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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sh on] “누구라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는다”
송경원 2014-09-04

<루시> 뤽 베송 감독

<더 레이디>

대상을 이해하는 마지막 단계는 그것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다. 뤽 베송 감독의 저력은 아무도 딛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안다고 생각하는 그 길을 구체적으로 풀어 친절하게 제시하는 데 있다. <루시>는 시간과 존재에 대한 뤽 베송의 철학적 비전이 담긴 영화지만 그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쉽고 편안하고 재미있다. <루시>의 제작과정을 알려주는 그의 말투도 자신의 영화를 닮았다. 각종 비유를 동원한 맛깔나는 설명을 듣다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루시>는 당신 영화 중 최고의 흥행을 거두고 있다. 축하한다. =모든 영화를 열정적으로 만들었지만 시기나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흥행이 되지 않는다. 그건 오직 관객의 마음에 달린 일이다. 결과에는 겸손하고 싶다. 감독으로서 내 역할이 실패했을 때 책임지는 거니까. (웃음) 국가, 성별, 나이에 상관없이 영화를 이해해주는 것 같아 기분은 좋다.

-SF, 액션 등의 요소가 있지만 바탕에는 시간의 개념, 진화에 대한 사상 등 지적인 면이 깔려 있다. =나도 관객이다. 주말에는 늘 영화를 보러 간다. 일단 내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이번에는 스릴러, 액션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요소가 적절히 섞인 영화를 원했다. 지능이란 그저 존재하는 개념인지 아니면 소유할 수 있는 것인지 우리의 지각과 감각을 일깨워주는 경험을 통해 질문하고 싶었다. 관객으로서 나는 이런 이야기를 볼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금이 적절한 때라고 판단했다. 캐스팅도, 제작도 타이밍이 관건이다. 운명이라 불러도 좋겠다.

-요즘 2시간 넘는 영화가 흔한데 상영시간 90분이 부족하진 않았나. =충분하다. 오히려 더 잘라낼 수 있었다. 영화를 볼 때마다 관객으로서 항상 느끼는 불만은 ‘이 영화는 적어도 15분은 잘라낼 수 있겠다’는 거였다. 단순한 이야기를 3시간 동안 보는 것은 고문이다. 아무리 강렬한 액션이라도 경탄은 30분을 넘기 힘들고 결말이 예측 가능한 순간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루시>에서는 불꽃의 피날레 같은 화려함,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이야기를 통해 길을 잃은 듯한 감각을 원했다.

-결말이 다소 갑작스럽다는 느낌이다. 처음부터 이런 결말을 목표로 달려간 건지. =거만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를 4, 5번 봐도 매번 새로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자부한다. 철학, 액션, 폭력, 광기 등 층층이 쌓여 있는 요소들이 풍부하고 절묘한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작업 기간만 9년이다. 한순간도 우연은 없었고 급할 것도 없었다.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숙성시킨 와인처럼 기다리다보면 잘 익었구나 싶은 순간이 온다.

-제작자로 소재에 접근할 때와 감독으로 소재를 다룰 때 차이가 있다면. =감독일 땐 내 영화니까 철저히 내가 보는 시선이다. 소유물의 개념이랄까. 누구라도 함부로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는다. (웃음) 제작자일 땐 영화를 잘 만들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이니 감독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땐 접근하지 않는다.

-최민식을 비롯한 한국 배우들이 한국어 연기를 할 때 자막이 아예 없다. =한국어 연기에 대해선 최민식의 경험을 그대로 가져오길 원했기에 기본적인 가이드 외에 연기지도는 전혀 없었다. 루시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상황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거다. 나를 위협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만 보고 상황을 짐작해야 한다. 관객도 그 체험에 동참하길 원했다. 한국 관객은 대사를 다 알아들으니 유일하게 내 의도와는 다른 체험을 하겠지만… 어쩔 수가 없다. 인생이 그런 거 아닌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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