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과 소시지를 만드는 육가공업체 브랜드를 조선시대 푸줏간 간판으로 내걸었던 사극이 웃음거리가 된 일이 있다. 어떻게든 화면 속에 PPL을 우겨넣어야 하는 입장에선 시대 설정에 대한 관용을 끌어내려 애쓰고, 시청자는 각자가 용인한 세계관에 균열이 가지 않는 선에서 납득한다.
‘옥에 티’로 불리던 사극의 고증 오류들은 드라마 <대장금>의 수라간에 등장했던 가스버너처럼, 대개 과거와 현대가 충돌하는 물품이 노출되는 실수들이었다. 누군가가 ‘저것은 고려의 갑옷이 아니야’라고 지적해봤자 역사광이나 밀덕(밀리터리 오타쿠)처럼 괴짜 취급을 받을 뿐, 만드는 이나 보는 사람이나 별로 개의치 않는다. 고증의 재미는 알아보는 소수에게만 해당되는 걸까? 여기, 사극도 내다버린 고증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지난해 여름 방영된 tvN의 2부작 파일럿 프로그램 <렛츠고 시간탐험대>는 ‘조선 전기 노비체험’을 위해 출연자들의 노비문서 수결을 받는 것으로 시작해서 유상무가 프로그램 폐지를 기원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하지만 곧 정규편성이 떨어졌고, 포스터 촬영을 나온 장동민은 “세상에 나오지 말아야 할 것이 나왔습니다”라고 시즌1을 시작하는 감상을 밝혔다. 이들의 말은 엄살이 아니다. 눈이 나쁜 개그맨 김주호는 우리나라 최초의 안경 도입이 1590년이란 이유로 안경을 압수당했으며, 용추사에 서찰을 전하고 안의향교에 선물을 전달하라는 임무를 받은 장동민은 닭 지게를 지고 짚신을 신은 채로 하루를 꼬박 걸었다. 삭힌 오줌으로 빨래를 하고, 명태간의 기름으로 등불을 밝히고, 물지게를 지는 고행이 죄다 문헌으로 남아 있는 기록에 의거한다. 출연자들은 문명에 익숙한 현대인이니 당연히 불합리에 짜증이 치솟고, 오로지 그 시간을 견디기 위해 적응하며 몰입하다가 다시 문득 의문을 품는 과정이 몹시 자연스럽다.
<렛츠고 시간탐험대>의 고증과 재연을 위에서 언급한 사극들과 비교해봐도 재밌다. 퓨전 사극이나 판타지 사극의 상상력이 고증 바깥으로 뻗어가 그 시대에 불가능했을 법한 일들을 가능케 한다면, <렛츠고 시간탐험대>는 현재에 가능한 것들을 불가능하게 하는 상상력을 위해 고증을 수집해 설정의 얼개를 짠다. 조선시대 저잣거리에 등장한 ‘목우촌’ 간판과 <렛츠고 시간탐험대>의 출연자들이 완도까지 칼을 쓰고 도보로 귀양 가는 길에 편의점을 지나치는 장면을 나란히 놓아보자. 전자의 이물감은 이를테면 세계의 균열이고, 후자는 이물감이 빚어내는 웃음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서찰을 전하느라 종일 걷다 녹초가 된 장동민이 빨간 우체통을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조선시대 아전 역할로 세금을 걷으러 초가집에 들렀다가 그 집 아낙 손톱의 네일아트를 보고 “이 집 좀 사는 집이네”라고 깐족거리는 별거 아닌 장면들에서 뱃가죽이 경련하는 웃음이 터진다. 조만간 복근이 생기지 싶다.
+α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시간탐험에서 맡은 역할을 수행하다 ‘멘붕’ 상태에 빠져드는 출연자들. 장동민은 파괴 본능이 깨어났고, 내시의 물고문 훈육을 체험하던 개그맨 조세호는 “이게 그렇게 중요한 신이에요?”라고 항의했다. 방송경력 23년차의 남희석이 처음 상욕을 입에 올렸으며, 현재 방영 중인 시즌2의 선사시대 체험에선 해맑게 웃던 아이돌 가수 최종훈이 불을 피우다가 진이 빠져 욕이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