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6일 영상물등급위원회 주최로 '영화 속 언어표현 개선 토론회'가 열렸다.
발전하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은 기관이 있다. 발전은커녕 점점 존재감이 줄어들어 기꺼이 문 닫는 날을 고대하는 것이 두루 좋은 일인지 모른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를 두고 하는 말이다(당장 문 닫으라고 하는 말은 아니니 발끈하지 마시라). 영등위가 하는 일은 영화에 상영 등급을 매기는 일이다. 영등위의 영화 등급 분류는 툭하면 논란이 불거졌고, 최근에는 등급 분류가 아닌 영등위의 활동에 대해서도 날선 비판이 더해졌다.
지난 6월 영등위가 열었던 ‘영화 속 언어표현 개선 토론회’가 불씨다. 비판의 요지는, 백번 양보해서 그런 토론을 하는 거야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영등위가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영등위는 생각이 다를 수 있고, 영등위의 존립 근거나 역할과 기능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리기도 한다. 영화 등급 분류 때문에 논란이 일 때면 영등위는 줄곧 법령과 규정을 내놓았다. 정해진 법령과 규정을 성실히 따를 뿐이라는 거다. 주로 특정 장면이나 표현을 문제 삼아 관람을 제한하는 등급을 주거나, 결과적으로 상영 자체를 못하게 하는 등급으로 분류해서 반발을 사는 경우였다. 영등위의 일의 속성이 장려보다는 규제로 흐르기 쉽고, 결과에 따라 영화 관계자의 이해가 미묘하게 갈릴 수도 있기 때문에 늘 말썽의 소지를 안고 있는 속사정은 있다.
제아무리 구체적이라고 해도 영등위가 적용하는 등급 분류 기준은 해석이 갈리기 십상이다. 관련 법령과 기준에 있는 현저히, 조장하여, 심각하게, 과도하여, 혐오스러운, 자극적으로… 등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선량한 풍속, 일반적인 사회윤리, 국민의 정서, 반사회성 등 가치판단을 내포한 기준이 객관적인 합의를 담보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법령과 규정을 잘 지킨다고 영등위가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모름지기 어떤 기관을 설립하는 것도 그렇듯 법령과 규정도 만드는 목적과 취지가 있다. 흔히 입법취지라고 한다. 같은 조문이라도 규제가 목적일 때와 자율성 확장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을 때는 해석이 정반대로 달라질 수 있다. 명백한 규제기구였던 공연윤리위원회가 제 마음대로 하던 ‘검열시대’가 가고, 등급을 ‘분류하는’ 위원회로 바뀐 것은 단순히 정권이 바뀌면서 벌어진 돌발적인 개편이 아니다. 규제와 검열의 악습을 밀어내고 자율성을 확장해서 창의력을 드높이는 것이 시대정신이라는 큰 사회적 흐름을 반영한 결과다. 무려 15년 전 일이다!
1990년대 후반을 지나면서 대기업과 금융자본이 들어오는 등 산업적인 기틀을 잡은 한국영화가 역동적인 부흥기를 맞이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인은 ‘검열철폐’라는 것이 정설이다. 댓글이나 달고 간첩 혐의를 입증한답시고 증거 조작하라고 국가정보원을 만들지 않았듯이, 영등위도 힘 있는 규제기관이 되라고 만든 기구가 아니다. 존립 근거를 엄정하게 되돌아 보고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미미한’ 영등위로 거듭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