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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래, 더 깊이 기억하기 위해
태준식(영화감독) 2014-11-04

가라앉은 진실을 건져올릴 첫 번째 작업

세월호 참사는 ‘몰락’하고 있는 우리의 현재를 보여준 사건이다. 사건 이후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한 ‘국가’와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방해하는 ‘권력’이 그려낸 또렷한 사실은 이 ‘몰락’이 단지 4월16일에만 멈춰 있지 않은 현재진행형 ‘악몽’임을 또한 확인시킨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반복되어오던 불안한 질문의 끝이 결국 이런 파국으로 실현되다니, 이 공동체에 대한 깊은 절망에 한동안 ‘세월’이라는 단어도 쉽게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누구든 이 ‘악몽’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는 절망의 실체에 대해 질문하지 않으면 안 됐다. 특히나 기울어진 배가 바닷속으로 거칠게 빨려들어가고 결국 애절하게 떠 있던 배의 끝부분까지 허망하게 사라지는 모습을 실시간 HD 방송으로 목도한 사람들의 충격은 저 차가운 TV화면과는 다른 영상, 즉 ‘진실’에 근접한 ‘다큐멘터리’에 대한 절실한 기대로 이어졌다. <다이빙벨>은 그렇게 ‘악몽’과도 같은 격한 현실이 빚어낸 ‘세월호 참사에 대한 첫 번째 다큐멘터리영화’가 되었다.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은 4월16일 참사 이후 다이빙벨이라는 수중장비의 3번에 걸친 투입과 철수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팽목항에서 상주하고 있던 <GO발뉴스> 이상호 기자는 다이빙벨 투입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종횡무진 팽목항을 누비며 때로는 사건에 개입해 갈등을 촉발시키기도 하고 다이빙벨의 주인인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의 증언을 실어나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 연대기의 사이사이 ‘국가’의 무능, 영혼 없이 춤추는 ‘언론’의 생얼이 거침없이 드러난다. 하지만 <다이빙벨>에서는 투입과정에서 드러난 국가권력의 부조리가 구체적이며 설득력 있게 제시되지 않는다. 캐릭터의 신뢰에 기댄 전략은 과연 적절한 선택이었을까, 라는 질문을 품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현장 촬영의 한계와 여전히 실종자 10명이 존재하는 엄숙한 현실이 ‘실체’에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으리라. 하지만 문제제기 방식의 옳고 그름의 판결이나 표현전략의 왜소성보다 투입과 철수, 이 전투 한가운데에서도 ‘국가’와 ‘언론’에 대한 분노의 공기를 놓지 않으려 했던 작가의 의지는 <다이빙벨> 속에 남아 있다. 더욱 뜨거워지고 있는 감자를 쥐고 과감하게 껍질을 까기 시작하려 했던 <다이빙벨>의 용기는 ‘국가’와 ‘언론’ , 특히 쓰레기가 된 ‘언론’의 현실을 통타하면서 빛을 발한다. 팽목항 어디에서도 ‘기자’는 환영받지 못했고 <GO발뉴스>의 카메라 또한 유가족들에겐 똑같은 경계의 대상이 됐던 현실 속에서 말이다. 캐릭터의 기둥을 받치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이것은 분명 많은 이들에게 현실을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잊지 않기 위한 근거로서 작동할 것이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했나.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사건이 더욱 빠른 주기로 속절없이 등장하는 이곳에서 <다이빙벨>은 자의든 타의든 첫 번째 다큐멘터리로서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을 던진 작품이다. 하지만 수준 낮은 ‘권력’의 딴죽은 다이빙벨 투입 성공과 실패 논란으로 한편의 다큐멘터리가 품고 있는 다양한 결들을 단순하게 정리시켜버렸다. 덩달아 <다이빙벨>은 ‘진실’의 수호자라는 과도한 기대를 받으며 방향과 의도는 잊히고 어느 순간 관객 앞에 고귀해져버린 ‘진실’만이 ‘소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과연 이것이 <다이빙벨>을 읽어내는 제대로 된 모습일까? 때때로 사회적 관계들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한가운데에 다큐멘터리가 존재하기도 한다. 이것은 숙명과도 같은 일일지 모른다. 감내해야 할 역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휘발성 강한 분노를 유도하는 ‘국가권력’의 저질스런 전략에 휘말릴 필요는 없다. 우리 스스로 ‘진실’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어 <다이빙벨>을 빨리 잊으려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가늘고 길게 이 문제를 반복적으로 되새김함으로써 책임지려 하지 않는 저들의 출구전략을 깨버리는 데 다큐멘터리영화에 대한 기대를 거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관한 다큐멘터리영화가 적어도 2, 3편은 제작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더욱 많은 작품들이 ‘온당한 질문’을 할 것이다. ‘진실’을 향한 다양한 접근이 시도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국가와 권력이 행했던 무능과 무책임의 끝판이 수면 위로 올라올 것이다. 그리고 이 공동체의 지속 가능에 대한 깊은 성찰과 질문이 담긴 작품이 나올 것이다. 이것이 참사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 매우 슬픈 현실이지만 다큐멘터리가 맡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다큐멘터리스트들의 노력과 성과는 어찌 보면 지금부터라 할 수 있다. <다이빙벨>은 첫 주자로서 나선 작품이다. <다이빙벨>과 그 이후 바통을 이어받을 다른 다큐멘터리영화를 위해 제대로 달릴 수 있는 반듯한 선을 그어줘야 한다. 격한 ‘악몽’의 한가운데에 있는 현실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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