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위원장 선임이 세 번째 무산됐다. 벌써 두 차례 적임자가 없어 임명을 미루었는데, 세 번째에도 역시나 그 밥에 그 나물인 사람들만 지원을 했던 모양이다. 이미 1차 공모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던 인사들이 2, 3차에도 중복해서 내고 또 냈다고 하니 적임자를 찾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때문에 영진위 사업에 대한 걱정들이 많은 것 같다. 부산 이전 뒤 맞은 첫해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정책적인 패러다임 변화도 필요하고, 발전기금 징수 연장이나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 같은 산적한 과제도 많은데, 이를 해결해야 할 신임 위원장이 없다는 것은 걱정되는 측면이긴 하다.
하지만 새 위원장 선임이 안 된다고 해서 영진위 사업이 고꾸라지지는 않는다. 공공기관의 사업은 사람과 상관없이 무조건 시스템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고, 그 정도의 시스템은 영진위도 이미 갖추고 있다. 내년 예산도, 위원장이 없다고 해서 있던 예산이 날아가는 것도 아니고, 결국 지난해 예산 기준으로 몇 가지 넣고 빼고만 있을 뿐이므로, 그다지 걱정할 일이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 말대로 “후임 위원장 선정이 늦어지고 있을 뿐 공석인 상태도 아니어서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왜 위원장 선임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영화계가 되었냐는 것. 세 차례에 걸친 위원장 선임 무산은 영화계가 정부에 보낼 대표자 하나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할 정도로 정치적 역량이 떨어져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앞으로도 죽 계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걱정은 더욱 커진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공통의 어젠다로 한목소리를 내며 연대하던 영화계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서만 목소리를 높이는 영화업계로 바뀌어서는 아닐까? 영화계 공동의 미래를 그리며 정부를 상대로 영화계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정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목적성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닐까? 그래서 참여의 동력이 사라지지 않았을까? 최근 사분오열된 영화계 제 단체의 모습을 보면, 이런 질문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1990년대 말, 영화진흥공사가 영화진흥위원회로 전환된 것은 정부 주도의 일방적 정책 추진을 탈피하여 민간주도의 쌍방향적이고 민주적인 정책 추진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영화계 공통의 어젠다에 기반한 영화인들의 참여와 관심이 전제되어 있었다. 이 전제가 빠져버린다면, 굳이 위원회라는 조직 체계를 유지할 이유가 없어진다. 오히려 정부 주도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영화업계의 사분오열된 이해관계를 교통정리하고, 산적한 현안들을 해결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실제로 이러한 의견들이 정책을 다루는 이들 사이에 공공연히 오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화계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부디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길 바라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