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지옥’은 알다시피 B급영화를 망라한 CDF급영화를 틀어주는 상영회다. 지난 상영회에선 <클레멘타인> <버데믹> <사무라이캅> 등 내로라하는 막장영화들을 상영했는데, 그중 박중훈 주연, 김청기 감독의 <바이오맨>은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터미네이터>가 되고 싶었지만 <람보2>처럼 찍혔고 끝내 척 노리스 영화처럼 되어버린 이 영화에 비명을 지르지 않은 관객은 없었으리라. <바이오맨>의 열광적인 상영이 있은 뒤,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일이 터지고 말았다. 웬 미국 독립영화 하나가 상영되자 시네마지옥의 분위기는 열광, 아니, 광란의 도가니로 변해버렸고 관객의 울부짖음은 <바이오맨>의 반응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 영화의 제목은 <더 룸>. 방이란 뜻이다. 왜 제목을 방이라고 지었는지는 감독 겸 주연인 토미 웨소(Tomy Wiseau)만이 알고 있을 듯하다. 영화 내내 같은 방에서 대화만 하고 그나마 가끔 나오는 섹스 신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영화를 더 지루하게 만드는 건 배우들의 개발새발 연기인데, 연기를 못하는 건 둘째치고 배우들끼리 톤이 안 맞으니 이건 뭐 영화를 보는 건지 오디션장을 구경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바보 같은 연기의 절정은 역시 캐치볼 장면인데, 하하호호 어설프게 즐거워하는 꼴이란… 휴우, 그래도 캐치볼 신은 섹스 신보단 덜 지루했다고 해두자.
로퀄리티는 밑밥에 불과하다. 이 영화를 진정 열광케 하는 건 감독 겸 주연을 맡은 토미 웨소다. 장발머리, 우수에 찬 눈동자, 근육질 몸매, 하지만 짜리몽땅한 키, 몸에 맞지 않는 슈트. 외모가 다가 아니다. 영화 내내 그가 하는 짓이라곤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워도 쿨하게 인정하기. 시련 속에서도 캐치볼하며 여유를 잃지 않기. 섹스 신마다 울퉁불퉁한 엉덩이 노출하기. 영화 내내 관객이 보는 건 단 하나, 이분의 과장된 에고이다. 세상에나, 섹시하고 섬세하며 희생정신과 톨레랑스까지 갖춘 캐릭이라니.
토미 웨소의 에고에 압도된 나는 영화를 검색해봤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는 이미 미국에선 심야상영관과 대학영화축제에 끊임없이 초청상영되고 있었고, 감독 토미 웨소는 무수히 많은 Q&A 세션에 초대되는 등 만들어진 지 10년이 다 돼가는데도 그 열기가 식을 줄 모르는 컬트영화였다. 심지어 이제는 사라진 대사 따라하기와 소품던지기 컬트현상이 재현되기도 했고, 유튜브에선 영화 속 대사들이 무한 패러디되고 있으며, 아무 망작이나 선택되지 못한다는 10시간 반복 영상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영화의 명대사 “넌 날 아프게 해!”(You are tearing me apart!)를 10시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어느새 멘탈은 메탈이 되고…). 관객이 토미 웨소의 과장된 에고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의 에고가 허세라고 여기기 때문일 거다. 이런 현상을 우린 컬트영화사에서 수없이 목도해왔다. 즉 잘 만들려고 했지만 못 만든 영화에 조롱과 열광을 동시에 보내는 것처럼 멋지려고 폼잡지만 전혀 멋지지 않은 토미 웨소의 캐릭에 조롱과 열광을 동시에 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엔 이런 캐릭을 내세운 영화가 있을까? 허세 캐릭이라… 더구나 못 만든 영화라… 필자의 식견으론 (진중권 교수 톤으로) 읎다. 우리나라는 영화를 너무 잘 만든다. 영화제도 많고, 영화과 학생들도 많고, 영화광들도 많아서 그런지 못 만든 영화가 없다. 허세 캐릭을 찾자면 더 읎다. 토미 웨소 같은 캐릭을 영화 좀 만들겠다고 설치고 다니면 우리나라 스탭들은 다들 도망갈 것이며, 영화진흥위원회 같은 지원기관도 면접 뒤 시나리오도 안 보고 제쳐버릴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영화는 웰메이드 지향이고, 유머보다는 신파, 유희보다는 열정을 쳐주는 풍토가 되어버렸다.
