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해외 스타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네티즌은 주책없는 친척을 단속하듯 기자들을 향해 “제발 ‘두 유 라이크 김치?’나 ‘두 유 노우 <강남스타일>?’ 같은 질문은 하지 말라”고 당부하기 시작했다(‘김치’나 <강남스타일> 대신 ‘소녀시대’나 ‘박지성’을 넣을 수도 있다). 물론 김치와 <강남스타일>의 잘못은 아니다. 다만 그건 예절과 배려의 문제다. 막 친구가 될까 말까 하는 누군가를 향해 ‘당연히 나에 대해 이 정도는 알아야지! 이건 내가 좋아하는 건데 너도 좋지?’라고 눈치 없이 굴지 않는 것 말이다.
그러니 ‘국뽕’, 즉 지나친 민족주의를 경계하고 조롱하는 분위기에 등장한 JTBC <비정상회담>에 대해 우려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KBS <미녀들의 수다>가 막을 내린 지도 벌써 5년이 지났는데 여러명의 외국인들이 출연하는 토크쇼라니, 무슨 얘기를 더 하려고? 특히 첫회에 MC들이 로빈 데이아나(프랑스)를 맞이하며 “샹송 부를 줄 알아요?”라고 묻는 순간 불안은 현실이 되는 듯했지만, 다행히 <비정상회담>은 ‘명절 특집 외국인 노래자랑’의 전철을 밟지는 않았다. 부모로부터의 독립, 혼전동거, 꿈과 현실의 간극 등 세계 각국의 20, 30대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할 법한 주제를 주고 토론을 통해 각자의 차이를 드러내는 방식 덕분이다. 이슬람 문화의 영향으로 ‘강경보수’의 입장을 고수하며 ‘유생’이라는 별명을 얻은 에네스 카야(터키)부터 자유분방하고 독립적인 대니얼 스눅스(호주)까지, 극과 극의 입장 사이에는 또 미묘하게 다른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지닌 출연자들이 있다. 일본과 미국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는 장위안(중국)이나 베네치아에서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은 맛이 없다고 단언하는 알베르토 몬디(이탈리아) 등 몇몇 출연자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대립각을 세워 MC들이 황급히 갈등 중재에 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이 아슬아슬함이야말로 <비정상회담>의 흥미로운 지점이다. 단지 멀끔하게 생긴 외국인들이 유창한 한국어로 말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구경하는 것을 넘어 각 나라, 각 민족이 얼마나 다르고 각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세계를 바라보는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한국에서 방송 활동을 했던 줄리안 퀸타르트(벨기에)는 “외국인에게 부여된 역할은 ‘웃기는 외국인’ 같은 거라 광대가 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반면 <비정상회담>에서는 한국인들이 원하는 외국인의 모습이 아닌 내 생각을 말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비정상회담>은 마냥 즐겁기만 한 토크쇼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출연자가 호감을 얻어 ‘외국인 스타’가 되는 건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두를 좋아하게 되지 않더라도 모두의 입장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한국이라는 사회에 지금 필요한 건 특히 후자일 테니.
+ α
‘비정상’ 중 친구를 딱 한명 고를 수 있다면?
타일러 라시(미국). ‘생면부지’ , ‘유비무환’ 같은 사자성어를 줄줄 이야기하는 한국어 실력도 놀랍지만, 미성년자의 독립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며 “부모의 입장에서는 (성장을 위한) 실패도 내가 통제하는 환경에서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거죠”라고 조리 있게 주장을 펼치는 모습에 감탄했다. 이 ‘똘똘이 스머프’ 같은 청년이 말로만 듣던 ‘합리적 보수’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