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메신저>(이하 <고메>)는 그간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제작됐다. 내가 보고 싶은 애니메이션을 내 손으로 만들겠다는 열정과 이를 열렬히 응원해준 팬덤의 힘으로 완성된 이 독특한 프로젝트는 국내 시장에서는 드물게 OVA(Original Video Animation) 용으로 먼저 제작되어 팬들과 직접 만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의 척박한 환경에 비춰볼 때 실로 과감한 시도였고 비록 만족할 만큼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남겼다. 2010년 1화가 만들어진 이후 수많은 ‘고메’ 팬들을 양산했던 <고메>가 무려 4년 만에 2화를 들고 다시 팬들에게 돌아왔다. 아는 사람만 아는 작품에서 나아가 이제 일반 관객에게도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해 극장판으로 찾아온 <고메>. 이 색다르고 고집스런 프로젝트 뒤에는 스튜디오 애니멀이라는 뚝심 있는 제작사가 있다. 총 6화 완결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언제 끝날지 기약은 없지만 그럼에도 팬들과 꾸준히 소통하며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그들을 만났다. <고메>의 구봉회 감독과 스튜디오 애니멀의 조경훈 대표는 1, 2화를 합쳐 극장판으로 공개한 사연과 <고메> 프로젝트의 향후 방향에 대해 들려줬다.
-개봉 축하한다. 무려 4년 만이다. 시사회 반응은 어땠나.
=구봉회_아직 어리둥절하다. <고메>를 좋아해주시는 팬들과는 오랜 교류가 있었지만 일반 대중과의 소통은 처음이라 긴장 반 기대 반이다.
조경훈_일단 30개관 내외로 잡힐 것 같은데 현실적인 요소를 고려하면 배급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아무래도 애초에 극장판을 염두에 두고 제작한 게 아니라 시리즈의 1, 2화를 합쳐놓은 방식이다 보니 처음에는 결말에 의아해하거나 당황하는 관객도 계신 것 같은데 뒤로 갈수록 재밌게 봐주시더라.
-원래 1화 완성 이후 2화까지 1년 반을 예정했다고 들었는데 결과적으로 3년 반이나 걸렸다.
=구봉회_1화 때는 제작에 1년 반 정도 걸렸다. 2화도 순수 작업시간만 따지면 그 정도 걸린 것 같다. 다만 제작비 문제로 <고메>에만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중간에 계속 외주작업과 병행했다. 그만큼 완성도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3개월 외주해서 돈 벌고 3개월동안 우리 것을 작업하는 식이었다.
조경훈_외부 투자 없이 우리 힘만으로 진행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1, 2화 합쳐서 총제작비가 10억원 정도 들어갔는데 이중 일부 애니메이션센터 지원금을 제외하곤 전부 우리가 다른 일을 하면서 마련한 거다. 쉽진 않았지만 처음부터 길게 가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서두르진 않았다. 만족할 만한 작품이 나올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고메> 1화의 경우 DVD 판매량만 10만장이라고 들었다. 국내 환경에서는 기록적인 OVA 판매량이다. 그런데도 투자가 없었나.
=조경훈_일반적으로 2천장이 평균 판매량이라고 하니까 수치만 보면 성공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부가수입 없이 순수하게 OVA 판매만 했기 때문에 제작비 회수를 다 하진 못했다. 그게 사업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모델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 같다. 재미있냐 없냐는 문제에서는 다들 재밌고 잘 만들었다고 해주시는데, 사업적인 판단에서는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처음 <고메> 1화를 만들 때도 똑같았다. 재미있는 이야기 이전에 팔릴 만한 기획인가 아닌가 하는 시장 논리로 미리 재단한다. <고메>는 애초에 그게 싫어서 시작한 프로젝트다. 다른 방식으로도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망해도 딴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니 차라리 부담은 없다. (웃음)
-결과적으로 1만장이 넘는 판매고는 의미 있는 기록이 됐다.