영화에는 없지만 현실에선 토미 웨소의 허세를 따라잡는 분이 한분 계시다. 놀라지들 마시라. 아니 놀랄 것도 없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녀의 허세는 대통령 이전 시절부터 명징했다. 사실 당 대표 말고는 딱히 한 게 없는데도, 발의도 거의 안 하는 국회의원이었는데도, 그녀의 인기는 언제나 절정이었다. 한나라당이 차떼기당으로 낙인 찍혀 지지율이 급락할 때도 그녀가 천막 당사 퍼포먼스 한번 하고 나니 지지율이 상승했고, 대선 때에도 국정원 대선 개입 등 역풍을 맞을 만한 위중한 사건들이 있었음에도 대통령에 당선됐다(그러고 보면 박근혜가 2007년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에게 진 건 의아해 보일 정도다. 이명박 사장님께 그토록 채용되고 싶었던 대한민국이었다니… 그토록 어리석었다니…).
그녀의 허세는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더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300명 가까운 실종자 유가족들을 방문하는 와중에도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보호받았으며, 유가족이 울고불고 무릎 꿇고 비는데도 지그시 내려다보고만 있었으며, 사과를 요구하는 국민들에게는 “선장을 엄벌에 처하겠다”라는 식의 꼬리자르기 발언을 하질 않나, “정부는 반성해야 한다”라며 유체이탈 화법을 쓰질 않나, 그녀의 티끌 하나 없는 순수하고 완벽한 권력자 코스프레는 세월호 참사도 무너뜨리지 못했다. 그런데 토미 웨소의 허세에는 웃을 수 있지만 박근혜의 허세에는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허세엔 화가 나거나 아니면 아예 신경을 꺼야 속 편하겠다는 정치적 무기력감마저 느낄 정도다. 왜 그럴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허세의 의미를 간단히 짚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허세란 말 그대로 허구적인 권력이다. 즉 가짜 힘이란 건데, 이것이 작동할 때는 힘의 주체와 힘의 대상에 간극이 발생할 때다. 다시 말해 힘의 주체는 힘이 진짜라고 여기지만 힘의 대상은 그것이 가짜라고 여길 때 그 “아이러니한” 간극이 웃음을 유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토미 웨소의 허세는 진짜 허세다. 토미 웨소의 엉덩이가 노출될 때마다 관객이 미친 듯이 웃는 게 그 증거다. 엉덩이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토미 웨소와 관객의 간극이 있는 거다. 반면 박근혜의 허세는 어떠한가. 그녀의 이미지는 자타가 공인하듯 박정희의 이미지다(정확히 말하면 양념 반 프라이드… 아니, 육영수 반 박정희 반). 그녀도 그것을 알고 있다. 정치적 고비마다 박정희 기념관에 들른다거나 어린 시절 아버지와 노닐던 해변을 찾는 노스탤지어 전략을 보면 그녀 역시 그녀의 힘이 자신의 힘이 아니라 아버지의 힘이라는 알고 있는 거다. 박근혜의 허세가 가짜인 이유는 바로 이거다(가짜 힘이 가짜라니 좀 복잡해 보이지만). 그녀 자신도 그녀의 힘이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국민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그녀의 생각과 국민의 생각이 일치하면 간극이 생길 수 없다. 아이러니가 없으니 웃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하다. 오히려 자기 힘도 아닌 걸 알면서도 자기 것처럼 코스프레하고 다니니 보는 사람은 짜증만 난다. 더구나 코스튬이 기껏해야 군사독재 시절의 새마을운동 정도니 희망은 안 보이고 퇴행만 보이고, 짜증을 넘어서 분노가 솟구치고, 분노가 해결이 안 되니 염증이 생길 수밖에.
박근혜에게 토미 웨소처럼 자기의 힘을 진짜라고 믿으라 말하고 싶진 않다(더군다나 엉덩이를 까라고 말하고 싶진 않…). 멀쩡히 박정희의 힘들이 유효한 한국 사회에서 그 이름을 지우거나 극복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그녀는 평생을 그 힘 아래서, 그 힘에 기생하면서 살아왔다. 그녀가 비구니가 되지 않는 이상 박정희 극복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희망을 축소해보자. 최소한 당신의 허세에 사람들이 화를 내는 이유만이라도 알아야 한다. 왜 토미 웨소의 엉덩이엔 열광하면서, 당신의 엉덩이… 아니, 허세엔 짜증이 나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에게 <더 룸>을 권하고 싶다. 어떻게 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가. 무엇에 사람들은 열광하는가. 그리고 진짜 허세는 무엇이고 가짜 허세란 무엇인가. 그 차이와 아이러니를 그녀가 이해한다면, 다시 말해 <더 룸>을 보며 토미 웨소의 허세에 그녀가 열광한다면, 난 공언하건대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박근혜에게 희망을 걸어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님, 이 글을 읽으시고 <더 룸>이 보고 싶어진다면 토렌트를 이용하세요. 파일 짱 많아요. 토렌트 사용법을 모른다면 시네마지옥 대장 권용만에게 연락해보세요. 바쁘지만 않으면 파일 전송해줄 거예요.
세월호 참사 피해자 분들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합니다(희생자라는 표현이 정부의 과오를 은폐하는 것 같아 피해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여기보다 나은 곳에서 편히 잠드시길.