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시아스펙트럼 섹션은 ‘카메라는 나의 심장’이라는 흥미로운 부제를 달고 세편의 중국 다큐멘터리를 소개했다. “빛이 없어 캄캄할 때 눈 대신 심장으로 본다”라는 정신에 걸맞게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그중 지단 감독의 <위태로운 둥지>(2010)는 베이징 외곽 지대에서 폐지를 주워 근근이 살고 있는 가족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 노릇을 하는 소녀 시아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남동생을 대학에 보내는 것을 희망으로 삼고 살아간다. 시아의 당찬 모습과 이들을 담담하게 지켜보는 카메라의 시선이 인상적이다. 지단 감독은 그녀가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한 1993년부터 소수민족과 하층민의 삶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 <위태로운 둥지>의 상영과 아시아단편경선 심사로 내한한 지단 감독을 만났다.
-단편경선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작품들에 어떤 인상을 받았나. =‘이런 이야기에 여성이 주인공이 될 수도 있나?’ 싶을 정도로 흥미로운 작품들이 많았다. 감독이 다 젊고 예뻐서 ‘왜 그런 주제를 찾아서 영화를 만들까’ 의아하기도 했다. 유럽감독의 경우 나이가 많을수록 왕성하게 활동하는 데 반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는 나이가 어릴수록 더 활동적인 것 같다. 중국도 50살이 넘어가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하층민의 삶을 담아왔는데 그것이 당신에게 왜 중요했나. =돌이켜보면 주변에 잘사는 사람보다 어려운 사람이 많았다. 나는 가난한 편은 아니었지만 <위태로운 둥지>에서처럼 낡은 집에 살았고 주변에 어려운 친구들이 많았다. 문학의 영향도 있다. 내가 좋아한 문학 작품은 주로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런 작품들이 학교보다 더 많은 것을 일러줬다. 14살 무렵에 읽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지금도 생생하다. 카프카 소설과 페소아의 시도 좋아했다. 베이징 거리에서 만나는 중국인들은 모두 가면을 쓴 듯 얼굴 표정이 밝지 않다. 그러나 최근 말레이시아 항공기 사고 등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람이 가진 본래의 얼굴이 나온다. 그런 진실한 표정을 포착하고 싶다.
-<위태로운 둥지>에서 도시 빈민을 다루면서도 이를 사회문제화하기보다 가족 관계를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둔다. =중국에서 하층민을 다룰 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선량하고 단순한 사람’으로 간단히 묘사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하층민의 문제를 깊게 들여다보지 않고 단순히 도움이 필요한 이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들은 팔짱을 낀 채 마치 도와줄 것처럼 구는 것 같다. 가정도 사회와 마찬가지로 권력을 주도하는 사람이 있고, 그 또한 작은 사회다. 사회로부터 도태된 가족의 고독과 외로움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당신은 숙모라는 이름으로 지칭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던 것 같은데 그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장면은 배제되어 있더라. =그들과 가족으로 사는 것과 그들을 찍는 것이 모순되는 거라서 그 안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영화에 가족들이 서로 충돌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영화를 찍을 때 그들이 싸우기 시작하면 다큐멘터리를 찍는 입장에서는 이야깃거리가 생기는 거니까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다. 그런 나를 보면서 ‘내가 나쁜 사람인가?’ 반성하기도 했다. (웃음) 사람의 내면에 즐겁거나 행복한 모습보다 나쁜 상황에 호기심을 느끼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시아와는 지금도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연락하는 사이다. 늘 도와주고 싶고 그런 생활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실제 영화 속에서 감독이 그들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줬음이 암시된다.)
-계속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이런 것을 찍어야 먹고살 수 있다. (웃음)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 만든다. 다음으로 사회적으로 외면당하고 고독한 사람들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