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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물들은 상징 아닌 서사로 움직인다
이주현 사진 최성열 2014-05-20

<조류인간> 신연식 감독

신연식 감독의 <러시안 소설>을 본 사람이라면 <조류 인간>이라는 제목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러시안 소설>의 소설가 신효가 쓴 소설 제목이 바로 <조류 인간>이었으니. <조류 인간>은 새가 되려고 집을 떠난 아내(정한비)를 15년간 찾아 헤매는 소설가 김정석(김정석)의 여정을 따라간다. 새가 되려는 여자의 이야기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고 싶어 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로 쉽게 치환할 수 있다. 신연식 감독은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했다”고 한다. “집 떠난 아내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는 남자, 사랑하는 사람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게 되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영화의 출발점이었다. 살아가면서 생기는 수많은 갈등의 이유 혹은 원인은 정체성의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많지 않나.”

시나리오를 쓰는 데는 1주일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조류 인간>은 알에서 깨어나는 아내와 눈이 마주치는 남편의 모습이 처음부터 머릿속에 그려졌던 경우다. 그럴 땐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구상한 대로 받아쓰기만 하면 된다. 오래 쓴다고 딱히 더 시나리오가 잘 나오는 것도 아니다.” 제작비 1억원에 시나리오 작업기간 1주일. 풍족하게 영화를 찍어본 적이 없어 “저예산으로 영화만드는 데 선수가 된 것 같다”고 멋쩍은 듯 말하던 신연식 감독은 정말이지 <조류인간>에 이르러 ‘선수’가 된 듯 보인다. “미학적으로 힘을 주거나 스타 배우를 기용할 여유가 없다. 하다못해 죄다 픽스숏이지 않나. (웃음) 내가 쓸 수 있는 무기는 대사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밖에 없다.” 신연식 감독은 그 무기를 잘 벼려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내 영화 속 인물들은 상징이 아니라 서사를 바탕으로 움직인다.” 상징을 공들여 쌓는 대신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신연식 감독의 작품은 시보다는 소설에 훨씬 가깝다.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교차되며, 인물들이 수시로 튀어나와 씨줄과 날줄로 엮이는 <조류 인간> 역시 한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영화다.

신연식 감독은 신인배우 발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감독이다. <페어 러브>의 이하나, <러시안 소설>의 강신효, <배우는 배우다>의 이준처럼 신연식 감독은 좋은 신인을 꾸준히 발굴해오고 있다. <조류 인간>에선 새가 되려는 아내를 신인배우 정한비가 연기했다. 정한비는 비중 있는 역할을 안정감 있게 소화해냈다. “배우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 이 배우가 장차 어떤 배우로 성장할 것 같은지 고민을 해서 작품에 반영한다.”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혹은 배우를 아끼는 마음에, 신연식 감독은 직접 연기도 한다. <조류 인간>에서 그는 출판사 직원과 사냥꾼으로 출연한다. 영화에 잠깐 등장하고 마는데 고생은 고생대로 해야 할 경우 “배우들한테 시키기 미안해서 직접 연기”를 하는 거다.

앞으로도 신연식 감독의 신인 발굴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신연식 감독은 올해부터 매년 단편 옴니버스 형식의 ‘배우 발굴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현재 그는 이준익 감독의 신작 <시인>의 제작도 맡고 있다. <조류 인간>을 편집하면서 직접 <시인>의 시나리오도 쓴 신연식 감독은 “좀더 부지런을 떨면 영화계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며 자신의 향후 계획을 설명했다. “이런 속도로 40편을 만들면 언젠가 거장 소리 듣게 된다.” 이준익 감독이 신연식 감독에게 해줬다는 이 얘기를 증명하기에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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