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 때부터 모델로 활동한 미르카 비올라는 스무살 무렵부터 영화를 공부하며 십여년간 연출팀 스탭으로 일했다. 2011년에야 내놓은 늦은 데뷔작 <사랑의 상처>는 미혼모가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이야기였다. 제1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초청된 그의 두 번째 영화 <캠걸>은 네명의 여성들이 자립하는 과정을 그렸다. 먹고살 길이 막막한 알리체(안토니아 리스코바)와 친구들은 웹캠 앞에서 스트립쇼를 하는 캠걸 사업을 시작하지만 알리체가 마주한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캠걸>은 또한 대학생 딸을 둔 엄마 미르카 비올라가 자신의 자녀 세대에 보내는 응원과 당부이기도 하다.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인물들, 디지털 문화의 부작용 등 <캠걸>은 여성 문제뿐만 아니라 청년 세대의 문제도 관심 있게 다루고 있다. =이탈리아는 오랜 경제 위기로 직장인들의 은퇴 시기도 빨라지고, 젊은이들이 직업을 구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인터넷은 접근성이 좋아 효과적이고 유용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지만 너무 오픈돼 있고, 그만큼 위험을 동반한다. 이처럼 이탈리아의 젊은이들은 청년실업, 잘못된 디지털 문화 등 여러 문제에 무방비하게 놓여 있다.
-자료 조사 목적으로 실제 캠걸들도 여럿 만나봤겠다. =캠걸들은 해외 서버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찾기는 쉬워도 실제로 가까이 접근하긴 어려웠다. 캠걸로 일하는 여성을 수소문해 만나보고 그들에게서 많은 이야기와 정보를 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신상을 보호해줘야 하기 때문에 들은 이야기를 영화에 그대로 쓰진 않았다. 내향적인 편이어서 인터넷으로 인간관계를 많이 쌓았던 지인의 사례를 넣기도 했다.
-그런데 영화에서 성차별을 겪은 여성들이 자립을 위해 캠걸이 되는 편을 택했다는 건 모순적이다. =과거엔 자신의 신체를 노출시키는 것이 금기시됐지만 시대가 변해 요즘은 자신의 몸을 전시해 돈을 버는 일도, 돈으로 전시된 몸을 사는 일도 간단해졌다. 수요도 공급도 점점 늘고 있다. 현실 그대로를 담았다.
-모두가 실패하게 되는 결말은 남성에 기대지 않은 여성의 자립이 불가능하다는 뜻으로도 비친다. =물론 인물들에게 유리한 엔딩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성매매를 긍정하는 뉘앙스를 줄 수도 있었다. 이런 수단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제대로 된 일을 해서 돈을 벌라는 메시지였다. 결국 알리체도 과거에 했던 좋지 못한 일로 발목 잡히지 않나.
-당신은 1987년 미스 이탈리아로 뽑혔다가 결혼한 상태인 것이 밝혀져 바로 자격을 박탈당했다. =‘설마 되겠어?’ 했는데 된 거다. (웃음) 지원에 큰 의미가 있던 건 아니었다.
-혹시 그때의 경험으로 당신이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닐까 싶었다. =전혀 아니다. (웃음) 그땐 열아홉살이었고 순전히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어 참가했을 뿐이다. 여성 문제는 내가 가장 잘 느끼고, 잘 알 수 있는 문제이지 않을까. 연출작 두편 모두 여성에 관한 영화인 건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여성 인물을 통해 여성들의 강한 면모를 나타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성영화를 만드는 데에 영향받은 감독이나 영화가 있나. =페드로 알모도바르, 파올로 소렌티노, 마테오 가로네, 주세페 토르나토레, 샘 멘데스의 영화를 좋아한다. 여성 문제에 한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말해주는 인생의 풍부한 이야기 자체를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와 상관없이 내 다음 작품도 아마 여성에 관한 영화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