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으로 간 <나쁜 남자>
<나쁜 남자>의 상영 다음날, 이승재 프로듀서의 표정은 편치 않아 보였다. 매일같이 전날 상영작의 평가를 별점으로 보여줬던 일간지 <타게스슈피겔>에서 이 영화에 마이너스 점수를 줬기 때문이다. 이같은 극단적 반응은 수상권에 진입하는 데 결격사유로 작용할 수 있었기에 그는 아예 마음을 비운 듯했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거부반응은 2월15일 기자시사회가 끝난 직후 어느 정도 감지됐던 바다. 프리랜서 평론가인 올리버 푸기니에는 “그건 사랑이 아니라 성도착증적 관계다”라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같은 분위기는 기자회견장으로도 이어졌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며 말을 꺼낸 동구권의 한 기자는 “유럽인으로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보면 폭력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랑을 표현하는 데 기쁨보다는 폭력 같은 것만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질문했다. 또 한 독일 기자는 “이 영화는 폭력을 좋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면서도, 결국 폭력이 사랑으로 이어진다”고 썩 만족스럽지 못한 심기를 표현했다.
물론 이처럼 부정적인 반응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잘랜드주 주립방송의 컬처라디오 편성국장 프랑크 요한센은 “매춘부 얘기를 썩 좋아하지 않아 처음엔 마음에 안 들었지만, 후반부에 반전이 두번 거듭되면서 김기덕의 세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섬>보다 성숙된 세계관을 느낄 수 있었고 조재현의 연기가 참 좋았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제 본선경쟁작 모더레이터 중 하나였던 요셉 슈넬레도 “김기덕 영화에는 그만의 필치가 있어 좋다”고 호평했다.
이처럼 엇갈리는 반응은 베를린의 양대 일간지의 리뷰로 그대로 이어졌다. “<나쁜 남자>는 인간의 삶의 가장 밑바닥에서 싹트는 사랑과 증오에 대한 알레고리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금지된 것, 소외된 것에 대한 욕망으로 점철된 매력을 깊이 탐구하면서 논쟁의 주제를 제공하는 결말로 관객의 말문이 막히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볼 만한 영화이다.”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의 이런 호의에 비해 <타게스슈피겔>은 전반적으로 비판하는 분위기였다. “<나쁜 남자>에는 자신의 힘으로 한 인간을 누르고 지배하려는 냉혈적인 소유욕, 따라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완전한 탈진 끝에 사랑 비슷한 것이 싹트도록 함으로써 한 인간에 대한 (정신적) 살인을 용서하고 있는 점 역시 용서하기가 어렵다.”사진설명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나쁜 남자>를 둘러싸고 찬반이 엇갈렸다. 그에 따라 제작, 출연진의 심기도 파도를 탈수밖에 없었다. 이같은 분위기는 2월 15일 기자회견이 끝난 후 감지되기 시작했다.▶ 제52회 베를린영화제 수상결과
▶ 제52회 베를린영화제 결산
▶ 베를린에서도 재연된 <나쁜 남자> 논쟁
▶ <블러디 선데이>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 베를린에서 발견한 보석 5편
▶ 영화평론가 김소희의 베를린의 상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