=구봉회_우리가 잘하고 좋아하는 걸 만들고 싶었다. 그러니 화답을 해주더라. 초기 <고메> 파일럿을 만들고 헤맬 때 회사로 20여명의 팬들이 찾아온 일이 있다. 언제 만들어지냐, 더 보고 싶다며 격한 반응을 보여주셨다. 궁극적으로는 그 반응 하나를 믿고 달려왔다. 20여명이 1만명이 되었으니 더 늘어나지 말란 법도 없지 않나. 극장판의 반응이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국내 시장에서 유사한 프로젝트가 계속 진행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우호적인 환경은 아니지만 기회는 스스로 만드는 거다. 우리 역시 팬들과 함께 지난한 과정을 거쳐 성장통을 겪었고 여기까지 왔다. 사실 2화를 완성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느 정도 만족한다.
-OVA 2화 발매가 아니라 1, 2화를 묶어 극장판으로 공개한 이유가 있나.
=조경훈_사업적인 판단이었다. OVA만으로 다음 작품을 담보할 만한 수익을 거두기는 쉽지 않다는 게 1화 때 증명이 됐으니 이번에는 다른 방식을 취해본 거다. DVD로 첫 출시를 하다 보니 다른 매체로 퍼지지 않는 한계가 있다. 굳이 직접 구매가 아니더라도 인지도라도 높이고 싶은데 팬들이 워낙 충성도가 높아 불법 유통도 잘 안 된다. (웃음) 그래서 극장판을 통해 좀더 다양한 관객층과 만나고 기존 팬들에게 접근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취해봤다. 다음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중이라고 봐주면 고맙겠다.
구봉회_1, 2화를 합친 내용인 데다 6화까지 준비되어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사실 잘 모르는 사람이 처음 접할 때는 어느 정도 장벽이 있다.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고 이야기가 갑자기 끝나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최대한 극장판에 맞게 설명하려고 노력했지만 기본적으로 6화까지 연결되는 이야기라는 대전제를 깨진 않았다. 궁금증이 남더라도 원래의 스토리라인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기대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라는 걸 기억해주시면 좋겠다.
-<고메>의 경쟁력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구봉회_작화 퀄리티를 칭찬해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하청과 창작의 차이는 만족의 기준을 외부에 맞추느냐 자기만의 기준을 가지느냐인 것 같다.
조경훈_토종 창작애니메이션이란 타이틀로 의리에 호소하고 싶진 않다.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만든 게 아니다. 그냥 우리가 보고 싶은 작품을 만들고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은 거다. 이런 색깔의 작품도 만들어지고 있구나, 국내 애니메이션 중에도 이런 장르가 있구나 정도로 받아들여졌으면 싶다.
-사실 국내 창작애니메이션 중 아동 대상이 아닌 다음에 이 정도로 열광적인 팬들의 반응은 보기 힘들다. 스튜디오 애니멀을 사랑하는 팬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비결이라도 있나.
=구봉회_우리는 관리하는 게 아니라 관리당하는 거다. (웃음) 우리가 만드는 작품들을 계속 보길 바라는 분들이 있고 우리는 그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작품을 만들면 족하다. 제작사의 도리는 그런 거 아닐까.
조경훈_시사 때 당첨되진 않았는데 찾아온 분이 계셨다. 자리가 남아있어서 보고 가시라고 했더니 나중에 개봉하면 돈 주고 보겠다고 현장에서 <고메> 관련 상품만 하나 사가시더라. 애틋하지 않나? 우리 팬들이 이렇다. 그런 분들 때문에 <고메> 제작을 포기할 수 없다.
구봉회_필생의 사업이라기엔 낯간지럽지만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있는 한 끝까지 갈 거다. 다만 <고메>가 스튜디오 애니멀의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으셨으면 좋겠다. <고메>는 다양한 통로 중 하나다. <고메>에 집중해 빨리 끝내주길 바라는 분들도 있지만 <고메>가 끝나도 스튜디오 애니멀은 계속된다. 이 창작 집단과 시스템, 스튜디오 애니멀이라는 브랜드를 신뢰로 키워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