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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많은 방에 유약한 거인을 넣다

<생 로랑> 베르트랑 보넬로 감독

프랑스영화의 현재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베르트랑 보넬로를 빼놓을 수 없다. 그가 프랑스 패션계의 거장 이브 생로랑을 소재로 한 <생 로랑>을 만들었다. 생로랑 인생의 특별한 시기를 중심으로 그의 낮과 밤 그러니까 창조와 유흥의 나날들이 고혹적이면서도 탐미적으로 펼쳐진다. 그 고혹과 탐미의 창조 과정들을 보넬로에게서 들었다.

-<생 로랑>은 연출 제안을 받아 시작한 작품으로 알고 있다. 어떤 점에 흥미를 느꼈던 것인가. =연출 제안을 받았을 당시에는 이야기도, 플롯도, 각본도, 책도,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생로랑이라는 인물밖에는. 그 점이 오히려 흥미로웠다. 나만의 개인적인 관점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거다. 전기적인 성격의 영화보다는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들, 비주얼, 로마네스크적인 캐릭터, 1970년대라는 광적이면서도 자유가 넘치는 시기의 분위기 혹은 당시 밤 문화의 디테일들, 그것들에서 어떤 가능성을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온전히 창조했다기보다는 그것들에서 많이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공간적으로도 조사를 많이 했다. 1972년부터 78년까지 운영했던 당시의 유명한 클럽 ‘세븐’도 재현해냈다.

-평소에 이브 생로랑이라는 인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나. =아는 게 많진 않았다. 그가 매우 탐미적인 감식안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 정도다. 아마 4년 전쯤 일 텐데 그의 사후 소장품들이 경매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걸 두고 “세기의 경매”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런 미적인 감식안을 지녔으니 그는 영화감독이나 화가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람으로서 본다면 더없이 유약하고 멜랑콜릭했는데 이 점이 유독 내 관심을 끌었다.

-그렇다면 그러한 인물 생로랑으로 배우 가스파르 울리엘을 캐스팅한 이유는 무엇인가. =둘은 물리적으로 일단 많이 닮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생로랑과 그를 연기하는 배우가 반반씩 섞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기껏해야 생로랑에 대한 모사밖에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여러 테스트를 거친 뒤에 가스파르 울리엘에게 내가 원한 그 절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1967년부터 76년까지의 시기로 한정하고 집약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이 시기에 생로랑은 자신의 패션 스타일을 구축하고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고 연인 피에르 베르제도 만났지만 한편으로는 선천적인 질병처럼 갖고 태어난 그의 유약함이 더 심해진 때이기도 했다. 그는 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했고 그 바람에 마약과 알코올에 빠져들었으며 게다가 풍부하면서도 광적인 시대의 분위기에까지 휘말리게 된 거다. 이 시기에 생로랑은 그의 생애 최악과 최고를 동시에 경험했다.

-생로랑의 밤의 문화와 낮의 창조, 즉 클럽 장면과 작업실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는데, 그 점이 인상적이다. =클럽 장면은 일단 영상과 음악을 조율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음악을 크게 하면 영상이 위축되고 음악을 줄이면 클럽의 분위기가 덜 나고. 나 같은 사람이야 만들고 싶을 때만 영화를 만들지만, 생로랑은 빈틈없는 산업적 시스템 안에 있었던 사람이라 항상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래서 밤마다 광적으로 클럽을 돌아다녔다. 반면에 작업실의 경우는 빠져나가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장소를 생각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인물들 모두가 흰 가운을 입고 있는 건 실제로도 그랬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노년의 생로랑이 등장하는 첫 장면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루드비히>에서 루드비히를 연기한 헬무트 베르거에게 노년의 생로랑 역을 맡겼다. 비스콘티적인 퇴폐적 우아함을 의식했나. =노년의 생로랑이 젊은 생로랑과 단절되어 정말 다른 곳에서 갑자기 나타난 사람처럼 보이길 원했다. 노년의 그는 다량의 마약과 술에 찌들어 젊은 시절에 비해 많이 변한 상태이지 않겠는가. 이런 경우 보통은 같은 배우에게 분장을 시켜 변화를 표현하는데, 그렇게 해서 허술해지는 경우를 개인적으로 너무 많이 봐왔다. 그래서 아예 다른 배우를 쓰자고 생각한 거다. 루키노 비스콘티와는 어떤 점에서 연결이 된다고 생각한다. 비스콘티는 영화 영역에서, 생로랑은 패션 영역에서, 이 세계의 마지막 거인은 바로 나다, 이 세계는 나와 함께 끝날 것이다,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 아닌가. 그리고 그들은 둘 다 탐미적이다.

-중•후반부 편집이 현란하다. 어떤 직관을 따른 것인가. =각본 과정에서부터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더 많은 자유를 갖는 것과 동시에 더 많은 광기도 함께 섞이는 걸 고려했다. 비유를 들자면 엄청나게 거울이 많은 방의 느낌이랄까.

-차기작은 무엇인가. =내년 초에 시작할 것 같다. 8명의 젊은 청년들이 파리 시내에 폭탄을 설치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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