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새 위원장 선임이 차일피일 미뤄지자 말이 많다. 한동안 무수한 하마평이 돌더니 이제는 인물난이라는 핑계가 무성하다. 반듯한 위원장 하나 ‘만들어내지 못하는’ 영화계의 무기력을 책망하는 목소리도 있다. 영진위 위원장이 누가 되건 월드컵만도 못한 화제라는 탄식이 나오는 것도 빈말이 아니다. 몇 차례 공모 절차를 거쳤지만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되풀이되자 시큰둥해진 탓도 크다.
사실 이번 새 위원장이 누구일지는 대단히 중요하다. 영화계로부터 욕 좀 덜 먹고 눈앞에 닥친 몇 가지 일을 잘 처리하는 단순한 행정기관의 대표 노릇에 그쳐서는 안 된다. 어느 때보다 급변하는 산업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정책을 입안하고, 한국영화의 미래를 이끌 실질적인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당연히 허투루 낙점해서는 안 될 일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공모 때마다 적임자가 없다고 했다. 신중을 기하느라 선임 기준을 높였고 엄격하게 적용하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이 정부의 ‘유별난’ 검증 탓이라는 주장도 허튼 분석은 아닐 것이다. 임명권은 장관에게 있지만 청와대의 아무개가 퇴짜를 놓았다거나 아무개 손에 달렸다는 둥 뒷말도 지어낸 것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어쩌다 영진위 위원장 선임하는 일이 무슨 동네 부녀회장 뽑는 절차만도 못하다는 조롱거리가 되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런 난항의 원인은 위원장 선임 절차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1999년 옛 영화진흥공사를 영진위로 개편하면서 내세웠던 위원회 구성과 운영의 원칙이 기형적으로 변질된 탓이다. ‘문화 분야는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책기조에 따라 출범한 영진위의 기치는 ‘민간자율’이었다. 장관이 임기 3년의 위원 9명을 ‘위촉’하고, 위원들이 호선으로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뽑았다. 위원회 제도의 장점은 자율성을 전제로 토론과 합의, 감시와 견제가 작동하면서 민주적 절차를 담보하는 것이다. 영진위도 이를 구현하는 체계는 그럴듯하게 잘 만들었다. 물론 출범 초기에 상당한 진통을 겪기도 했고, 의사결정과 집행이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2기, 3기를 지나면서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뒤 대대적인 ‘색깔 선별’ 공세가 문화예술계 기관/단체를 휩쓸었다. 이와 맞물려 당시 위원장들은 연이은 헛발질로 동네북이 되었다. 영진위마저 애물단지 취급을 받기에 이르렀다. 급기야 장관이 위원과 위원장을 ‘임명’하고, 위원 임기는 2년으로 줄이도록 법(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을 바꿔버렸다. 영진위가 ‘정책적 전문성과 독립성을 보장받는 분권자율기관’(영진위 홈페이지 소개글)이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위촉’과 ‘임명’의 차이는 이렇게 극명하게 다른 물결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