매는 일이 업이라 소설과 영화는 잘 보게 되지 않는다던 이상호 감독은 생각보다 더 뜨거운 가슴을 지닌 기자였다.
-팽목항에 있을 당시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몸 상태는 좀 어떤가. =화병이다. 인터넷 매체(<GO발뉴스>) 하면서 잠 못 자고 1인 다역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뇌가 정지하더라. 지난해 11월에 처음 쓰러지고선 바보처럼 두어달 누워 지냈다. 올해 3월부터 살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4월에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처음 하루이틀은 멍하니 지켜보다가 도저히 서울에 있을 수 없어 사흘째 되던 날 팽목항에 내려갔다. 거기 있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런데 잠을 잘 수 없었다. 어디서도 제대로 된 사실을 알려주는 곳이 없었으니. 하루에도 여러 개의 기사를 쓰고, 트위터로 상황을 수백번 알리고, 방송을 했다. 그렇게 열흘쯤 지나니 또 말이 안 나오더라.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6개월 만에 영화가 개봉한다. 처음부터 빨리 완성해 이른 시일 안에 개봉해야겠다고 생각했나. =처음부터 영화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국가는 실종됐다. 보신주의에 연연하는 관료만 존재했고 물지 않는 감시견만 있었다. 거짓말 하나는 거짓말 두개를 낳는다. 두개의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통해 그 존재를 보호받는다. 총체적 거짓말은 결국 진실을 공격한다. 일단 다른 사안보다 더 철저히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정당한 요구를 하는 유가족들이 시간이 지나면 폭도로 매도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스터플랜을 가진 정부가 없고 대안을 제시하는 전문가들이 없으니 유가족들이 직접 나서서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조명탄을 쏴달라, 바지선을 옆에 대달라, 크레인으로 떠받쳐달라…. 유족들이 하자는 대로 했으니 나중에 일이 잘못되면 유족들한테 책임을 떠넘기겠구나 싶더라. 그분들의 억울함을 덜어주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선 최선을 다해 있는 그대로 상황을 기록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분들은 6개월 만에 이런 영화를 만드는 게 너무 성급한 판단 아니냐고 하는데, 6개월이란 시간이 유족들한테 얼마나 긴 시간인지 옆에서 지켜봤기에 안다. 다큐멘터리의 미덕은 동시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안해룡 감독과는 어떻게 공동연출을 하게 됐나. =영화를 만들기로 한 건 사건이 있고서 한두달이 지났을 무렵이다. 사건 초기에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진실을 찾으려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물타기, 마타도어가 생겨났다. 책임의 화살이 청와대로 향하는 것을 두려워한 사람들이 국민의 분노를 관리하려 들었고, 국민적 이슈가 정치적 스펙트럼에 따라 정치적 이슈로 재구성됐다. 그때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파편적 팩트를 하나의 이야기로 꿰어 전체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만큼 이야기로 구성할 필요를 느꼈다. 그런데 혼자서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함께 작업을 붙잡고 있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여러 감독들을 접촉했고, 마침 세월호 문제를 고민하고 있던 안해룡 감독을 만났다.
-다이빙벨과 이종인 대표에 집중해 세월호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시인 고은 선생님을 뵀다. 와인을 한잔 따라 드리면서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라고 여쭈었더니 “술 한 잔 주고 세월호를 이야기하라는 거냐”면서 버럭 소리를 지르시더라. 고은 선생님은 한동안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세월호가 감당이 안 된다고 했다. 배 안에서 기다리라는 어른들의 말을 따랐다가 죽어간 아이들 생각에, 학살을 방치한 현실 앞에서, 시인은 아직 한마디도 할 수 없는 거다. 공지영 작가 역시 <다이빙벨>의 예고편을 보고는 밤새 잠 못 이루고 울었다고 하더라. 기자인 나 역시 감당하기 벅찬 현실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야기는 해야 했다. 영화감독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유가족들의 아픔에 포커스를 맞춰야 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도 들었는데 그건 도저히 이 시점에서 다룰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었다. 현장에서 다이빙벨을 취재했으니, 다이빙벨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들여다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진실과 거짓의 문제를 다룰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는 ‘다이빙벨만이 답이었다’는 이종인 대표의 주장을 담고 있다. 이 영화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이종인 대표의 이야기에 크게 의존하면서 주장의 근거가 다각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영화엔 이종인 대표의 진술만이 아니라 취재팀이 확보한 영상들이 있다. 그 영상만으로도 이야기 구성은 가능하다. 영화의 편파성에 대한 지적이 있는데, 오히려 다이빙벨 투입은 실패였다고 믿는 분들이 편파적인 입장에 서 있다고 본다. 그들의 판단의 근거, 인식의 근거는 대부분 구조 현장에 가지 않고 쓰인 기사들이다. 그들이 영화를 봐야만 비로소 정반합의 사고를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왜 이종인씨만 인터뷰했냐, 해경도 인터뷰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분들도 있는데,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게 이미 해경의 입장이다. 구조, 하느라 했는데 조류 때문에 못했고, 다이빙벨은 비과학적이기 때문에 투입 안 했고, 다이빙벨 때문에 구조 작업에 영향을 받았다는 게 해경의 브리핑 내용이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독일 특파원 힌츠페터가 5•18을 보도했을 때도 왜 피해자들의 절규만 있느냐는 문제제기가 있었다고 한다. 전두환을 인터뷰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보도가 편파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고 판단했으면 한다.
