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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의 TVIEW] 본격 썸vs쌈 토크쇼

tvN <로맨스가 더 필요해>

남의 로맨스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타인의 사생활에 대해 무심하며 시크한 성격이라 그렇다고 믿고 싶지만 다른 커플의 싸움 이야기에는 관심이 많은 걸 보면 그냥 그런 인간인 것뿐이다. 길을 걷다가도 커플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로 마주보고 있으면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지고 귀가 쫑긋해진다.

찰나만이 아니라 기승전결이 있는 풀 스토리를 보고 싶을 땐 모 포털 사이트의 연애 및 결혼 상담 게시판을 기웃거린다. 그곳은 이승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지옥 중 하나다. 그러나 종종 남과 여, 기혼과 미혼 혹은 ‘개념과 무개념’으로 편을 갈라 그간 쌓아두었던 분노를 닥치는 대로 난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오기도 한다.

tvN <로맨스가 더 필요해>는 이처럼 다른 커플의 갈등을 관전하는 악취미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스트레스 걱정이 없는 프로그램이다. 임신과 출산을 거치며 늘어난 아내의 체중 때문에 소원해진 부부, 긴장감이라곤 사라져버린 7년차 커플, 예단을 놓고 말 바꾸는 예비 시모와 우유부단한 약혼자 때문에 답답한 여자 등 이미 어디선가 본 것처럼 익숙한 사연들이 소개되지만 나이와 성별과 결혼 여부가 다 다른 출연자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문제에 접근하며 해결의 방향을 찾아간다. 이를테면 “임신 뒤에는 정말 살이 잘 안 빠지나요?” 같은, 미혼남의 ‘순수한 무지’에서 비롯된 의문에 대해 출산 뒤 한달도 지나기 전에 방송에 복귀해 “살 진짜 더~럽게 안 빠지고, 그렇다고 많이 먹기라도 하는 것도 아니고, 기운은 없지! 애는 밤새도록 울지! 집에 들어가면 쉴 수가 있나!”라고 증언하는 워킹맘 박지윤처럼. 혹은 매사에 “완전 싫어!”를 입에 달고 다니는 여자친구가 짜증스럽다는 사연에 대해 “남자친구가 있으니까 기대고 싶은 마음에 더 불평하는 것일 수도 있다”라는 섬세한 해석을 내놓는 조세호처럼. 물론 모든 이성애자 커플의 갈등에 대해 ‘우리 남자들은’, ‘우리 여자들은’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막연한 분노만을 쏟아내다 성 대결로 이어지는 것보다는 생산적인 구석이 있지 않을까.

‘남자친구와의 약속에 또 늦었을 때’, ‘짝사랑했던 여자가 실연당한 지 3개월 뒤,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때’처럼 살면서 실제로 부딪힐 수 있는 상황에 대해 모바일 메시지를 쓰고 남녀별로 평가하는 ‘썸톡고시’ 역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깨알 같은 재미를 주는 코너다. 반말과 존대, 내용의 선후 관계, 줄 바꿈 하나하나가 갖는 미묘한 뉘앙스에 대해 상대 또한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교 넘치는 레이디 제인과 깐족거림을 컨셉 삼아 ‘공공의 적’을 자처하는 전현무의 열띤 상황극에 정신없이 웃다 보면 가끔 하나씩 배우는 게 생긴다. 그렇다고 길 가다 싸우는 커플을 곁눈질하지 않는 날이 오지는 않을 것 같지만.

+ α

애프터 거절할 때 이 말만은…

“제가 아직 연애를 할 때가 아니라서요”라니, 그럼 애초에 소개팅 자리에 왜 나왔나? 또 “연락 먼저 드릴게요”라는 말에는 “(나는 연락 안 할 거지만) 네가 연락할까 부담스러우니 미리 방어해야지”라는 속마음이 담겨 있다는 걸 나도 안다. ‘거절 토크의 지존’ 이국주는 말했다. “어차피 네가 찰 거면 내 자존심만은 세워줘라!” 그러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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