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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산다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이끌었다
주성철 사진 오계옥 2014-09-10

<두근두근 내 인생> 이재용 감독

세상에서 가장 늙은 아들과 가장 어린 부모. 김애란 작가의 동명 원작을 영화화한 <두근두근 내 인생>은 남들보다 빨리 늙는 선천성 조로증에 걸린 아름(조성목)의 이야기다. 한때 태권도 유망주였던 대수(강동원)와 가수를 꿈꾸던 당찬 성격의 미라(송혜교)는 17살에 아이를 가져 불과 34살에 16살, 하지만 신체 나이는 80살인 아들 아름의 부모가 되어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나아가던 아름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지고 이런저런 두근거리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성석제 작가는 원작 <두근두근 내 인생>에 대해 “인생이 알 수 없는 신비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나이든 어린 영혼이 건네는 이야기를 읽는 동안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는다”며 “비극에서 낙천의 보석을 골라내는 타고난 재능, 희극에서 통찰에 이르는 길을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정묘한 내비게이터의 면모를 본다”고 썼다. 이재용 감독이 가 닿고자 했던 지점도 그 말 속에 녹아 있다. 최근 <여배우들>(2009),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2012) 등을 통해 여전히 호기심 가득한 필모그래피를 이어가고 있는 그에게 <두근두근 내 인생>은 과연 어떻게 시작하고 마무리짓고 싶었던 작품이었을까.

-김애란 작가의 동명 원작을 언제 접했나. =처음에는 모두가 얘기하는 화제작이어서 일단 읽어봤다. 영화화하기 힘든 이야기라는 생각이 컸다. 그러던 중 ‘영화사 집’에서 판권을 사서는 나에게 연출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그때 한창 다른 이야기를 쓰던 중이기도 했고, 원작이 ‘극적’인 느낌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상업영화로서의 맥을 보지 못해서 망설였다. 물론 재밌고 유머가 넘치는 데다 그 감성도 와 닿았지만 대중적으로 포장하기에는 당장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의 선천성 조로증을 분장을 통해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도무지 그려지지 않았다. 그게 가장 망설였던 이유다.

-이후 마음이 바뀌게 된 계기가 있다면. =일단 유보하고 있던 중 영화사 집에서 나름 제작을 진행하고 있었다. 다시 만났을 때쯤엔 이미 초고가 나온 상태였다. 사실 그전까지 좀 바빴던 관계로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은 상태였는데, 영화화 가능성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는 푹 빠졌다. 부모의 첫 만남에 가장 감정적으로 감동한 것 같다. 최대한 밝게 가보자, 내 식대로 좀더 써보자고 생각하고는 원작에서 좋았던 감정을 지속적으로 떠올렸다. 아무래도 아름의 독백이나 감정이 문어체스럽고 자칫 지루할 수 있는데, 어쨌거나 원작의 고유한 감성을 잘 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동원과 송혜교가 부부로 나온다는 게 영화를 보기 전에 가지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대중이 현실의 장동건과 고소영의 아이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하는 것처럼. (웃음) =그런 기대는 나도 마찬가지다. (웃음) 감독으로서 나 스스로 궁금한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두근두근 내 인생>의 젊은 부부로 누가 어울릴까 고민할 때, 모두가 너무 적역으로 느낄 만한 배우는 싫었다. 너무 어울려서 오히려 긴장감이 생기지 않는 맹점이 있다. 한편으로 그저 괜찮은 배우들이 ‘적당히’ 해내는 느낌도 싫었다. 강동원과 송혜교는 맹점을 피해가면서도 또 의외성의 기대와 긴장감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최선의 조합이었다.

