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기간 동안 국제경쟁 심사위원 전원이 유독 관심을 보인 작품이 있었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벤하민 나이스타트 감독이 만든 <공포의 역사>였다. 아르헨티나 외곽 마을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엮은 이야기로, 중심사건 없이 그 사건으로 인한 불안과 공포를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기본적인 발상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다. 공포를 유발하는 대상의 존재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마음이 투사한 것을 두려워한다. 공포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나이스타트 감독은 단편 <엘 쥬고>(2010)로 칸국제영화제에, 실험적인 단편 <악의 역사>(2011)로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며 주목을 받은 신예. <공포의 역사>는 그의 첫 번째 장편영화다.
-수상 소감부터 듣고 싶다. =기분이 굉장히 좋다. 경쟁부문에 좋은 영화가 많아서 대상을 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뜻밖의 선물이다.
-<공포의 역사>는 지난 2월 열렸던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이기도 하다. 베를린에서는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렸다. =영화를 이해하고 감상하는 건 개인의 몫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좋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베를린 같은 큰 영화제에서 <공포의 역사> 같은 작은 영화가 평가가 갈리는 작품으로 주목받은 건 감사할 일이다. 반면 전주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품들을 모은 영화제라서 집처럼 편했다.
-영화 속 인물들이 그렇듯이 실제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불안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편인가. =많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집에 경비를 두고 경보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도 모자라 전깃줄로 울타리를 감싸고 산다. 편집증적 공포가 삶의 방식이 된 것 같다.
-그 공포와 불안의 정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빈부격차로 인한 긴장감인 것 같다. 전체 인구의 9%밖에 안 되는 사람들의 재산이 나머지 90%에 달하는 사람들의 그것과 맞먹는 게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서로를 경계하고 위협한다. 긴장될 수밖에 없는 사회다.
-당신도 그런 불안감에 시달린 적이 있나. =물론이다. 어두운 거리에서 혼자 작업을 할 때 항상 뛸 준비를 했다. 영화를 통해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한국에 와보니 아르헨티나와 달라 인상적이었다. 밤에 나다녀도 전혀 위험하지 않고, 육안으로는 부의 불평등을 식별하기 어려웠다.
-영화감독이 된 계기가 궁금하다. =특별한 계기는 없다. 어릴 때 부모님이 영화관에 자주 데리고 가셨다. 11살 때 비디오카메라를 선물로 받아 친구들과 함께 촬영하며 놀았다. 영화가 사람의 감정을 현실보다 더 실감나게 다루는 데다가 이미지와 소리를 활용하는 영화언어가 신기하기도 하고 알 수 없기도 해서 어릴 때부터 매료됐다.
-차기작은 1970년대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시절 벌어진 폭력을 다루는 작품이라고 들었다. =독재 정권 아래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여주고 싶다. 그때 그 시절 용감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군부독재 시절이 아르헨티나의 창작자들에게 자극을 주나 보다. =당시 독재 정권으로 인한 상처가 아직까지 아물지 않았다. 그때 그 시절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트라우마가 됐다. 현재진행형 문제이기도 하고. 우리는 계속 그 시절을 이야기할 의무가 있다. 왜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는지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
-상금은 어떻게 쓸 계획인가. =현재 차기작의 로케이션 헌팅 중이다. 제작비로 보태 쓸 계획이다.
-좋아하는 감독이 궁금하다. 세명만 꼽아달라. =존 카사베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장 비고.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