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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주변부를 보듬는 시선
정지혜 사진 최성열 2014-05-20

<악사들> 김지곤 감독

“누구의 삶이나 기록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늘 기록으로 남아 있는 건 승자들의 기록뿐이지 않나.” 부산을 근거지 삼아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오고 있는 김지곤 감독에게 이 말은 그의 카메라가 어디로 향할지를 가늠하게 하는 방향키와도 같다. 그간 감독은 세상의 관심으로부터 밀려난 공간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눈길을 보내왔다. 허물어져가는 부산의 오래된 극장을 보여주던 <오후 3시> <낯선 꿈들>, 부산 산복도로 근처 재개발 지역에 거주하는 ‘할매들’을 기록한 <할매> <할매-시멘트정원>이 대표적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지금껏 그곳에 살며 부산의 주변부 인생을 카메라로 기록하는 그가 이번에는 악사들을 따라갔다.

“나조차도 ‘악사’라는 말이 낯설었다. 흔히 ‘딴따라’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나이트클럽의 취객들 뒤에서 연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연주인인 그들의 삶을 제대로 담아보고 싶었다.” <악사들>은 혜광 스님을 비롯한 5명의 연주자들이 부산을 근거지 삼아 활동하는 7080 전문 그룹사운드 ‘우담바라’ 이야기다. 2011년부터 올해 초까지 우담바라와 동고동락한 카메라에는 음악을 향한 멤버들의 애정과 음악을 하며 산다는 것의 고단함이 한데 뒤섞여 있다. 감독은 멤버 개개인의 힘겨운 인생살이는 최대한 담담하게 담되, 합주 연습을 하고 거리 공연을 이어나가는 밴드 우담바라에 집중한다. 연주인이자 음악인인 그들의 삶이 기록되고 정리되길 바라는 감독의 뜻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찍고 있습니까?’ 선생님 한분이 연주하시다 말고 물으시더라. ‘최대한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찍자’는 생각으로 카메라를 들다보니 선생님 입장에서는 내가 찍고 있기는 한 걸까 의문이 드셨던 모양이다. (웃음)”

이번 작품은 그에게 여러모로 새로운 시도였다. “연주 장면을 찍는 게 처음이라 초반에는 놓친 장면들이 꽤 있었다. 촬영하면서 많이 배웠다. 선생님들이 ‘이렇게도 찍어봐라’ 하며 직접 제안도 많이 해주셨다. 사실 제작비라는 개념도, 프로듀서와 함께 작업한 것도, 후반작업이라는 걸 한 것도 다 처음이었다. 누구는 ‘네 영화의 블록버스터’라고 하더라. (웃음)” 어렵사리 마련한 제작비로 우담바라의 공연 장면을 찍은 게 무엇보다도 그를 뿌듯하게 만든 것 같다. “촬영하는 걸 보고 어떤 분이 연락을 해왔다. 우담바라가 공연 한번 해줬으면 좋겠다고. 영화가 잘돼 선생님들이 음반을 내게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긴 촬영 기간 동안 제6의 멤버로 우담바라와 호흡한 감독은 가장 잊지 못할 순간으로 엔딩 신을 꼽았다. “선생님들이 거리에서 공연할 때마다 관객이 별로 없었다. 근데 캐럴을 부르던 그날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선생님들 얼굴이 하나도 안 보이더라. 그때 엄청 울었다.”

악사들과의 진한 한때를 뒤로하고 그는 이제 ‘할매들’의 긴 역사를 마무리지을 계획이다. <악사들>을 찍으면서도 계속 제작 중이던 할매 시리즈의 완결판이다. “6년 가까이 촬영했는데 그사이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결국 그곳이 철거돼 할머니들이 모두 이사를 하셨다. 1년7개월 전쯤 나도 할머니들이 사시는 동네로 이사했다.” 그가 이처럼 자신의 일상까지 공유하며 잊혀져가는 부산, 사라져가는 사람들을 프레임 안에 들이는 이유는 뭘까. “그저 내가 잘 아는 곳을 찍을 뿐이다. 다만 관객이 내가 보여주는 부산을 통해, 그들이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되돌아보게 되길 바란다.” 감독은 이미 또 다른 작품까지 구상 중이다. “해병대 출신의 베트남 참전 용사인 내 아버지의 이야기다. 아버지 시대를 되짚어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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