-얼핏 기존 이미지에 대한 역전처럼 느껴진다. 두 배우에게 특별히 요구한 게 있나. =당연히 주변의 우려가 있었다. 그들이 부모로 나오는 게 설득력이 있을까, 하는 것부터 일단 두 배우가 이 영화에 관심 자체가 있을까, 하는 것까지. (웃음) 모든 예술이 그러하겠지만 결국 최종적인 결정은 어떤 ‘직관’에서 오는 것 같다. 강동원은 지금껏 자신이 연기한 그 어떤 캐릭터보다 자신과 가장 가깝다며,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5번 이상 울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강동원이 왜 이런 걸 하면 안 돼?’ 하는 역발상에서 출발한 건데 그렇게 얘기하니까 ‘내 직관이 틀리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 뿌듯했다. 강동원에게는 이전까지 미처 알지 못했던 시골스럽고 순수한 모습과 언뜻 드러나는 삐딱함이 공존하고 있다. 게다가 <인생극장>류의 슬픈 다큐 프로그램도 못 볼 정도라더라. (웃음) 송혜교 역시 주로 예쁘고 발랄한 이미지로 알고 있었는데 막상 만나보니 무척 털털한 성격이었다. 얼굴에 흙이 묻어도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실제로 자신을 일찍 낳은 어머니와 미라가 무척 닮아 있어서, 그 캐릭터에 대한 애착이 컸다. ‘철없는 엄마’ 캐릭터에 대해 너무 잘 안다고 했다. (웃음) 그렇게 두 배우를 실제로 만나면서 강요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눈물을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말하자면 결과적으로 뭘 더 특별히 요구한 게 없다. 그저 우리가 알지 못한 그들의 새로운 면모를 보는 거다.

-아름은 대수와 미라에게 “아빠, 엄마, 젊다는 건 어떤 느낌이에요?”라고 묻는다. 전혀 겪어보지 못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에서도 원작자 김애란은 ‘늙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당신이 몇년 전 준비했던 <귀향>도 그와 비슷하지 싶다. =최근 내가 붙들고 있었던 주제도 바로 그것이다. <두근두근 내 인생>에 들어가기 전에 쓰던 <귀향> 또한 그 ‘늙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실향민 노인들이 등장하는 일종의 <꽃보다 할배> 컨셉의 여행이라고나 할까. (웃음) 그렇게 나이 든 사람이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그 주제 면에서 가까웠다. 어떻게 보면 내가 천착하던 그 주제를 <두근두근 내 인생>이 보다 보편적이고 대중적으로 풀어내고 있기에 흔쾌히 하기로 한 이유도 있다. 가령 대수는 ‘젊다’는 것에 대해 평소에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아름과 대화를 나누던 장씨(백일섭)도 막 뛰어다니는 청소년들을 보고 “쟤들은 젊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몰라”라고 얘기한다. 그런 지점들을 영화화하는 게 어려웠다. 원작의 그 많은 좋은 대사들이 생명력을 얻기가 무척 까다롭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인생은 기쁘면서도 슬픈 것이다. 그리고 영원한 것은 없다. 아니, 딱 하나 있다. 죽으면 영원히 다시 못 만난다는 것. 종교적으로 보면 나중에 하늘에서 만날 수도 있고 윤회해서 만날 수도 있겠지만. 다들 한번쯤 그런 생각들을 떠올려볼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의 영화 중에서는 가장 ‘신파성’이 강한 것 같다. 그럼에도 의도적으로 그를 피해가려는 모습도 보인다. 그 무게중심을 어떻게 잡았나. =내 취향 자체가 뭔가에 잘 울지 않는다. 대놓고 ‘울어!’ 하고 말하는 영화를 보고 운 적이 한번도 없다. 최루성 신파물을 보면 그 의도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기를 쓴다. (웃음) 그래서 이런 내게 문제가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원작도 그렇고 그런 면이 없다. 자기도 모르게 스르르 눈물이 난다. 어떤 자극을 받으면서 눈물이 난다기보다 어느 순간 무너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물론 내가 해보지 않은 ‘휴먼 멜로’ 스타일의 영화이고, 잘 모르는 분야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런 눈물이 나는 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있었다.

