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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진실은 언제나 하나!

JTBC 추리게임 <크라임 씬>

영화 <도그빌>처럼 구획을 지은 세트를 돌아다니며 침대나 책장, 서랍을 뒤적여 단서를 찾는 사람들. 방향제와 라이터처럼 별 관계없어 보이는 증거품을 조합해 화염방사기를 추론해내는 모습이 영락없이 ‘방탈출 게임’의 실사판이다. 비밀을 가진 용의자를 추궁하는 추리 형식은 <화이트 아일랜드>나 <회색도시> <무한의 탐정> 등의 스마트폰 게임이나 캡콤사의 <역전재판> 시리즈와도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JTBC 추리게임 <크라임씬>의 출연자들은 각자 고른 카드 속 용의자를 연기해야 하며, 그 안에서 다수결로 최종 범인을 지목하고 진범을 잡아야만 ‘금화’를 얻을 수 있다.

tvN의 <더 지니어스> 시리즈를 제외하면, 한국 예능 프로그램은 오랫동안 ‘평균 이하’의 캐릭터가 자아내는 웃음에 치우쳐 있었다. 음식이나 숙소를 건 퀴즈대결에서 필사적으로 우선권을 따낸 사람이 어처구니없는 오답을 말할 때 ‘설마 저걸 모를까?’ 의심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당연히 출연자들은 진짜 바보가 아니다. 짧은 시간 안에 기발한 오답을 만들어내는 ‘두뇌플레이’에 능한 사람만이 바보 캐릭터를 자기 것으로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보 캐릭터로 이름을 알렸던 정준하가 <무한도전>에서 계산의 왕 ‘정 총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바보 롤을 맡은 출연자가 배신과 연합의 심리싸움으로 반전을 만든다. 모자란 캐릭터에서 짜내는 재미도 한계에 달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크라임 씬>은 심리싸움과 함께, 단서를 찾아 가설을 세우고 판단을 흐리는 정보를 배제하는 과정에서 얻는 쾌감을 노린다. 그리고 이를 방해하는 요소들은 회를 거듭할수록 가다듬어진다. 세트에서 수맥을 찾고 관상으로 범인을 지목하던 가수 헨리의 엉뚱함은 설득력이 부족해 곧 정리되고, 역시 산만한 딴죽을 거느라 범인 잡는 데 기여하지 못하던 전현무는 눈에 띄게 성실해졌다. (주로 KBS 예능에서 남용하는) 구간반복 편집도 크게 줄었다. 각 사건의 첫회를 안 봐도 상관없을 정도로 방만하던 전개는 이번주부터 매회 완결로 바꿀 예정이란다. 아쉬움을 말하기 멋쩍을 정도로 기민하다.

그리고 <크라임 씬>을 굳이 추리소설이나 영화, 범죄 다큐에 견주지 않고 게임을 닮았다고 한 이유가 있다. 여섯명의 용의자 모두 멀티 엔딩이 가능할 정도로 살인을 의심할 충분한 동기와 혐의점을 가지고 출발하며, 범인을 잡지 못했을 때의 배드 엔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살인사건의 수사는 범행동기가 매우 중요한 요소지만, <크라임 씬>에서 동기는 연막이다(진짜 형사가 출연해 이 함정에 빠졌다). 게임의 세계는 다분히 작위적이다. 누가 죽였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단 한 사람, 범인만이 살해가 가능했을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박지윤과 홍진호가 유독 돋보이는 까닭도 게임의 전제와 규칙을 가장 빨리 이해했기 때문이다.

+ α

범인들의 위장술

롤카드를 뽑아 연기하는 데 머쓱해하던 출연자들도 범인 역할을 맡으면 몰입도가 달라진다. 다급하면 말을 더듬는 전 프로게이머 홍진호는 범인 역을 하는 동안엔 신기하게도 말이 술술 나왔다고 회고했다. 임방울 변호사는 ‘(부모를) 죽이면 상속에서 제외된다’며 법률 지식을 동원해 자신을 변호했고, 털털해 보이던 가수 NS윤지는 궁지에 몰리자 눈물로 결백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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