-정부의 무능은 물론이고 언론의 무능 및 무책임에 대해서도 통렬하게 비판한다. 팽목항에서 언론의 위기를 보았나. =정부는 골든타임 72시간 동안 어떻게 구조할 것인지에 대한 마스터플랜이 없었다. 왜 마스터플랜이 없냐고 묻는 게 언론이 할 일이다. 그런데 어땠나. 권력을 감시하고 권력의 거짓말을 감시하는 게 언론의 기본인데 앵무새처럼 정부가 하는 얘기를 그대로 들려줬다. 또 황당했던 건 팽목항에 기자가 1500명이나 있었는데 아무도 구조 주체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팽목항에 가자마자 경찰에 물었다. 누가 지금 구조하고 있냐고. 언딘이라더라. 그러면 언딘이 어떤 회사인지 알아봐야 하잖나. 언딘이 어떤 회사인지, 왜 수의계약을 했는지, 그 절차는 정당했는지. 그런데 ‘국내 최고의 심해 잠수 전문 업체인데 열심히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는 보도만 하고 있다. 정부의 총체적 거짓말, 언론의 총체적 무관심과 해태를 보았다.
-영화의 마지막 즈음, 기자들이 말로 이종인 대표를 난도질하는 장면은 특히 가슴 아팠다. =이종인이란 캐릭터를 이해하면 더 많은 이야기가 보일 거다. 그분은 말을 꼭 꺾어서 한다. 반어법을 구사한다. “왜 그냥 가세요?” “정부가 잘하고 있잖아.” 이런 식이다. 그는 반정부 인사도 아니고 친여 성향의 보수적인 업자, 나약한 업자다. 그런 그가 단지 바다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려고 제 돈 들여 팽목항에 갔다. 열악한 상황에서 그야말로 개 같은 상황을 고발하고 있는데 언론이라면 귀기울여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영업하는 사람이지. 돈 벌려고. 나야 여기 있으면 좋지. 그런데 여기 있으면 (구조에) 도움이 안 되니까 가는 거야”라고 그가 말하자 “나는 영업하는 사람이지. 돈 벌려고” 라는 말만 떼서 공격하는 <조선일보>식 잣대가 현재의 프레임을 구성하고 있다. 그런 사회가 말이 되는 사회인가. 나는 한 사람의 진실이 세상의 진실과 통한다고 믿는다. 세상을 밝히려면 내가 선 자리에서 나부터 촛불을 켜는 수밖에 없다. 순간적으로 전체가 환하게 밝아지진 않는다. 내가 밝힌 촛불이 번져나갔을 때 이 세상도 밝아진다. 이 영화가 세월호의 모든 진실 혹은 세월호의 모든 거짓을 고발하지는 않지만, 동시에 이 작은 영화 한편이 세월호의 모든 진실 혹은 모든 거짓을 고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를 또 준비하고 있는 게 있나. =이 영화에 무관심했거나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유가족도 일부 있었다. 그들이 영화를 보고선 이 영화가 많은 이들에게 공유됐으면 좋겠고 나아가 영화를 더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뭐라고 비겁하게 답했냐면 “<다이빙벨>을 본 국민들이 세월호 이야기를 더 듣기 원한다면, 아직 남아 있는 이야기는 있다”라고 답했다. 지금으로선 그런 마음이다. 일단 이 영화가 중요한 것 같다. 특히 세월호에 대해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세월호 피로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영화를 꼭 봐주었으면 한다. 우리가 알고있는 세월호 이야기가 얼마나 조작되고 왜곡됐는지 알았으면 한다. 그리고 <다이빙벨>은 어려운 영화가 아니다. 거기 우리의 이야기가 있으니, 어려워 말고 이 영화를 봐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