-최근 옴니버스영화 <시네노트>(2012)에서 <10분 만에 사랑에 빠지는 방법>이라는 작품으로 참여했다. 영화 속 대수와 미라는 그보다 더 짧은 시간에 사랑에 빠진다. (웃음) 그리고 당신의 모든 영화를 관통하는 정서는 결국 ‘멜로’라는 생각도 든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이 있다. 대수와 미라가 딱 그렇다. 돌이켜보면 데뷔작 <정사>(1998)에서 우인(이정재)과 서현(이미숙)도 그랬다. 맨 처음 누가 그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운명론을 믿건 안 믿건 사랑은 예측 불허의 운명처럼 다가온다. 어린 대수와 미라의 만남을 유머러스하면서도 통찰력 있게 담아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름이 부모의 얘기를 듣고 재구성하며 직접 쓴 자신의 탄생설화 같은 것이다. 나 또한 분명 그 지점에서 매혹당한 것 같다. 대수가 물에 뛰어드는 장면은 온갖 에너지로 가득 차 뜨겁게 달궈진 무쇠를 물에 치이이익 담금질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마치 그가 뛰어들었을 때 물에서 진짜 김이라도 날 것처럼. (웃음) 그리고 가수의 꿈을 꾸다 현실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던 미라를 만나게 된다. 첫눈에 반한다는 설정은 동서고금에서 워낙 흔한 얘기지만, 수줍고도 불같은 사랑에 빠져드는 청춘, 그리고 그것이 젊음을 겪어보지 못한 조로증에 걸린 아이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굳이 멜로영화로 한정짓지 않더라도 다양한 결이 있어서 좋았다.

-늙는다는 것에 대한 다른 작품을 준비하다가 <두근두근 내 인생>으로 선회하면서, 결과적으로 원래 이야기하고자 했던 그 무엇이 해소되는 느낌이 있었나. =스스로는 보통 사람들과 웃음과 눈물의 코드가 좀 다르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베스트셀러 원작에 끌려 영화화한 것을 보면, 분명 다름에도 불구하고 만나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주변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만든 작품이다. 이게 슬퍼? 귀여워? 웃겨? 써나가면서도 계속 확인했다. 이전에는 영화 속의 블랙유머나 역발상에서 오는 뒤틀린 요소들을 보여주는 데서 영화적 재미를 느꼈는데 <두근두근 내 인생>을 하면서는 보다 어떤 ‘정통적’인 걸 한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내가 의도한 대로 잘 완성된 것일까, 하는 확신이 가장 서지 않은 작품이기도 했다. 자신이 없다기보다 조바심이 컸던 영화라고나 할까. 다행히 오효진 프로듀서나 강동원, 송혜교가 그 또래의 사람들이라 그 불안감을 해소시켜준 큰 힘이 됐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당신의 긴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게 될까. =언제나 영화를 시작하는 원동력은 내가 잘 모르는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다. 그 모든 호기심이 영화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알고 싶다’, ‘공부해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산다는 게 뭘까, 늙어간다는 게 뭘까 하는, 어쩌면 지금껏 가장 막연한 호기심에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호기심과 고민은 실제 어떤 나이가 되어야만 절감하게 되는데, 그런 점에서 <두근두근 내 인생>은 너무나도 적절한 때에 만난 작품이다. (웃음) 나 스스로 뭔가 돌아보고 싶은 시점에 만난 작품이라 애착이 간다. 진지하게 말하자면 그렇고 분위기를 바꿔 가볍게 말하자면(웃음), 늘 대중적인 영화와 개인적인 욕심으로 만드는 영화를 퐁당퐁당 만들어왔다. <정사>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 같은 영화들이 전자라면, <순애보>(2000)나 <다세포소녀>(2006)가 후자다. <두근두근 내 인생>도 당연히 전자의 영화라 할 수 있기에 ‘언제나 홀수 영화들이 잘됐다’는 징크스가 이번에도 통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웃음)

가장 마음에 드는 대사를 물었더니 “소주가 맛있어요?” “그 쓴 걸 왜 드시는 거예요?”라는 아름의 질문에 “소주? 당연히 쓰지. 인생이 쓰다고 인생을 안 사느냐! 아니거든. 이 소주도 마찬가지지”라는 장씨의 대사라고 했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으로(?) 늙어가고 있는 인물이 바로 그라고도 덧붙였다. 대수와 마찬가지로 철없는 할아버지일지 모르겠으나, 삶의 깨달음을 철학자처럼 어렵지 않게 내뱉는 그 모습이 매력적이라고 했다. 물론 <두근두근 내 인생>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와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했다. 한편으로 그것은 장씨의 아버지인 ‘큰장씨’(김인태)까지 함께 등장시켜 ‘세대’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귀향>을 준비할 때 캐스팅하고 싶었던 배우 김인태(배우 백수련의 남편)를 결국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만나게 된 것인데, 실제 파킨슨병으로 지속적으로 연기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열정을 발휘했다. 연기가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불편한 몸 상태였지만 열심히 대사를 외웠다고 한다.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가장 여운을 남기는 인물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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